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원종 '외계인의 열정'

clint 2024. 9. 28. 18:28

 

 

선천적인 비만 유전자로 인해 거대한 살덩어리로 밖에 살아갈 수 없는 25살의 여자, 지옥. 

그녀는, 점차 시력이 감퇴되어 앞을 볼 수도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만다.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밖으로 나가보지 않았던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자살을 결심한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꿈꾸는데...

 

수많은 옷가방이 가구처럼 널브러져있고, 여러 군상처럼 바비인형들이 제각기 모습으로

늘어져있다. 막이 열리면 보기만 해도 토악질이 날 듯한 거대한 살덩어리의 여자가

귀엽게 손가락을 이용하여 눈 운동을 하고 있다. 그녀이름 지옥’. 

어떤 이유인 지 눈은 어슴프레 보일 뿐, 그녀 뒤로 환상처럼 바비 인형을 닮은 날씬하고

예쁜 여자 연옥이 등장하여, 그의 말과 상반되는 말들만 지껄인다. 

게다가 그녀는 스스로를 성()중독자라 떠들어댄다.

지옥의 눈은 운동 때문인지 연옥과의 대조적인 자신의 모습 때문인지

처절한 눈물을 쏟아낸다. 그리고 등장하는 남자 무간도 

그의 손엔 은색 카메라 가방을 짊어지고 지옥을 위한 와인과 칠면조가 들려있다. 

와인을 따르고 칠면조를 굽기 위한 오븐 예열을 기다리는 동안 춤도 가르쳐주고, 

최면으로 하늘을 나는 방법과 칠면조 굽는 법 까지 알려준다.

하지만 이 모두가 지옥에겐 불필요할 뿐이다. 그녀는 어서 죽고만 싶다. 

늘 답답한 살덩어리에 숨이 막혀 질식할 정도다.

 

 

 

 

극 속에는 여러 개의 상징들이 숨어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등장인물 이름의 상징성이다이들은 세 사람이지만 또한 한사람 속 세 욕망일 수도 있다. 마치 나를 살리고 죽이는 것에 가 아닌 타인의 손에 마약류를 흡입하고 황홀하게 죽는 것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군더더기 같은 살덩어리들을 전기톱으로 자르고 믹서에 갈아서 비로소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결국 지옥의 죽음은 무간을 통해 연옥이란 생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귀결 지어진다지옥은 자기 자신을 기괴하고 끔찍하게 죽이고 싶다. 하지만 스스로 하기엔 몸이 너무 비대하고, 자신감조차 없다. 누가 좀 죽여줬으면 좋을 텐데, 그 결과물로 인터넷을 선택했고, ‘무간이란 남자가 3일 동안 함께 지내기로 하고 온다. 그리고 그에 의해 잔혹하게 죽는다물론 그것은 그녀의 불필요한 살덩어리들이다.

연옥은 그녀의 처음 모습이거나, 마지막 모습이다. 아니면 바비인형의 의인화된 모습일 수도 있다. 결국 이 셋의 공통점은 지옥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성 중독자다. 그것은 아마도 무간도에게 보이고 싶은 지옥의 여자다움인지도 모른다.

무간도 지옥 연옥사이의 교량역할의 존재다. 그 또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고, 어린 아이를 불태워 죽인 적이 있는 흉악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는데, 그 사랑은 죽여 달라 한다. 결국 기괴하고 흉측한 도구를 사용하여 죽이게 되는데, 그때 환기구를 통해 눈이 부실만큼 빛이 쏟아진다. 마치 UFO라도 나타난 듯.

 

 

 

이름이 갖는 부정성처럼, 그들은 모두 사람이 갖는 추악한 면만을 드러낸다. 물론 이 들 사이에 사랑이라는 긍정적 요소가 작용하지만, 그것은 모두 약을 통한 환각효과일 뿐이다. 그러기에 여기서 약은 현실을 거부하고 환상의 세계로 통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UFO에 대한 존재는 그것의 출현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중요치 않다. 다만 있다고 믿는 자에겐 보일 뿐이다. 그들은 환기구를 통해 쏟아지는 빛 속에서 그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비대한 살덩어리의 지옥은 온 데 간 데 없다. 또 아는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지.

