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희진 원작소설 김승철 각색 '수갑 찬 남자'

clint 2024. 8. 11. 10:19

 

 

"뛰어!"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남자는 뛰었다. 얼떨결에.
또 다른 누군가가 남자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는 남자의 오른손에 수갑 한쪽을 채운 후
다른 쪽을 주차장 자바라 문에 걸었다. "뭐지?"
남자는 뜨거운 한여름 태양이 이글거리는
주택가 골목의 단독주택 주차장 
자바라문에 묶여버렸다.
영문도 모른 채. 졸지에.
남자는 궁금하다.
"왜 나한테 이러는 거지?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거지?
왜? 왜? 왜!!"

연극 '수갑 찬 남자'는 어느 날 아침 영문도 모른 채 수갑에 채워져 
주차장 자바라 문에 묶이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로, 현대인이 처한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김희진 작가의 단편소설 <오후에게 묻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 <수갑 찬 남자>는 “수갑은 차가웠다.”로 시작한다. 연극 <수갑 찬 남자>는 이 수갑의 차가움을 공유하면서 이 온도를 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연극이란 장르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이 작품의 드라마투르그인 배선애 평론가의 말처럼 원작은 소설의 문법을 충실히 하여 수갑 찬 남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극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관객이 연극을 보기 위해서는, 소설 속 남자의 심리는 대사로 전환되어야 한다. 관객은 무대에서 인물의 내면의 서술을 읽는 것이 아닌, 인물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원작의 서사를 존중하여 각색한 연극 <수갑 찬 남자>는 남자의 심리와 상황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인물 간의 관계에 집중한다. 이러한 작업으로 인해 인물 간의 대화가 가능해지고, 비로소 극이 진행될 수 있다.

 무대 전면, 주택 차고의 자바라 문이 있고 이 문과 남자의 오른쪽 손엔 수갑이 채워져 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맥주를 사고 집으로 향하던 남자는 “수갑이란 가장 기본적이며 기초적인 구속 장치임과 동시에, 가장 먼저 범죄자에게 가해져야 할 당연하고도 응당한 법적인 폭력”(「오후에게 묻다」)을 느닷없이 당해야만 했다. 연극이 소설과 공유했던 수갑의 차가움, 이 차가움은 폭력에서 비롯되고 이 폭력의 근원은 법이란 제도이다.

 



 수갑 찬 손목, 고요한 주택가, 땡볕이 내리 쬐는 여름 더위, 짜증스런 매미소리 등 남자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남자는 마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물처럼 이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 누군가는 우선 자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법이란 제도다. 하지만 남자는 그 제도가 보여준 폭력성을 경험했기에, 그 가해자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을 구원해줄 어느 누군가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무대 상수와 하수에 위치한 동네 골목에는 이 ‘피해자’ 남자를 도와줄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다. 고요한 동네풍경에 이 남자만이 사투를 벌이는 상황이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의 앞에 한 젊은 여성이 지나간다. 남자는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여자에게 도와달라고 절규에 가까운 부탁을 한다. 여성은 일순, 남자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본다. 이 수갑은 어떤 말보다 강력한 시각적 상징물이다. 법의 효력이 빠르고 강력하게 작동한다. 이 여성에게 남자가 수갑을 채워지기까지의 과정과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수갑을 채웠다’는 법적 선언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런데 여성은 이 상황을 신고하지 않는다. 이 여성 또한 법의 폭력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폭력과 얽히지 않는 방법은 현 상황으로부터 도망가는 것뿐이다. 연극 <수갑 찬 남자>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젊은 여성이 보여준 법이란 제도와의 연대와 그 대처 방식을 공유한다. 남자에게 라면 먹을 뜨거운 물과 시원한 냉수를 제공한 옆집 아주머니조차 남자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은 법이 선언한 ‘훌륭하고 정직하고 공정한 말씀’이다. 법은 “애맨 사람을 그렇게 해놨을”리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 훌륭한 말씀의 진실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해 옆집 아주머니에게 자신을 신고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이 아주머니 역시 법의 폭력성을 알기에 남자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한다. 법은 그 효력도 강력하지만,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대처 방식 또한 강력하게 한다. 지나가던 여고생 세 명에게도, 수갑이 채워졌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동네 사내에게도 법이란 제도는 이처럼 연대하되, 연루되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존재이다.



   남자에게 더 이상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 다다른 남자는 이 세상에 그를 구원해줄 자가 없음을 깨닫는다. 이때 원작의 서사를 존중하며 극을 전개시켰던 연극은 원작에 없는 상황을 무대에 올린다. 드디어 남자는 법이란 제도와 마주한다. 남자와 형사가 취조실에 있다. 이제 남자는 자신이 죄가 없음을 증명해보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남자의 행동이 이상하다. 형사의 질문에 남자는 개처럼 멍멍하고 짖을 뿐이다. 남자에게 진실은 애초부터 법과 소통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법 또한 안팎 어느 곳에서든 폭력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제도에 다름 아니었다. 다행이 꿈이었다. 어린 아이가 그의 앞을 지나간다. 아이는 아직 법의 폭력성을 알지 못했기 때문인지 남자의 집에 들어가 가스불을 꺼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다. 남자는 아이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이름을 물을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남자는 단 한 번도 아이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남자는 이내 후회한다. 결국 그 또한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과정과 타인의 입장보다 자신의 안위와 위치가 중요할 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이 또한 어느 순간 법의 폭력성과 연대할 것이다. 법의 폭력성만을 비난하기에는 그 연대와 대처 방식이 견고하고 불온해 보인다. 무대 전면에 구원자를 찾는 남자처럼 어디선가 수갑을 찬 또 다른 남자들이 전면에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손목에도 철컥, 하고 수갑이 채워질지 모른다. 그 가능성이 점점 높아만 간다. 하지만 연대의 견고함으로 인해 느닷없이, 영문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수갑이 채워지더라도 땡볕에서 홀로 사투린 벌인 남자처럼 구원자를 찾을 수 없을까 두렵다. - 이주영(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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