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영 '보행연습'

clint 2023. 9. 5. 09:41

 

한 남자(K)가 지하실, 혹은 사방이 벽으로 된 방에 갇혀 있다. 초췌한 모습이다. 잠시 후, AB가 들어온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이들은 한때 같이 일했던 동료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K가 잘못을 저질러 AB가 감시하는 중이다. 이들은 K를 조롱하며, 여기를 탈출할 생각은 말라고 한다. 모두 밀폐된 곳이란다. 그리고 이들은 포커를 친다며 문을 닫고 나간다. K는 둘러보다가 벽 사이의 틈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나간다. 잠시 후, AB가 들어와 A가 재빨리 그 틈으로 나가 K를 잡아온다. 나간 곳도 전부 막혀 있고 주방과 화장실만 있는 곳이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K도 순순히 포기하고 다시 원래의 방으로 온 것이다. 그러나 AB도 이곳의 구조가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른다. 그들은 한놈 때문에 두사람이 고생하는 꼴이라며 푸념한다. 보스가 쉽게 총으로 죽이려 하지 않고, 이놈을 굶어 죽이려는 건가별 생각을 다 주고받는다. 근데, A가 여자와 만날 약속이 있어서 나가야 한단다. 그래서 저놈을 죽이고 같이 나가자고 한다. 여자를 소개해준다는 말에 B가 동조한다. AB가 한 발씩 쏘아서 K를 죽이고 나가려는데, B가 열쇠를 문밖도어에 꽂아 놓고 들어온 것이다. 이제 AB가 감금된 꼴이다. 

 

 

극작가로 당당히 신춘문예에 데뷔한 오태영. 그는 74년이 일대 행운의 해가 되었다. 월간문학 신인상 작품 모집에서 희곡이 또 당선,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과 영관이 겹친 것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시종일관 자의에 의한 행복과 희망의 추구와 기대가 타의에 의해 어긋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번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당선작인보행연습도 감시자와 피감시자가 불분명한 피해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문학 중에서도 특히 희곡을 택하게 된 것은 시간과스토리를 압축시켜 관객에게 직접 호소해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강력한 응축성 때문이란다. 친형인 극작가 오학영의 영향도 적지 않은 듯.

 

 

작가의 글

“이번만은 꼭 되겠지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당선이 되고 보니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당선이 작품 활동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게 지금의 생각이며 요즈음의 자신이 나태해지지 않나 하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채찍을 가하겠습니다. 자신은문제 학생’, ‘문제 사병등으로 변모해왔으나 이젠 그문제라는 혐오의 이니셜을, 문학적인문제작가로 바꾸겠습니다. 우선 어지러운 주위를 정리하고 복학해서 공부에 전념하면서 마음 맞는 친구가 있으면 방향감각이 뚜렷한 소극장 운동을 전개해보고 싶다. 자신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 졌을 때 작품해석이 어려운 비구상 양식이어서 관객의 이해가 어려워 미흡함을 느꼈으나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느끼는 것 같은 끝없는 애착으로 더욱 정진해 훌륭한 무대를 이루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