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주수자 '빗소리 몽환도'

clint 2024. 5. 21. 16:00

 

 

연극은, 1막 2장, 2막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껍질처럼 연극을 둘러싸고 있다.
장소는 1막은 시청 앞 길거리, 2막은 하늘이 보이는 옥탑방이다.
때는 하룻밤과 그 다음날이다.

마치 시와 같은 장면으로서, 이 연극의 당사주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김강한 길거리에 주인공은 빗자루를 겹처럼 세우고 무릎을 꿇고 있다.
공상호는 작은 문고판 소설을 읽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는 대가의 작품에 감탄한다. 그러다가 의혹을 품는다. 

왜 그들이 낭만적 사랑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그들의 죽음은 너무 충동적인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자살을 걱정하면서,
공상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빗자루를 만지면서 현재를 확인한다. 

너만은 확고하다고!
밤늦도록까지 그는 책을 읽고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그런 멋진 여자가 있다면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때 누군가가 똑똑, 문을 두드린다. 현실과 환상이 합선되기 시작한다. 결국...
여자와는 달리 공상호는 잠못 이룬다.
어머니가 방문하여 여자의 뱃속의 태아가...
또한 우주에서 한 생명이 이곳에온다는 건 

대단한 사건이며 장엄함이라고 말한다.
다음날 아침이다. 공상호는 여자에게 마음을 열어 자신의 상처를 말한다. 

그럼에도 여자는 사라진다.
난데없이 소설 속의 남자까지 옥탑방으로 찾아오게 된다.
그들이 떠난 후 공상호는 홀로 옥탑방에 서있다. 

새책의 첫 장을 펼친다. 그의 생일날이었다.
점점 현실과 환상이 합선되고, 꿈의 경계마저 덧칠해지고 확장되면서, 

어느 것이 현실이고, 또 무엇이 현실의 모습인지 공상호의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연극은 이 혼돈을 관객에게 경험하게 하고, 그것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작가는 계속 우리가 경험하고 있거나 보고 느끼고 있는 현실이란 하나만이 아니라 무수한 다른 현실들이 개입하 고 있다는 시선을 갖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일상에서 대부분의 우리는 또렷한 하나의 사실을 선택하지만 실상은 다른 현실들이 이미 개입되어 있고 은밀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독특한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선지 그는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에 굳이 애써서 어떤 통로를 만들지 않는다.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떤 부연 설명도 없다. 그의 인물들은 그런 절차 없이 곧바로 현실과 비현실의 장면들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당위성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전달된다는 것이 그의 희곡들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빗소리 몽환도」에서 도서관 청소원 공상호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다가 스르륵 책 안으로 들어간다. 책 속에서 줄리엣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데 어느새 그들은 현실의 문제에 접하고 있다. 그 뒤에 공상호는 소설책을 읽다가 그의 옥탑방을 찾아오는, 책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비현실적 여자와 남자의 현실적 문제에 자연스레 개입하게 된다. 희곡에서 주인공 스스로 언급하듯 "사람이 섞이고, 시공간이 섞이고, 사건이 섞여버린" 상태가 마치 꿈을 꾸는 상황처럼 느껴지고 반복된다.

 



작품의도- 주수자
「빗소리 몽환도」 작품은, 책을 읽는 행위란 마치 몽환도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작가의 사상에 연극의 핵심이 놓여 있다. 즉 현실의 부정이 아닌, 또한 현실과 상상의 이분법 세계가 아닌, 현실의 확장을 말하고 있다. 연극은 인간이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의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황폐해버린 현대인들이 이 삭막하고 스피디한 사회구조에서 어느 정도 탈출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 예술이란 장르의 힘은 구원에 가깝다. 과학으로 제한되어버린 현대인은 종교로 구원될 수 없으며, 이젠 예술만이 우리를 더 깊고 넓은 세계로 상승시킬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으로 일상을 자각하고, 우리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감지함으로서 비로소 한 인간이 풍요로워짐을 작품은 보여주려고 한다.
또한 이 작품의 중심 사상에는 책 = 인간 = 옥탑방 = 우주를 동격으로 보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근원적으로, 이들 간의 경계는 없다. 오직 우리의 의식과 언어가 눈에 보이는 하나의 현실만을 협소한 공간으로 고정시키지만 않는다면!

 


작가 주수자 (시인, 소설가)
서울대학교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
미국에서 콜케이드 신학대학원 졸업
2001년에 "한국소설" 로 등단
소설집 "버팔로 폭설" "안개동산" "붉은 의자"
시집 "나비의 등의 업혀"
제1회 스마트소설 박인성 문학상 수상 "거짓말이야, 거짓말"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정웅 '연(緣Karma)'  (1) 2024.05.23
배삼식 '3월의 눈'  (1) 2024.05.23
마미성 '담장 위의 고양이'  (1) 2024.05.20
김영근 '전심마취'  (1) 2024.05.19
김영래 '엄마의 환상곡'  (1) 2024.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