1948년 사할린. 2차대전 종전 후 소련의 영토로 편입된 이곳에
1만5천의 한국인 징용자가 귀환을 기다리며 있다.
그러나 북한의 선전요원이 파견되어 이들을 설득하여
북한 땅으로 귀환만을 허용하고, 남한으로의 귀환은 봉쇄되어 있다.
남한은 정부수립 전이라 미군정 치하로 이들은 무국적자 신분이기에.
이곳에 징병온 동수, 동진 형제가 있다. 동수에게는 일본인 아내가 있다.
도시꼬. 도시꼬는 종전 후, 사할린에 들어온 러시아군에 폭행당할 때
동수가 구해주고 그 인연으로 결혼한 것이다.
이 형제들은 지정된 사업장에서 일하며 한국으로의 귀환을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불투명하고 이들을
도와줄 국가나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상태이다.
일본인들은 계속 귀환되고 있고, 동수는 아내 도시꼬가 귀환대상이기에
그나마 일본으로의 귀환이 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동생 동진이 한국인 귀환문제로 싸우다, 경찰에 다리를 다치고...
동수도 역시 소련당국에 항의하다 구속된다. 그리고 감방에서
한국인 징용자들은 탄광으로 모두 끌려간다는 소식을 듣는다.
일본인의 마지막 귀환 일정이 다가온다.
도시꼬는 아는 사람들을 통해 동수의 석방과 귀환 서류를 준비한다.
그리고 귀환 전날, 동수가 석방되자, 그에게 귀환을 종용한다.
그러나 동수는 자신은 여기 남아서 할 일이 있다 하고,
동생 동진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동진은 그간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시베리아로 끌려갈 예정이란다.
이 형제들은 어떻게 될까?
1968년 극단 실험극장에서 허규의 연출로 공연한 이 작품은
제5회 한국연극영화상 대상, 작품상, 희곡상(이재현), 여자연기상(김혜자)을 수상했다.
2차대전 당시 일제에 의해 사할린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한국인들.
2차대전이 종전되자 일본은 사할린의 지배권을 러시아에 넘겨주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사할린에 남게된 한국인들은 많은 고초를 겪게 된다.
이들 중 두 명의 용감한 한국인 형제인 동수와 동진이 비인도적인 규율에
대항하여 싸운다.
사할린스크라는 특수한 지역에 강제 징용되어 온 동수, 동진 두 형제를 통한
조국에 대한 갈망과 향수, 그리고 동생을 살리기 위해 일본인 처에게 달려보내는
형제애, 부부애 등이 정치적인 것과 얽혀 민족의 비극으로 승화시킨
서정적 정취가 어린 작품이다.
연출의 변 - 허규
…우리 조상들이 저지른 치욕은 아직도 가셔지지 않고 있다. 요즈음 신문보도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할린 교포들의 귀환문제는 무엇보다도 부끄러운 표본에 하나가 아닐 수 있다. 일본 황국신민이란 이름으로 가라후도(사할린)로 끌려간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조국이 해방된지 2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은 일본 대신에 소련의 노예가 된 채 억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확한 인권의 유린이며 우리 민족의 수치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귀환문제에 대한 책임을 따져볼 필요도 없이 그들이 겪고있는 곤욕은 반동강이로 난 조국의 비운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작품을 올리며 그들의 귀환문제를 생각하기 앞서 그들의 눈물과 땀에 찌드른 얼굴과 움푹 들어간 눈을 상상해 본다. 자기들을 감싸안어줄 조국의 품을 그리워 하다가 물기가 말러버린 눈들, 이중의 치욕을 격느라고 이젠 지칠대로 지쳐 이제는 원망만이 가득찬 눈들 그리고 아직도 동포들의 따뜻한 손길에 대한 기대 때문에 차마 감지 못하고 있는 눈들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그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또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불합리함과 우리민족의 수치스럽던 역사와 우리 자신들의 허약함을… 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뭔가 강요하거나 선동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들의 과거와 오늘과 내일에 대해서 우리와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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