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바다 한가운데서'

clint 2024. 11. 5. 18:30

 

 

바다에 초라한 뗏목이 하나 떠 있고, 거기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다.

그들은 난파한 배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것이다.
뚱보와 보통, 그리고 홀쭉이는 모두 배가 고프다고 한다.

그들이 먹을 양식은 이미 오래 전에 떨어졌다.

가진 것이라고는 뚱보와 보통이 가지고 있는 권총과 총알 하나이다.

너무도 배가 고픈 나머지 그들은 사람이라도 잡아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공정하게 한 사람을 골라 먹기로 한다.

이 집단의 두목은 뚱보인데, 그는 부하들의 충성심을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자진해서 먹히려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뚱보는 숫자를 이용한 사기로 그들 중 하나를 먹으려 하나

아무도 속지 않는다. 마침내 그들은 선거를 통하여 한 사람을 뽑기로 한다.

황당하지만 누군가 죽어야 살수 있다. 그럼 누가 죽을 것인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의 원작 <바다 한 가운데에서>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난파당한 뗏목 위에 살아남은 세 명 뚱뚱이, 보통이, 홀쭉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계급, 계층, 세대 등 다양한 범주로 여겨질 수 있는 인물 유형은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문제를 건드리며 정치적 정의에서 실존적 자유의 문제까지 논의를 확장시킨다. 원작의 상황은 “극단적 고립”이라는 상황 속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극단적으로 고립된 상황 속에 처한 인물들이 서로 도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구성원 중 일부를 희생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나머지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모습을 찾는데. 이는 서로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연대하여 공존의 방법을 찾기보다는 경쟁을 통해서 상대를 희생하고 생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실을 현재의 눈으로 본 것이다.

 

 

 

극단적으로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점점 더 고립되고 분리되는 인물들 속에서

보여주는 것은 자기 세대의 외로움이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자기 얘기를

쏟아내기에 바쁜 모습이며,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도취되고 합리화하는 모습이다.

므로체크가 끈질기게 추구하고 있는 주제는 비인도적인 현대사회의 도덕적 위기와

폭력의 공포를 극복해서 인류를 구하는 길은 자기희생의 고매한 결단밖에 없다는

휴머니즘의 이상이다. 이같은 주제는 그의 작품 여럿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이 작품도 그런 주제를 강렬하게 보인다.

 

 


난파를 당해 뗏목을 타고 바다 한가운데 표류하고 있는 세 사람의 난파인들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굶주림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들은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먹고 두 사람이 소생하는 길을 택하는데,

문제는 누가 희생되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을 결정하기 위해서 스탈린 시대의 흉악한 정치를 연상케 하는 게임을 벌인다.

이 작품의 재미는 그 게임의 과정이다.

그 재미는 희생을 각오한 홀쭉이의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결심했습니다"하는

마지막 대사에서 깊은 감동으로 승화된다.

극작가 므로체크의 독자성은 "인생의 그로테스크한 면"을

무자비하게 투시하는 작가적 양심 속에 있다. 

 

 

스와보미르 므로젝 (Slawomir Mrozek 1930~2013)
폴란드가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 작가 슬라보미르 므로체크는 1930년 크라쿠프 근교의 소도시 보젱치 나(Borz cina)에서 태어나 6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야기엘론스키 대학에서 건축과 회화를 공부했다. 크라쿠프에서 발간되는 대표적인 일산지인 “지엔느닉 폴스키(Dziennik Polski)에 익살스런 삽화를 곁들인 시사만화와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칼럼을 기고하며 기자로 활동하던 중, 칼럼과 단편 소설을 모은 첫 창작집<코끼리>(1957)를 출간하여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후 희곡 쪽으로도 영역을 넓혀 1958년 첫 번째 드라마<경찰>(policja)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범죄가 완전히 사라지고, 비리나 반윤리적인 행위도 없는 이상적인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경찰>은 바르샤바에서 초연된 이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1958년부터 1963년 사이에 므로체크는 희곡 창작에 몰두하여 10여 편의 드라마를 썼다. 당시의 대표작으로는<바다 한 가운데서>를 비롯하여<스티립티즈>(Strip-tease)(1961),<놀이(Zabawa)>(1962) 등이 있다. 1964년에 발표한<탱고>(Tango)는 므로체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사회 문제를 다룬 일종의 심리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1963년 사회주의 정부의 통제와 탄압을 피해 이탈리아로 이주한 므로체크는 이후, 프랑스와 미국, 독일, 멕시코 등에 거주했다. 작가의 망명으로 인해 1960년대 말부터 1970대 말까지 므로체크의 작품은 폴란드 국내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 1970년대에 므로체크는 해외에서<행복한 사건>(Szcz liwe wydarzenie, 1971),<푸줏간>(Rze nia, 1973),<이민자들>(Emigranci, 1974),<여우사냥>(1977)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중 1974년 파리에서 공연된 희곡<이민자들>은 작가가 오랜 이국땅에서의 체험을 토대로 이민자들의 정체성 문제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파헤친 걸작이다. 1980년대에 폴란드에서 므로체크 작품의 공연은 ‘연극계나 예술계의 이슈’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로 받아들여졌다. 1989년, 므로체크는 일상의 아이러니컬하고 그로테스트한 단면을 포착하고, 현대인의 심리를 파헤치는 작품에 주력하게 된다.<미망인들>(1992),<크림 반도의 사랑>(Miło na Krymie, 1993),<아름다운 풍경>(Pi Kny widok, 2000)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96년 므로체크는 33년 만에 고국 폴란드에 돌아가 크라쿠프에 정착하였다. 그의 작품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체코어, 일본어, 한국어 등 전 세계 20여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었다. 1988년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므로체크 페스티발”을 시작으로, 1991년 크라쿠프, 1993년 스톡홀롬에서 그의 이름을 내건 페스티발이 개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