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설유진 '이런 밤, 들 가운데서'

clint 2024. 9. 27. 13:23

 

 

 

서울동물원의 자랑인 앵무새 ‘사랑’이와 뻐꾸기 ‘자유’가 사라진지 9년. 
시인의 친구는 계간지 [자유와 사랑]의 자유기고 코너 ‘21세기의 시’에서 
오자를 발견한다. '랑사이' 인지 '사랑이'의 오타인지...
친구들이 누군가를 기억한다. 
새를 찾으며, 술을 마시며 그 누군가가 바라본 세상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랑 이야기가 있다.
이후 뉴스, 일기예보, 친구들 간의 대화, 누군가의 생생한 증언이 
번갈아 가며 제시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서울동물원을 탈출한 
뻐꾸기 '자유'와 앵무새 '사랑'이의 소식이다. 
둘은 종을 뛰어넘는 우정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9년 뒤 앵무새 사랑이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방송된다.
또 방송 뉴스에서는 익숙한 날짜가 등장한다. 
10월 29일, 4월 16일. 한국인의 마음 속에 트라우마로 새겨진 그 날짜들은 
그저 어떤 평범한 하루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깊은 상흔으로 남았을 때, 
우리는 문득 분노와 슬픔이 등을 맞댄 감정임을 깨닫는다. 

 


추천의 글 - 김숙종(극작가) 나는 '(non) free' 한가!
아쉽게도 설유진 작가님의 작품 <이런 밤, 들 가운데서>의 공연을 못 봤습니다. 추천의 글을 써야 하는데 보지 못한 작품을 쓴다는 것이 작가님께 송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의 글을 쓰는 건 희곡을 읽은 후의 감응 때문입니다. 희곡을 최대한 또박또박 읽고 공연을 상상하기로 결심했는데 '베리어 컨셔스' 개념이 적용된 공연이었습니다. 베리어프리 공연을 여러편 봤는데 '베리어 컨셔스'은 뭐지? 개념 정리가 시 급했습니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1974년 국제연합 UN 장애인 생활환경 전문가 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설계(barrier tree design)에 관한 보고서가 나오면서 사용된 말입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관객이' 영화나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막이나 수어 통역 음성해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 및 사용됩니다. 열심히 고민하고 시도하는 베리어프리 공연이 종종 프리ree한 이와 프리하지 못한 이를 분리/대립하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프리한 이들은 누구고 프리하지 못한 이들은 누구일까? (non)free는 고정된 정체성일까, 무엇을 해야 이곳은 완벽하게 프리해질까? 장벽만 제거된다면 되는 걸까! 이런 '저항감'을 앞서 느낀 마쓰시마 다카유키라는 예술가가 미학자 요시오카 히로시의 강연 중 질문을 던지며 '베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 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베리어를 제거한 자리에도 여전히 베리어가 있음을 의식하여 '장벽을 계속해 의식하는 태도 자체에 방점을 찍습니다. 
삶의 조건과 맥락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완전한 베리어프리는 불가능합니다. 베리어는 단지 시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베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 즉 장벽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모두를 위해 접근성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장벽을 허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장벽을 구성하는지 예민하게 살피는 게 더 중요합니다. 감사하게도 공연을 프리하게 느낄 수 없는 장벽이 있는 분들이 고려 되어진 희곡이 공연을 보지 못한 저에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너무나 익숙했지만, 딱히 의식하지 않았던 공연 전 주의사항을 읽는 순간 공연장 좌석에 앉은 것 같이 긴장됐습니다. 배우들의 의상이나 헤어까지 공연에 좀 더 가깝게 상상하며 「이런 밤, 들 가운데서」의 세계로 빨려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분명 저는 희곡만 읽었는데 공연을 봤다고 착각했습니다. 장벽을 인식하고 직조 되어진 이런 밤, 들 가운데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참사를 그저 멀리서 바라봤던 나와의 장벽을 허물었고, 참사와 장벽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효용 혹은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작가의 글 - 설유진
연극 <이런 밤 둘 가운데서>는 참사를 지나는 마음과 동시대 공연예술의 소용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작품으로 '더 큰 우리'가 함께 보고 듣고 읽을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자 '베리어컨셔스' 개념을 적용한 공연이다. 전통적인 연극무대 형태가 아닌 배우들과 관객들이 함께 둘러앉은 무대 형태로, 다섯 명의 배우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서 등장한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들은 누군가를 기억하며, 새를 찾으며, 술을 마시며 우리 주변의 그 누군가가 바라본 세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는 사랑이야기가 있다. 작품에는 자유와 사랑이 도망간 세상에서 그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 염원이 담겨있다. 극장에서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감각을 전하고 싶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정화 '화가들'  (1) 2024.09.29
최원종 '외계인의 열정'  (9) 2024.09.28
최준호 '천상천하'  (2) 2024.09.27
황정은 '애인愛人'  (2) 2024.09.26
강월도 '뉴욕에 사는 차이나맨의 하루'  (2)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