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은 고독하다고들 하지만 그보다도 가장 고독한 사람은 죽음을 앞에 둔 극한상황의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인간이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상태라면 정말 고독한 사람은 용기를 갖지 못한 지성인인가? 아니면 그 용기는 허세에 지나지 않는가? 비굴한 지성인에 대한 반항인가? 자살바위에 자살자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점잖은 교수가 찾아온다. 그는 마침 그곳에서 허수룩한 옷차림의 사나이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 작품은 자살하려는 자와 자살에 대한 논문을 쓰려는 교수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고이즘과 삶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어쨌든 여기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현대 메커니즘시대에 있어서 우리들 모두에게 잠재해 있는 에고이즘의 희생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살자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자살 장소를 찾아온 교수. 자살하는 사랑을 찾아 여러 곳을 헤맸으나 번번히 허탕친 그는 마침 그곳에서 한 사나이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사내는 그동안 자살하는 사람을 셋이나 봤다고 했다. 교수는 그 세 사람을 하나하나 얘기해 달라고 한다. 사내는 마지못해 첫째 본 자살자의 얘기를 한다. 노름으로 자산을 탕진하고 목숨을 끊은 비관 자살의 얘기이다. 교수는 노트한다. 무감동함에 사내는 서글픔을 느낀다. 두번째 얘기는 실연한 여자의 자살이고 세번째는 꺼린다. 교수는 애가 탔다. 사내는 교수에 대해 더욱 환멸을 느꼈으나 결국 세번째 얘기도 하고 만다. 셋째는 바로 자기 얘기인 것이다. 그 사나이는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아 바로 내일 죽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내일까지 기다릴 것 없이 지금 자살하겠다고 말한다. 사내를 동정하면서도 논문에 대한 야심에 불타는 교수는 꼬치꼬치 캐몯기만 한다. 그리하여 그런 교수를 저주까지 하게 된 사나이는 가장 자살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직접 자살해 보는 길 밖에 없다고 역설하며 교수에게 자살을 강요한다. 핏빛 황혼이 절정에 달할때 교수는 타의에 의한 묘한 자살을 하게 된다. 즉, 자살하려는 자와 자살에 대한 논문을 쓰려는 교수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고이즘과 삶의 투쟁을 나타내는데 그 희생물이 교수인 것이다.
작가 서진성씨는 1939년 12월 17일 대구의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1961년 서라벌 예대 영화과를 졸업하고, 졸업하면서 현대미술연구소에 들어가 상업미술 디자인을 터득. 64년까지 미술, 조각·등에 전념했다. 그후 그는 중도일보문화부에서 기자로 2년여에 걸쳐 종사하다가 66년부터는 영화사의 연출부에서 감독수업을 70년까지 4, 5년에 걸쳐 일했다. 그후 그가 극작에 손을 대게 된 것은 1964년 신춘문예에 「고무풍선」이 입선되면서 부터이다. 그는 장막극으로 「태풍」, 단막으로는 전기 「고무풍선」외에 「춘설」「낙엽」 「학위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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