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성이 한 집에 산다. 한 집이지만 각자의 독립된 방에서다. 이른바 원룸이라고 불리는 최소의 공간이다. 두 사람의 마주침은 반가운 모양새가 아니다. 이름보다는 201호, 202호라고 불리는 게 오히려 편한 듯하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진다. 301호로 이사 온 은수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201호의 시경, 202호의 장미와 많이 다르다. 여성적이면서도 쾌활한 성격에 먼저 다가서 손을 내밀줄 아는 성격이다. 외향적인 성격의 장미는 선뜻 그 손을 맞잡으려 하지만 지극히 내성적인 시경은 오히려 자기만의 세계를 침범 당한 양 방어본능을 발동하기 시작한다.
'원룸 빌 콤플렉스'가 보여주는 세여성의 이야기는 그리 놀랄만한 내용은 아니다. 연극은 각각의 원룸에 사는 세 젊은 여성이 실존적 유폐와 사회적 자멸(自滅) 속에서 건들면 건들수록 깨지는 외로움의 유리턱을 보호하느라 더 깊숙이 내면으로 숨어드는 단면들을 클로즈업한다. 201호 시경, 202호 장미, 301호 은수는 각각 어린시절의 성폭행, 합리성에 대한 회의, 실연과 여러번의 낙태 등 상처 투성이의 인물들. 이들은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해도 결국 방백(傍白)일 정도로 세상과 절연(絶緣)한 상태다. 원룸 빌 콤플렉스’는 ‘원룸’ 이미지의 한축인 자폐와 단절의 분위기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한 연극이다.
상처입고 싶지않아 문을 꼭꼭 닫아 거는 사람, 그런 배타적인 마음에 상처받는 사람 역시 문고리를 채운다. 먼저 다가서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다가오면 밀쳐내고 마는 일종의 자폐증세. 쉽게 마음을 닫아 버리고 좀처럼 열려 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속성은 세여인이 사는 원룸을 통해 선명하게 부각된다. 다세대 원룸빌이라는 극도로 폐쇄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독신 여성들 3명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자폐 심리를 그린다. 혼자만의 삶을 꿈꾸며 다세대 원룸 빌에 먼저 입주한 두 명의 독신과, 뒤늦게 이들의 이웃이 된 또 한 명의 독신여성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며 상황은 더 악화된다.
작가의 글 - 이숙인
우리에게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이즈음 자주 떠올리게 된다. 거기서 작가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진 두 개의 공간, 광장과 밀실에 대해 생각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다. 눈부신 해가 떠오르면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든다. 거기엔 시장이 있고 분수가 있으며 노래가 있고 측이 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거기서 '발언'을 해왔다. 발언의 형태는 여러 가 지다. 선언하기도 하고 토론과 논쟁을 하기도 한다. 때로 거친 주장과 욕설이 난무하기도 한다. 이윽고 땅거미가 지고 사방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저마다 밀실로 돌아간다. 광장에서의 기억과 생생한 체험은 각자의 밀실에서 오롯이 꿈이 되고 상상과 추억이 되며 내일을 시작하는 질료가 된다. 또한 밀실에서의 성찰과 기록은 광장의 내일을 재구성하고 변모 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사람이 살고 싶은 곳은 누구에게 나, 분수의 물줄기가 깔깔거리고, 쏟아지는 햇살 아래 연인들 이 사랑을 속삭이고, 초록의 그늘 아래 아이들이 마음껏 낮잠에 빠질 수 있는 그런 광장과, 누가 뭐래도 꿀처럼 달콤한 잠을 이룰 수 있는 아늑한 밀실이 공존하는 세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진정한 광장도 밀실의 구분도, 그 형태도 사라진지 오래다. 다만 거대한 자본과 기술이 제공하는 가상의 세계가 다수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친구와 함께 어깨를 걷고 거닐고 싶지 않은 도시 혼탁한 거리의 소음과 매연은 광장이 사라진 밀실. 이미 자폐의 공간이 되어버린 그곳의 확장을 점점 부추기고 있다. 마치 벌집 속의 애벌레처럼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성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이처럼 이 연극은 극도로 자체적인 최소 단위의 공간에 사는 사람들을 원룸 속의 세 여자로 설정. 형상화해 보았다. 그들은 지금 이곳에 도무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일 수도, 우리를 각자의 관련일 수도, 어떤 이들에게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대 위의 그들이 가장 바라고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한 사람은 자신의 성이 아무에게도 침탈당하지 않는 짓을. 한사람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그 어떤 끈을. 또 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와 모습이 누구에겐 한번이라도 제대로 소통되고 이해되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어느 날부터 그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존재에게 조금씩 침투되 기 시작한다. 어떤 이야기가 오가게 될까. 그들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들에게 작고 따스한 광장의 햇살이 과연 한줄이라도 허락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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