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대도시의 중심가 정신병원의 환자실을 무대로 설정,
환자 A, B 의사와 사내C를 등장시켜 등장인물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다.
윤조병작가는 여기서 현대의 메커니즘을 잿빛으로 상징화 시키고,
거기에서 소멸되어가는 인간의 순수성, 획일화로 인한 개성의 상실을
온몸으로 그리워하는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들은 그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그 명목은 그 자신을 옭아매는 것이다.
도시 정신병원에서 인물들이 바라는 염원의 발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각 인물들의 염원은 순수한 자연으로의 회귀이다.
자연 세계와의 소통을 갈망하는 여환자의 염원은 '잔나비'로 표상되었고,
남환자는 도시의 소음을 거대한 땅덩이의 딸꾹질로 인식하며,
'땅덩이의 딸꾹질을 멎게 하겠다'는 염원이 있다.
여 환자는 지속적인 처벌에도 멈추지 않는 고속도로에서의 배설행위를 통해
세찬 물줄기를 만들고 있다.
이들의 염원은 결국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 이용당하는 '자연'의 모습,
스크린 속 신음하는 인간의 모습과도 같은 자연의 상태,
자연의 순수성을 보호해주는 모성애적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극은 자연과 인간문명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을 균형의 문제로 시각화 한다.
즉, 딸꾹질은 '평균대'와 그 평균대를 오르내리는 인물들을 통해서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한 주제의식을 심화시킨다.
돈돈수월래 - 윤조병(作家)
「잔네비는 돌아오는가」에 대해 쓴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다가 돈돈수월래를 '豚豚水月來'로 주석를 다는 어리석은 짓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척 답답해서 썼는데 어떻게 답답했는지 기억이 없다. 그때 돈돈수월래를 알았더면 엉엉수월래, 엉엉수월래⋯ 하면서 강강대신 여러가지 메스꺼운 단어를 붙여가면서 실컷 불러봤을 텐데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이걸 쓴 것 같다. 지금도 그대로 답답할 뿐이다. 나의 생명력, 사상, 이념, 지성, 등 모든 것이 파괴되는 아픔이다. 素材를- 잔네비, 숲, 딸꾹질, 생쥐, 들쥐, 곱추, 고속도로. 오줌싸게- 는 하나같이 象徵性을 띄고 있어야 한다. 이것들이 구성하거나 포함되어지는 상황은 하나하나 독립성을 갖고 낱알로 굴러다니지만 어두운 색채로 연결되어있다. 선과 악의 대결이 없으며, 사건도 주인공도 플롯도 없고, 인물에서 개성을 찾는 일도 불가능하다. 주제를 꼬집어 내기 위해서는 집합상황에서 색채를 읽는 일이고, 이 색채는 한장의 긴 白紙일 뿐인데, 이 白紙 위에 관객이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 결국 관객에게 너무 어려운 작업을 요구하는 셈인데 대단히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그 그림만이 위대한 生命力이요. 사상이며, 굽이치는 지성이며, 대중일 수 있는 것이다. 횡설수설한 것이 돈돈수월래에 '豚豚水月來'의 주해나 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막이 내려지는 날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면 독주를 딱 한잔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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