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행렬이 시작된다.
어디선가 나타나는 다시래기 패들.
죽음의 이미지들이 전통 상례의 변형으로 변주된다.
이승의 끝... 발상, 습, 반함, 달고질....
씻김굿, 상여행렬이 흥겨운 리듬과 소리, 원무, 승무로 어우러지고
죽음까지 아우르는 우리의 흥이 무대를 감싼다.
저승의 또 다른을 축원이라도 하듯
무대 가득 하얀 꽃잎이 흩날리고...
잠시 후, 혼례의 서곡과 함께 만장이 흩날리고
시자들이 등장한다. 청사초롱이 길을 밝히며
혼례의 서막을 알리고 시자들이 예를 알리며
초례를 치르는 신랑신부,
이윽고 두 사람은 긴 시간의 벽을 넘어
상징적이지만 유머러스한 대사들로 흥을 돋우며
부부緣의 갈등을 묘사한다.
삶은 여행이며 우리는 그 여행을 추억하며 緣을 쌓아간다.
아름다웠던 한 시절을 쫓으며,
추억의 오브제가 등장하고 시간을 거스른다.
어린 시절... 수많은 만남속에 세상은 커지고
緣은 찰나를 붙들려는 듯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른다.
한 떼의 하얀 나비들이 동구 밖으로 사라진다.
심장 고동을 닮은 타악이 울리고
이제 하늘과 땅이 열린다.
대지의 어미가 끝없이 아이를 낳는다.
연은 연을 낳고 끝없이 새로운 고통과
기쁨의 탄생이 이어진다.
<緣Karma>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나고, 났다가 죽는 것이 끝없이 반복한다는 윤회 생사를 바탕으로 삶과 죽음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역시 우리 삶의 주변이며 일 부라고 생각하는 동양적이며, 불교적인 시선이 다분히 녹아 있다. 그것은 점점 순간적이고 가벼워만 지는 우리들에게 '인연'의 소중함과 추억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아름다움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러한 주제를 바탕으로 전통 상례와 초례의 랩를 승무, 달고질 춤과 노래, 읍과 절 등 다양한 우리 가락과 몸짓을 재현하면서 동양적인 것과 한 극적인 것, 불교적이면서 토속적인 멋을 한껏 선보이며 동양적 세계관을 연극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緣 Karma>는 2001년 일본 동경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발, 오키나와 페스티발, 2002년 국립극장 컬처로드, 서울공연예술제 등에 참가하여 가능성을 인정받고, 2003년에는 세계적인 연극제인 “제15회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에 참가하여 대상(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대상은 프랑스의 태양극단이 수상을 한 바 있는 권위 있는 상이다. 또한, 대상 뿐만이 아니라 여우주연상과 무대미술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훌륭한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세련되고 단아한 한국의 美를 깔끔하게 살린 미술-미니멀하게 변형 제작된 상여, 상례와 초례의 소품들, 물동이, 키, 연, 봇짐 등 한국적인 오브제, 의상, 악기들과 함께 마치 온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인 듯 어우러지는 앙상블로 문화상품으로서 세계 공연시장으로 진출하는데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세혁 '우주인' (1) | 2024.05.25 |
---|---|
김창활 '마술사의 제자' (1) | 2024.05.24 |
배삼식 '3월의 눈' (1) | 2024.05.23 |
주수자 '빗소리 몽환도' (2) | 2024.05.21 |
마미성 '담장 위의 고양이' (1) | 2024.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