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임규 '탑꼴'

clint 2023. 11. 15. 09:27

 

 

공원에 모여 소일하는 주인공 노인들(영춘노인, 허풍노인, 수퍼맨노인, 새몰이노인)은 늘 같은 장소에서 연설을 하며 무료함을 달랜다. 어느 날, 허풍노인이 연설을 하고 있는데 부랑자 '산타'가 자루를 어깨에 메고 황급히 들어선다. 뒤이어 공원의 '소장'과 관리인 '깜상'이 들어와 산타를 거칠게 끌고 간다. 노인들은 의아해하지만 그저 바라만 볼 뿐 소장의 힘 앞에서 어쩌지 못한다. 잠시 후, 끌려 갔던 산타가 씩씩거리며 나타난다. 자루 속의 내용물이 술병인 줄 알았던 소장과 깜상의 경솔함을 나무라며 산타는 흥분한다. 자루 속의 빈 병을 확인한 노인들은 웃고 만다. 술병을 바라보던 노인들은 술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전에 같이 술판을 벌이던 '화초여인'을 생각하는데 '왕목사'가 등장한다. 수퍼맨노인은 영생에 대해 질문을 하며 왕목사를 반기지만 왕목사는 횡설수설한다. 그러는 가운데 매춘행위로 공원서 추방당했던 화초여인이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소장과 깜상의 간섭을 받으며 등장한다. 술 반입에 개입하며 뒷돈을 챙기던 소장은 화초여인의 등장을 은근히 반기며 프락치로 이용하려는 흑심을 품는다.

 

 

한편, 화초여인의 등장을 어색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피했던 왕목사는 화조여인과의 대면을 통해 자신과 화초여인의 구원을 희망한다. 화초여인은 과거 공원 뒷골목에서 어린 창녀의 기둥 서방으로 못된 짓을 일삼던 왕덕수를 성토하지만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러던 중, 화초여인은 소장의 간악한 계획을 알면서도 공원에서 쫓겨남이 두려워 밀고자 역을 수락한다. 당당히 술을 반입하여 자신들에게 권하는 화초여인의 모습을 이상히 여기던 노인들은 화초 여인의 난감한 상황을 알게 되고 산타의 자루를 운반도구로 사용해 대량의 술을 공원에 들여와 온 공원을 술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선거철을 맞이하여 고위 관료들이 공원에 방문하는 날을 디데이로 잡은 노인들은 계획대로 온 공원을 술과 가무로 흥성거리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흥성거리는 가운데 오랜 매춘으로 인해 지방에 시달리던 화초여인이 폭음으로 쓰러진다. 왕목사는 화초여인의 모습에 불길함을 느낀다. 호흡을 점검하는 왕목사 의모습에 심각성을 느낀 노인들은 화초여인의 주위에 앉아 꼼짝하지 않는다. 울타리처럼.

 

 

 

<탑꼴> ''은 노인(현대인)을 의미하며 소외를 상징하는 기표이다. 또한 ''은 두가지 의미 내포하고 있으며 그 두가지 의미를 함축한 표현이다. 첫째로 외부의 모양으로서의 '' , 세모꼴 네모꼴하듯 형태의 유사성을 말함이고 두 번째로는 내부의 모양으로서의 '' , 처해있는 상황이나 처지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가치가 상실되고 역할이 사라져버린 '' '노인'들을 통해서 현대인의 소외성을 재확인하며 그 처방을 모색하고자 의도되었다.

 

 

 

 

작가의 글 임규

몇 해 전에 작고하신 장인어른의 권유로 노인을 소재로 한 희곡을 구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자료까지 확보한 상태였지만 중도에 포기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자료만으로 한편의 희곡이 완성될 것이라는 어리석음이 그런 우를 범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숙성이 덜 된 작가의 모범적인(?) 경우였습니다. 이후, 꼭 써야 한다는 욕심만 앞선 채 헛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가 계기가 되어 결국 <탑꼴>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원각사지 10층석탑에 철골유리 보호막 설치, 서울 탑골 공원인 국보 제2호 월각사지 10층석탑에 내년 11일까지 10억원을 들여 가로 8.4미터, 세로 8.4미터, 높이 14.4미터의 철골유리 보호각이 설치된다. 이는 1467년에 대리석으로 건립된 이 탑이 최근 들어 산성비. 패인 조류 배설물 등으로 퇴락현상의 가혹한데 따른 보호자인의 조치다.” 기사의 내용이 세계는 보호의 차원이 아닌 소외의 작업에서 내려진 주제로 투영되었습니다. 탑이 탑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탑으로서의 가치와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탑으로서의 역할과 가치가 상실된 탑은 그 구조물이 뿐입니다.

<탑꼴>은 그렇게 씌어졌습니다. <탑꼴>은 작년부터 억지로 시작되어 이후 9번의 수정을 거쳐 희곡심사를 신청하게 되었고 오늘 무대에 모습을 펼쳐 보이게 되었습니다. 승화된 무대를 기대하며 조바심을 감춰봅니다. 그저 습작으로 묻혀 버릴 작품에 힘을 불어넣어 주신 문고헌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울러, 속 깊은 사랑으로 소리 없이 늘 지켜봐 주신 김길호 선생님과 역할의 관계없이 오직 신망 하나로 참여해주신 이대로, 서권순, 한일수 선생님 그리고 오래전부터 극단주와 동고동락하신 박영자. 신국. 김윤형 선생님. 연극의 동지적 입장에서 기꺼이 참여해주신 이종구. 변은영. 정선일 선배님과 극단춘추 단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바입니다. (1998년 극단 춘추 공연)

 

임규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승주 '마지막 시도'  (2) 2023.11.17
윤미현 '팬티 입은 소년'  (0) 2023.11.16
이동진 '알비장'  (2) 2023.11.14
남지심 원작 이재현 각색 '우담바라'  (2) 2023.11.14
심회만 '죽음의 보고서'  (2) 202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