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승철 '화전'

clint 2024. 8. 12. 11:21

 

 

 

이성계의 역성 혁명으로 새 왕조가 들어서던 어수선한 시기. 
1398년 초 늦겨울, 강원도 정선의 서운산 골짜기엔 세상의 흐름을 거스른 
사람들이 산다. 권력에 휘둘릴 일도 없고, 세류에도 무심한 사람들. 
그곳으로 권력의 최정점에 섰던 사람들이 숨어든다.
연극은 한 줄의 역사에서 시작됐다. ‘두문동에 숨어 지내던 고려 유신 중 
전오륜을 비롯한 7명이 강원도 정선 서운산으로 은거지를 옮겨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는 이야기. 
이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 연극 ‘화전’이다

 



이야기의 줄기는 단순한 데다 상투적이다. 
조선의 건국에 고개 숙이지 않고, 강원도 정선으로 숨어 들어간 
고려의 충신들과 서운산 골짜기에서 흙을 밟으며 살아온 화전민들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갈등과 화해, 연대의 이야기다. 
촌장의 포용에 따라 유신 공동체는 산속에서 은둔생활을 한다. 
두 공동체는 확연히 다른 환경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화전민들은 강원도 정선의 한 산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며 
지내면서 성격이 다소 억척스럽고 생활력이 강하다. 
반면, 유신들은 점잖고 배운 것이 많으며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절개를 지키기 
위해 산속까지 도망 온 자들이다.
그 과정에서 두 무리 속 남녀의 사랑이 피어나고, 
그 사랑이 분노의 씨앗이 돼 비극으로 맺어진다.

 



이런 극의 배경을 바탕으로, 연극적 강렬함이 솟아나는 때는 크게 세 지점이다. 첫째는 공동체의 리더들끼리 대화하는 순간이고, 둘째는 이랑(화전민)과 전연(유신)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 셋째는 돌치(화전민)와 전연이 목숨을 건 대립을 할 때이다. 본 공연에서 ‘눈을 바라보고 하는 대화’란, 수많은 등장인물 중 인물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나타나는 것 같다. 서로를 마주 보는 순간의 강렬함에는 첫 불씨만큼의 스파크가 존재한다. 서로의 마음이 일치하는 순간이든, 서로를 숙적으로 인식하는 순간이든 시선이, 그리고 몸이 열린다. 다른 환경, 학식과 신분의 차이를 가진 두 공동체가 소통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테다. 더군다나 같은 공동체 내부에서도 소통의 어려움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 사이에 어떠한 접점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 사이에 대화가 되고 있고, 마음이 연결되고 있다. A지점에서 산을 태우고, B지점에서 산을 태웠을 때 C지점에서 불길이 만나는 것처럼. 각자의 마음속에 타오른 불이 만나 서로를 맺는다. <화전>에서는 나와는 다르다고 믿고 다르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다르지 않은 인간의 본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돌비가 산짐승(고라니)을 잡아 와 유신 공동체에게 낫자루를 건네며 짐승의 목을 따라고 조롱한다. 비장한 느낌의 라이브 국악이 고조로 치달으며, 전연은 두려움에 몸서리친 채 고라니의 목을 벤다. 이제 야만성은 화전민의 것만이 아니다. 평생 몸으로 노동해 본 적 없는, 붓을 쥐고 글을 읽었던 유신도 생존 앞에서는 선택지가 없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젖어 들고 순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 장면은 본 공연에서 일품 가는 장면이다. 공존을 말하고 있는 본 공연에서, 함께하는 과정 동안 인간에게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날것으로 보여주었다. 전연이 산짐승의 목을 따고, 무대는 붉은 조명으로 물들여지며 피비린내가 금방이라도 극장에 진동할 것 같았다.  촌장이 말한다. “마카(모두) 산 사람들이 다 됐어요”.

 



마지막은 산불로 끝난다. 유신들을 잡기 위한 관군이 불을 지른 것이다.
결국 이들은 모두 잡히거나 죽거나, 부상당해 끌려나간다. 
황량한 무대 위, 불타는 소리가 장렬하게 들린다. 산이 타고 있다. 
산을 불에 태워 생계를 이어가던 강원도의 화전민(火田民)들이 멍하니 
산불을 바라본다. 잠시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났어도, 사랑이 실패했어도, 
자식이 죽었어도 타오르는 산불과 같은 아픔을 간직한 채 생을 이어가야 한다. 
그렇게 잿더미가 되어버린 자리에 씨앗을 다시 뿌려야 하니까. 
그것이 화전민의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