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미현 '팬티 입은 소년'

clint 2023. 11. 16. 12:55

 

 

 

엉덩이 부분에 방석 솜을 덧대서 도박전용 바지를 만드는 오버로크 할머니가 있다. 엉덩이 부분을 아예 뻥 뚫어서 화투칠 때 용변을 봐야 할 때, 바지를 내리지 않고 바로 싸게 해주는 도박전용 바지를 만든다. 도박꾼들이 도박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는 것이다. 그의 아들은 형광등을 수시로 교체한다. 도박꾼들에게 빛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래야 빚이 있는 사람들이 수시로 달려들어서 광명에 빠져 들 수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도박꾼들이 오래오래 화투를 칠 수 있도록 몸보신용 국을 끊인다. 11세 그들의 아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고양이를 사냥한다. 늘 팬티차림이다. 수박 끈에 고양이를 담아오거나 묶어서 질질 끌고 오는 게 아들 (소년)의 임무다.

수선·전파사라고, 입간판을 내 놓은 이 집은 실은 생활에 찌든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도박을 하는 장소인 것이다. 이곳에 오는 도박꾼들은 거창한 살림살이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아니고. 생활에 찌든 궁핍한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안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돈이 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현금 박치기. 화투가 끝나면 에누리 없이 돈 계산까지 하는. 이번에 수선·전파사에 몰려든 한 팀은 어쩐지 궁상맞아도 너무 궁상맞다. 머리에 비녀 꽂은 할머니 도박꾼은, 집에 있는 영감이 자신이 소파에 앉아있으면, 자신을 소파로 착각하고 깔아뭉갠다고 한다. 도박판에서 돈을 벌어서 꼭 독립을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졌다. 환갑 넘은 도박꾼은 도박을 시작한 이유가 훨씬 더 현실적이다. 이십년 전부터 도박을 해온 환갑 넘은 도박꾼은 밀린 수도세를 내려고 늘 도박을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십대 중반의 도박꾼이 있다. 이 도박꾼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팔 년 동안 떨어졌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에. 합격은 휴전선을 넘는 것 보다 힘든 일이라고 여기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그만 둔 인물이다. 그러면서 피부로 바로 느낄 수 있는 현금박치기 식 도박에 흥미를 갖고 이 일에 뛰어든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이 세 사람은 서로 너무 친밀하고, 집 안 사정까지 훤히 알고 있다. 뭔가 꿍꿍이들이 있는 세 인물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목사님이 이곳을 찾아온다. 가랑이가 찢어졌어요, 라고 하면서 수선을 할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다. 이 목사님은 도박판이 국민계라고 믿고 있다. 한사람씩 바로 눈앞에서 현금을 몰아주는 품앗이 같은 계. 교회에 신자들이 없어 밀린 월세를 해결하고자 이곳을 찾는데. 어느 날 잘 운영되고 있던 이 수선·전파사가 휑해졌다. 고양이 잡는 소년이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뭔가 이상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전하는데…….

 

 

 

 

 

하얀 팬티 또는 짧은 반바지 차림의 소년이 자기네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 밑에 누워  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집안 어른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화투판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고, 몇몇 어른들은 자기들의 소일거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연극 <팬티 입은 소년>의 시작은 이런 장면들로 시작한다. 마치 그 자리에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일상적으로 해 오던 일들을 계속 자연스레 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관객들도 그 집 안 사람들의 일원인 것처럼 느껴진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본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정말 많은 메시지와 의문을 남긴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특징도 매우 독특하다. 그들은 특정한 이름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오버로크 돌리는 할머니’, ‘형광등 가는 아빠’, ‘보신탕 끓이는 엄마’, ‘머리에 비녀 꽂은 할머니 도박꾼’, ‘환갑 넘은 도박꾼’, ‘목사’, ‘이십대 중반 도박꾼’, ‘고양이 잡는 소년처럼 그들이 맡은 역할을 이름으로 지니고 있을 뿐이다. 서로를 부를 때도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하는 일을 이름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처럼 매우 자연스럽게 서로를 부른다. 이렇게 독특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벌이고 있는 화투판은 도박이었고, 해당 집은 도박 방이었던 것이다. 사회 통념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도박이 도박 방이라는 장소까지 만들어서 사업적으로 행해진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척박한 세상 속에서 을 벌기 위해 비도덕적이고 위법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도, 도박판을 벌이는 사람들도 다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밖에도 등장인물들의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대사들을 통해 사회 속 부조리한 면모들이 들어난다.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대사들을 중심으로 본 작품이 말하고자 했던 사회 속 부조리한 면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친일파가 되어야지 독립투사가 되겠다고 하다니!”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마치 채만식의 만세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만식의 만세전은 일제의 탄압과 3.1운동이 끝난 후의 당대 상황을 매우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 작품에서도 독립투사가 되어 힘들게 세상살이를 하지 말고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세상을 노련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본 연극에서는 한창 자라나는 11세 아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겠냐고 묻자, 소년은유관순 누나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집안 어른들은 노발대발 하면서 이완용 같은 친일파가 되어야 한다고 몇 번을 일렀냐!”라며 소리친다. 독립투사가 되겠다는 정의를 마음에 품고 자라는 아이에게 친일파가 되라는 어른들의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역사적으로 사회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던 일부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스톱, 스타벅스 등 다 똑같은 가게들이 즐비하고 있는데

