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김기풍은 아들을 얻으려 여러 명의 아내를 당연하다는 듯 들인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김기풍은 아들을 얻기 위해 심지어는
큰딸 영순의 친구 이화와도 잠자리를 가진다.
김기풍의 남아선호사상에 의해 서로 다른 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던 네 딸,
영순 영화 영옥 영진. 이 극은 네 딸이 객지에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네 딸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동시에 그들을 따라다니던 유령(영순, 영화의 생모,
영옥의 생모, 이화)들도 모습을 나타낸다.
아버지 김기풍의 속셈은 딸들을 불러놓고 사촌 상필의 아들을
양자로 들일 것을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오랜만에 모인 아버지와 네 딸은 서로의 상처를 헤집기 시작한다.
언니의 첫사랑을 가로챈 영옥,
영순의 약혼을 파혼시킨 영옥의 생모
자신을 교장선생댁에 식모로 맡겨
순결을 잃게 한 언니를 원망하는 영화 등등
네 자매와 아버지의 관계는 해묵은 원한으로 얽혀
시간이 갈수록 상처의 골만 깊어 간다.
죽음을 예감한 아버지 김기풍,
그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문중에 기부하고 딸들에겐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줄 것만을 요구하고 딸들은 절규한다.
그리고 딸들은 제각기 자기 길을 찾아 떠난다.
결국 빈 집에 혼자 남은 김기풍.
그는 딸들에게 어떤 위안도 받지 못한 채 안락사를 꿈꾸며
가스가 새는 것을 보고도 잠그지 않는다.
전 3막으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한 가족의 하룻밤 동안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치 악몽과 같이 과거에 얽매여, 희망을 잃고 서로 깊은 애증에 사로잡혀
용서하지 못하고, 점점 절망감에 빠지는,
서로 다른 어머니를 가진 네 자매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원제와 죽음 - 김윤미
가족이 주는 상처는 타인이 주는 상처보다 깊고 치유되기 힘들다. 그것은 가장 약한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부모 혹은 형제에 의해 인격 형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인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거나 보호를 받지 못할 경우, 성인이 되어서도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순환된다. 건강한 부모, 건강한 가족의 역할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의 아이들에게 왜곡된 부모 이미지를 심어주거나, 그들 부모가 그들에게 가한 행동들을 반복한다. 그래서 하나의 저주와 같이 집안의 악습과 폐단은 몇 대를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가족 형태는 또한 사회관습에 따라 영향 받거나 희생되는 경우도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의 경우, 태어나지도 못하고 사산되는 여아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법적으로 태아감별을 금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관습이나 사회적인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계속될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이혼율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가족형태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고령화로 인해 혼자 살게 되는 노인들의 노후도 새로운 가족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가족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되살려 봐야 한다. 건강하고 평범한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고 들춰내고 싶지 않은 병든 가족을 돌아봄으로써, 진실로 가족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진정한 가족은 어떤 것인가? 탄생과 죽음의 순간, 환영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이 작품은 어긋난 가정. 특히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희생된 네 자매의 사랑과 상처. 그리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버지의 상처가 어떤 식으로 치료되고 반복되는지 나타냈으며, 건강한 가정을 가꾸지 못한 이유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아버지를 통해, 진정으로 건강한 이 시대의 가정을 꿈꿔본다. <오중주>는 8년간의 표류를 끝내고 이제 무대에 오른다. 도대체 누굴 만나려고 이 작품은 이렇게 긴 시간 방황하는 걸까 하고 궁금해졌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걸으면서 손톱을 깎아야 할 정도로 내 삶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 작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윤여성 선생님과 <오중주>의 손을 들어준 여러 선생님의 믿음이 없었다면 나는 다시 글을 쓸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분들의 믿음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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