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부터 동아일보사에서 벌이고 있는 창극운동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갖는 것인데 소재선택에 있어서 윤봉길 의사나 임꺽정전을 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윤봉길 의사 같은 소재는 일제시대에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소재였고 임꺽정 역시 아직 창극으로 상연된 바 없는 신소재이다. 묵은 이야기이면서 어느 시대에나 재미있게 수용될 수 있는 임꺽정의 이야기는 명종실록에도 나오는 실제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정치가 혼란하고 관리들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하던 명종조에 경기도 양주 백정 출신으로 태어나서 많은 동지를 규합하여 의적 행세를 했던 인물이다. 주로 관가의 창고나 부정한 관리의 재물을 빼앗아다가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원성이 높은 관리들을 혼내 주는 등 억압받는 백성들이 호응할 만큼 시원한 일을 많이 한 도적이었다. 그래서 많은 동지를 규합할 수 있었고 경기도 황해도 일대에서 큰 세력을 떨치기도 하였다. 한때에는 개성을 쳐들어가 그를 잡으려고 하던 포도관 이억근을 살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의적이라 하더라도 도적은 도적이다. 그의 세력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1559년부터 크게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임꺽정의 세력은 1560년 그의 형 가도치와 참모 서림이 체포되면서 기울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1562년 임꺽정마저 토포사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하게 됨으로써 그의 일생은 끝나고 만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데 이런 내용을 줄거리로 한 많은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또는 소설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상연되게 되는 <화적 임꺽정>도 역시 이런 이야기 내용을 거의 다 포함하고 있다. 다만 창극으로 공연하기에 좋도록 각색하고 특징 있게 사설을 다듬었다. 그래서 창극 특유의 사설다운 면모를 갖추었고 꽤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조건들도 갖추었다. 창극으로 일반소설이나 이야기와 다르게 음악으로 연출되는 공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본의 이야기를 음악화 하는 작곡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창극의 작곡은 판소리의 음악어법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오선지 위에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를 잘 아는 사람이 입으로 직접 작곡하는 것이 예사인데 이번 임꺽정의 작곡은 정철호씨가 맡았다. 초창기의 강용한이 활동하던 시대에 대개 기존의 판소리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졌으니까 작곡활동이 활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정정열이 활동하던 시대나 그 이후 김연수, 한일섭, 정철호 등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많은 새 작품이 생산되었으므로 보다 작곡이 활기를 띄었었다. 그러나 한편 창극의 음악이 너무 쉽고 음악적으로 빈약하다는 지적은 많이 받았었다. 판소리의 음악수준보다 낮은 작곡이어서 창극의 발달이 오히려 판소리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높았다. 그래서 1960년대에 와서 창단된 국립 창극단은 1980년에 들어오면서 초창기의 창극처럼 다시 판소리의 음악을 그대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창극은 연극적인 재미와 함께 음악을 듣는 재미도 함께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또 창극분야에서 활동하는 명창들이 판소리 기능을 많이 연마하는 결과도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창극의 음악이 판소리 그것 만이 아닌 또 다른 장르의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러가지 형태로 창극의 음악은 모색되고 있는데 이번에 연출을 맡은 손진책씨도 지난번 <윤봉길 의사>를 창극으로 연출하여 크게 호평을 받는 중견 연출가이다. 그는 오랫동안 국립극장장으로 창극 정립에 힘써온 허규씨와 함께 일해왔으며 많은 작품을 통하여 크게 인정받고 있는 연출가이다. 이번 공연에 거는 기대도 크다. 이번 임꺽정에 출연하는 명창들은 이 시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단한 명창들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도창에는 박동진씨 그리고 주연이라고 할 수 있는 임꺽정에는 조상현씨가 출연한다. 또 중요한 배역인 서림에는 은희진, 개미치에는 강형주, 운총에는 안숙선이 출연하는데 모두 배역의 성격에 잘 맞는 명창들이라고 본다. (1987년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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