수많은 바비 인형과 옷가방은 그녀의 노리개이면서 과거이거나 죽음을 준비하기위한 정리 작업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언제든 떠나는 자신을 위해 말끔히 정리해놓은 것. 그래서 자신이 없더라도 홀로 외롭지 않게 방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지도연옥이 내뿜는 성()적 언어 - 여성과 남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보지’,‘자지 내 머리를 부셔줘”,“내 다리를 믹서에 갈아줘  - 거침없이 뱉기, 클래식 음악의 낭만적 선율은 오히려 그것이 갖는 성적 유희감이나 낭만성보다 작위적이고 어색하다. 마치 현실을 걷어차 버리려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느껴져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더욱 부추긴다같은 세상을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이르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극의 내용은 쉽사리 이뤄질 이야기도 아니며, 실천으로 옮겨질 일은 없다. 모두 환각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않은가, 본질적 자아보다는 약간은 이상심리를 가진 자아가 꾸미는 일들이다. 그러기에 이것은 매우 극적이다. 마치 잘 짜여진 단편소설을 본 듯하다. 하지만 상징성이 짙어서 이해하기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배우의 열정에 노고를 보내고 싶은 것은 극적 언어의 불순성이 갖는 생경함과 의상과 소품 속에서 갖는 섬뜩함을 잘 표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곳을 일러 지옥이 따로 없다 할 때, 매우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절망을 인내하며 즐기기까지 한다. 그것은 희망 기쁨이란 단어를 안고 있기에. ‘지옥 연옥이 될 때까지 무간도의 끊임없는 반복이 있듯이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인생의 무기력 때문에 외롭다고 느낄 수도 있고, 과도하게 넘쳐나는 살 때문에 외로움에 사무칠 수도 있다. 정상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남자와 여자는 너무도 외롭다. 남자는 정신병원에 갔다 온 적이 있으며 누군가를 살해한 적 역시 있다. 발작적으로 찾아드는 간지러움에 몸을 정신없이 긁어대기도 한다. 살이 넘쳐나서 제대로 움직이기조차 힘든 여자는, 뚱뚱한 여자를 집단적으로 혐오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서 빨리 죽기만을 바라고 있다. 세상과는 단절된 채 집안에 갇혀있는 그녀는 자신의 이름 '지옥'처럼 지옥 같은 삶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최원종 작가


작가의 글 

2005 시선집중 극작가전 -외계인의 열정]에선 이러한 남자와 여자가 채팅을 통해 만난다. 외로운 사람들끼리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 갇혀들수록 우린 극단적 생각을 하게 된다. '지옥'은 일명 정상인의 범주에 들주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상 속에서 섞이지 못한 채 나락으로 빠져든다. ' 지옥' 그녀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너무도 처절해서 슬프다. 자신의 얼굴을 반쪽으로 자르고 다리를 전기톱으로 잘라내고 믹서 기로 갈아냄으로써, 즉 눈에 보이는 자신을 없앰으로써 세상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남자와 여자는 3일간의 사랑을 한다. '지옥' 3일간 여자가 된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치마를 두른다. 몸에 맞는 치마가 없어 앞치마를 두른 그녀의 모습, 더더구나 스스로 허리를 묶을 수 없어 남자의 도움을 받는 여자의 모습은 그녀의 구차한 현실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그녀 역시 다른 여자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여자임을 느끼게 한다. 세상의 고통을 잊고자 마약 '하시시'를 하는 남자는 여자에게 역시 마약을 권한다. 함께 고통을 날려버리고 싶어 한다. 남자는 뚱뚱한 여자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상인의 범주에선 벗어난 치유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여자가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쉽게 말할 수 있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 전에 살을 빼려고 노력을 했어야지 않냐고. 그녀를 돕고자 하는 남자 역시 그녀가 살을 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지옥' 역시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그녀의 살은 이미 통제 불능이다. 그래서 여자의 처절함이 유리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처럼 박혀 온다. 남자 역시 세상에 상처를 받아, 정상적인 치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런 두 남녀가 사랑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지옥'의 집엔 수많은 바비 인형이 너부러져 있다. 그녀를 뺀 나머지 세상에선, 바비 인형같이 늘씬한 여자들만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모습 역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무장한 여인들처럼 보일 뿐.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숨이 가빠오는 그녀, 몸이 무거워 목을 맨 줄까지 끊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해 자격지심에 빠져있는 그녀이지만, 내면 속의 그녀는 너무도 자유분방하고 여성적인 여자이다. 자신감에 가득차 음담패설을 마구 쏟아내는 그녀의 내면, 운동을 가뿐히 해내는 내면의 자아와 현실의 뚱뚱한 자아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 장면은 그녀의 외로움과 작은 바램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여 진다이 지구상에서 남자와 여자는 사랑받지 못한다. 사랑하기 역시 힘들다. 그래서 외계인이 될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의 바램을 이루고자 한다. 이들이 지구를 탈출하는 그날, 그들은 웃을 수 있을까이번 작품은 결코 친숙한 이미지는 아니다. 그러나 색다른 재미를 준다. 자살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금,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될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외계인을 꼭 만났길 바라는 마음 역시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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