 

 

 

 

 

팬티 입은 소년이 골목을 잘 못 들어서 자신의 집과 똑같은 집에 들어가게 된다.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며, 주변의 풍경이며, 심지어 집안에 놓인 물건들까지 모든 것이 다 똑같다. 그런데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아닌 머리에 비녀 꽂은 할머니 도박꾼’, ‘환갑 넘은 도박꾼’, ‘목사’, ‘이십대 중반 도박꾼이었다. 그들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소년은 그 곳에서 도망을 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데, 소년의 아버지가 요즘 밖에 나가면 미니스톱이니 스타벅스니 모든 가게들이 다 똑같이 자리 잡고 있는데 집 찾아오는 길이 헷갈릴만도 하지.”라도 말한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 낸 듯, 개성은 없이 돈만 벌기 위해 획일적으로 만들어지는 여러 체인점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말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년이 잘 못 들어간 자신의 집과 똑같은 그 장소는 도박꾼들이 도박방의 사업을 똑같이 베껴서 새로 연 도박 방이었다. 결국 소년의 가족이 하던 도박방은 망하게 되는데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천편일률적으로 벌여지는 똑같은 사업들의 미래가 어떠할지를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빛이 있어야 빚이 있는 사람들이 수시로 달려들어 광명에 빠져들지.”

 

 

 

 

 

작품의 주요 장소는 도박이 벌여지고 있는 도박 방이자 전파상인 곳이다. ‘형광등 가는 아빠는 수시로 형광등을 갈면서 보다 원활하게 도박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범법을 저지르고 또 사람들을 도박판으로 끌어 모으는 행위를 보며 인간 존재의 숙명적 비루함에 대해 철저하게 느낄 수가 있다. “빛이 있어야 빚이 있는 사람들이 수시로 달려들어 광명에 빠져들지.”라는 대사를 보면 빛을 쫓아 빛 주위에 모여드는 벌레들의 모습이 도박꾼들의 모습에 투영되어 그려진다. 벌레들이 정신없이 빛에 미쳐 빛을 쫓듯, 도박꾼들 또한 빚에 미쳐 정신없이 빛을 쫓는 것만 같다. 도박꾼들의 처지를 보면 정말 딱하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유형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늙은 나이가 되어서까지 자신의 집도 하나 마련하지 못한 머리에 비녀 꽂은 할머니’, 종자돈이라고 벌어서 밀린 공과금을 채워보려는 환갑 넘은 도박꾼’, 중학교를 중퇴하고부터 공무원 준비를 했으나 번번이 떨어져서 미래를 위한 돈이라도 벌어보려는 이십대 중반 도박꾼’, 그리고 신도가 없어 망해가는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려는 목사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인생의 최후의 수단으로 도박까지 손을 대는 사람들이나, 도박을 벌여주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나 딱한 인생이기는 매한가지이다. 이러한 일들이 실제 우리 주변에서도 발생하는 일들이라는 게 마음 한 편을 아려오게 한다.

 

본 작품은 인간 존재의 숙명적 비루함과 삶의 부조리를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연극을 보는 내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작품에서 우리 사회 속의 어두운 모습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팬티 입은 소년은 감나무 밑에서 11살인 자신이 보기에도 뭔가 옳지 않은 세상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더 성숙해져야만 한다고 고뇌했을 것이다. 어린 나이이지만 소년이 보여주는 행동과 들려주는 대사들은 순수하지도, 어리지도 않다. 어린아이들에게 어른스러워져야만 한다고 일찍부터 강요하는 이 세상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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