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처럼 소멸과 재생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혜림’과 해파리가 재생할 수 있도록 돕는 바위 역할을 하는 ‘나’가 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이종의 생명체인 ‘혜림’에 관한 비밀과
그녀를 자신의 아들에게 양도하지 않기 위해 끔찍한 살해 계획까지 세우는
‘나’의 이야기이다. 결코 누설할 수 없는 비밀에는 ‘혜림’을 이용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추악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스틸레토」는 인간의 외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파리처럼 숙주를 통해 영원히 살아가는 이종의 생명체를 다루고 있다. "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한테 가장 소중한 건 뭐라고 생각해? 먹이나 애인? 동료나 가족? 어쩌면 필요할 때 달라붙을 수 있는 바위가 아닐까."(123쪽) 서술자 '나'는 혜림이라고 하는 이종의 생명체에게 선택된 바위의 입장에 있으며,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죽음이 임박함에 따라 혜림을 다시 다음 바위에게 상속하고자 한다. 그러나 혜림이 원하는 양수인인 아들 규석이 아니라 다른 양수인을 구하고자 한 '나'의 노력에 의해 혜림은 뜻밖의 인물인 준영에게 상속되며, 준영은 자기 자신이 처참하게 살해한 혜림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목도하며 동시에 그녀를 상속받는 것이다. 이 과정은 불필요하게 잔인하며 다소 충격적인 방식으로 결말을 형성하고 있다. 이 놀라움을 안겨주는 방식의 과도함과 의식적인 잔혹함은 사실 혜림의 존재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생식 혹은 생리 자체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까지나 혜림의 존재는 바위를 숙주 삼아 기생하는 대신, 바위가 되는 사람들을 유력자로 만들어주는 초월적인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혜림의 생존수단임과 동시에, 마치 인간을 세속화하는 욕망 자체의 은유와 같다. 따라서 그러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근본적으로는 바위가 되는 숙주의 죽음뿐이다. 그러나 혜림은 다시 다른 숙주를 찾을 뿐이며, 그 과정은 죽음에 필적하는 강력한 폭력에 의해 구성된다. 실제로 인간이 아닌 존재로서 혜림에게서 드러나는 비인간적인 성격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지영 작가는 철저하게 이 모든 것을 인간적 시선과 감수성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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