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광탁 '나도 아내가 있다'

clint 2024. 10. 29. 06:25

 

 

실직한 지 5년이 넘은 삽화가 남편과 중등학교 과학 교사인 아내,

일상의 사소한 일로 끊임없이 충돌하는 두 사람이 주인공이다.

결혼한 지 7-8년, 어느덧 서로가 닮아간다고 느낄 때쯤,

닮아가는 서로에게 이젠 별반 매력을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루한 일상의 탈출이랍시고 여행을 계획하는데……

여행은 자신과의 대화라고 했던가,

서로에게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갖기 위해 시작된 두 사람의 여행은

그 시작과 함께 좌충우돌 야단법석을 떨고,

여행 중에 생기는 기막힌 에피소드가 연극 같은 인생의 한 자락을 펼쳐놓는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대단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아주 평범한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미세한 부분들을 포착해냄으로써, 보편적인 삶의 일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극에서의 아내와 남편이 살아가는 풍경은 연극 속의 부부에게만 한정된 모습이 아니다. 나를 포함하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는 삶의 일상이다. 그러므로 일상성에는 삶이 있고 인간이 있다. 아내는 중학교 과학교사이며 남편은 실직한 일러스트레이터(삽화가)이다. 부부의 말다툼은 늘 사소한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말꼬리를 물고 파문처럼 다른 문제로 번져나간다. 이런 다툼은 한두 번에서 끝나지 않는다. 늘 일어나는 일상이다. 서로에게 요구사항이 수없이 많은 것이다. 그런 가운데 삶은 무의미한 것인가, 사는 게 이렇게 재미없는 것인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요 인생인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고 살아 있다는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삶의 일상들이다. 이들 부부는 문득 작은 행복이나마 느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여행이라도 하면서 재미없고 의미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잠시나마 해방되고 싶어 떠나는 여행에서조차도 사소하게 의견이 상충한다. 그렇게 되면 다시 부부는 서로 토닥거리며 다툰다. 부부 사이의 자질구레한 다툼은 상대방의 못마땅한 태도 때문이기도 하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데서도 불거진다. 언제 어디서든 부부간의 자질구레한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서도 혹여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마음속에 품고 심리적 안식처로 삼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부부는 이처럼 항상 토닥거리며 살아가지만, 다투기만 하는 사이는 아니다. 가끔은 서로에게 가슴 벅차는 감동을 안겨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들 부부뿐만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나 다 그러하다. 이 연극은 삶의 의미에 대하여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 풍경을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 당위적인 신념으로 버텨온 힘겨운 시절이 가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나타난 세월은 어떠한가? 똑같은 삶이 있을 뿐이다. 그 삶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의 세계가 아니라 일상 그대로인 ‘존재’의 세계이다. 사소한 일상의 편린들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이런 일상의 늪 위에 끝임 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일상성은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삶은 일상의 되풀이일 뿐이다. 일상성은 우리의 삶이면서 모든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삶의 일상성을 발견하는 일은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행위이다. 사소한 일들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부부간의 다툼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모습일 뿐이라는 발견을 해내고, 그래도 서로가 마음을 뉠 수 있는 안식처는 남편과 아내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내는 것이 연극을 관람하는 해법이다. ‘황소, 지붕이로 올리기’라는 제목의 의미해석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해법이 이 한 편의 연극 속에 숨어있다. 섬세하고 정갈한 대사, 잔잔한 갈등과 화해를 거듭해 나가는 지겹지 않은 구성, 이념적 무게가 아니라 새털처럼 가벼운 희극적 연기를 통해, 함께 찾아나서 보기로 하자.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윤미 '오중주'  (8) 2024.10.30
이언호 '빙혈'  (3) 2024.10.29
지경화 '옥수수 밭에 누워있는 연인'  (2) 2024.10.28
오영진 '해녀, 뭍에 오르다'  (5) 2024.10.27
오세혁 '지상 최후의 농담'  (2) 2024.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