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벌판, A와 B는 고도를 기다린다.
그러나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림에 지친 그들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온갖 유희를 벌리면서 고도를 기다린다.
하지만 고도는 끝내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는 고도를 언제까지나 기다린다.
'기다림'이라는 행위를 통한 삭막한 일상 생활을 파헤친다.
절망과 불만과 기대를 안고 살아 가는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막연한 구원을 기다리는 인간의 내면 탐구, 세계의 부조리와 그 속에서
무의미한 기다림을 계속하는 절망적인 인간의 상황이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완전 무언극으로 재구성하여
기존 공연됐던 무대와는 다른 대사가 없는 무언극으로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형상화한 한 작품이다.
(재구성및 연출 채윤일. 1980년)
「베케트」의 작품들은 신문이나 비평가들이 오해하고 있듯 인간 존재의 참혹한 面을 다룬 것이 아니다. 放浪者, 不具者들이 등장인물이라 하여 비롯된 이러한 오해들은 전혀 잘못된 것이다. 그는 이런 극한상황에 처한 인물을 등장시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면을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작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혹은 개인간의 관계, 사회적 지위를 향한 인간들의 노력, 남녀의 사랑 등은 베케트에게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과는 무관한 한낱 도피처로 밖에는 인식되지 않는다.「고도를 기다리며」도 역시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조건을 파악하려는 시도로 나온 作品이다.
「베케트」가 다루는 이러한 주제는 역시 그가 경하해 마지 않는 「데카르트」에서 비롯된 듯 싶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存在한다"는 명제가 작품을 일관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不可解性, 절망을 용감히 파헤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유머러스하다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베케트는 이점에서 코믹 作家로도 간주할 수 있다. 사소한 일, 무의미한 일에 매달리는 인간의 노력을 보면서 관객은 자신의 관심사를 사소한 일에 옮기고, 웃음을 터뜨리고,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두인물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황량한 시골길, 한 그루 나무밑에서 「고도」라는 人物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고도라는 人物과 분명치 않은 과거의 어느 시기에, 확실치 않은 상황속에서, 확실치 않은 어느 시간에 분명치 않은 한 장소에서 만난다는 막연한 약속을 한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시간의 움직임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이 시간의 변화는 한낱 환상일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시간의 끊임없는 움직임은 스스로 소멸해가며 목적과 대상이 없으므로써 무의미하며 무효인 것이다. 변하면 변할수록 변함이 없는 세계. 이를테면 허무에 대한 명석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은 연결없는 그러나 끝없는 「기다림」이라는 유희속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배경은 이 지구의 아무데도 닮지 않은 하나의 空間이며,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는 하나의 시간인 것이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의 주인공들은 부조리의 철학을 논리적으로 전개시키는 대신에 부조리를 육체적으로 관객과 더불어 체험한다고 할까....
허망한 광대놀이 - 채윤일(재구성및 연출)
「S·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언극으로 연출하는 지금 일말의 향수를 자아내는 어린 날의 잔영들이 있다. 황혼녁이면 골목 골목마다에 저녁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트럼펫의 애조띤 가락을 끌고 언덕 너머로 사라져 가던 곡마단의 어릿광대들.「마르셀 까르네」가 연출했던 영화「인생유전」에서 보여준「장·루이 바로」의 팬터마임과 채플린의 몇편 의 영화들...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작품으로서 <고도>라는 정체불명의 대상을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등장인물이 길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죽이기 위해 벌리는 안타까운 유희를 다루고 있다. 두 등장인물의 절망적인 유희와 허무한 언어 뒤에 드리워져 있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적인 면과 멜랑코리한 비극적인 면을 팬터마임이 즐겨 등장시키는 말없는 어릿광대의 몸짓으로 재탄생시켜 보려는 것이 이번 나의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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