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노경식 '치마'

clint 2023. 6. 27. 08:37

 

60년대 초반, 서울에 거주하던 수당 정정화여사(이하 수당)는 자신이 수십년 간 소중히 간직해왔던 일기를 꺼내 든다. 일기장 뒤로 그녀의 지난 삶이 회상된다. 수당은 독립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양복집 주인 이세장과 정신, 국내로의 잠입을 기도한다. 이미 그녀는 어린 나이에 남편과 시아버지를 따라 이국 땅 중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상태였다. 그녀는 자금사정에 항시 쪼달리며 끼니조자 잇지 못하는 임시정부와 그 요인들을 위해 살림을 도맡아 하며 여섯 번이나 압록강을 목숨을 걸고 넘나든다. 우직한 평안도 사내 이세창은 늘 임시정부의 밀성들이 무사히 강을 건너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왜경의 감시를 피해 30리 강변 사갈발을 맨발로 건너는 이세창과 수당... 문득 수당은 월세조차 내지 못해 중국인들로부터 한겨울에 거리로 쫓겨나고 같은 동포들이면서도 모른체하는 본국의 주민들에게 설움을 당해야만 하는 임정의 고난한 삶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도 잠시 수당은 곧 일정에게 잡히고 만다. 온갖 욕설과 위협 속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는 수당은 그곳 종로경찰서에서 악명높은 친일과 형사 김태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러나 김태식은 그녀블 의외로 순순히 놓아준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당은 곧장 상해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김태식은 몰래 그녀 뒤를 쫓는다. 한편 상해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폭탄 의거가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상해에 일대 김기령이 내려지고 안창호가 붙잡히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결국 임시정부는 가흥으로 피난길을 떠난다. 수당의 남편 김의한은 백범 김구를 만나고 오는 길에 결국 김태식에게 꼬리를 잡히고 만다. 김대식은 김구가 곧 제거될 것이라며 항일 투쟁을 멈출 것을 종용하고 사라진다. 1938년 급기야 중일전쟁이 터지고 백범 등 임정일행은 머나먼 증경까지 피난길에 나선다. 백범의 표현대로 이른바 기적장강 만리풍의 시작이다. 하지만 임정일행은 예인선이 끄는 목선에 몸을 싣고 주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중 김태식의 농간에 의한 사기를 당해 강 한복판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지만 마침 수당이 그동안 틈틈이 모았던 돈을 꺼내놓아 위기를 넘기게 된다. 결국 일행은 마약과 폭격으로 얼룩진 도시 중경에 도착한다.

기강의 어느 들녘에서 일행들은 고향을 떠올리며 나물도 뜯고 사진도 찍는 등 오랜만에 향수를 달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지만 이내 건강이 악화된 석오 이동녕과 백범의 노모 곽낙원 여사의 죽음으로 임정은 또다시 비통에 잠긴다. 1941년 연합국 일원이 대일 선전 포고를 발표하자 백범 역시 대일 선전포고문을 낭독하며 참전을 결의한다. 장준하를 비롯한 광복군이 안휘성으로부터 임정 일행에 합류함으로 힘을 얻는 듯 하지만 결국 임시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수당은 남편 김의한과 함께 배고픔 속에서도 광복지 편집과 여성동맹일에 매진하는 등 광복에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러나 자주적인 독립을 인준 받기도 전에 일본의 항복으로 갑작스런 독립을 맞게 되고, 수당 등 임정 일행은 승전국의 백성이 아닌 전쟁 난민의 취급을 당하며 미군의 수송선에 실려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며 설상가상으로 백범 김구마저 암살당하고 만다.

1951년 서울, 수당은 납북된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좌익인사를 만난 것이 빌미가 되어 다시 종로 경찰서에 갇히게 되고 이제 바뀐 세상에서 또 다시 경찰고위 간부가 되어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는 김태식과 재회함으로써 역사의 아이러니와 원칙이 없는 세상을 체감한다. 김태식은 가증스럽게도 시류에 맞추어 옮겨다니는 자신의 삶이 곧 인생이라고 말하며 호의를 베푸는 척한다. 그러나 수당은 김태식의 명함을 찢는다. 수당은 백범의 생전의 호탕한 모습과 납북된 남편 김의한의 모습을 환영으로 보며, 할말 많은 자신의 삶과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묵묵히 반추하고 다짐한다. 그녀가 태운 일기의 재가 서서히 암흑으로 변해간다.

 

 

노경식 작가의 말 - 뜨겁고 긴긴 여름날

 

올봄에는 90년만의 가뭄'이라는 둥둥 온 나라가 목이 타는 지독한 한발로 걱정이 태산이었는데다, 인제는 또 뜨겁고 지루한 여름날이 간단없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이웃나라 일본의 파렴치하고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일련의 패권주의와 제국주의적 우경화 조짐이 한국과 중국, 동남아 여러 나라 및 뜻있는 양심세력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고 있어서, 그 분노와 서글픔 때문에 하늘이 노하고 천지신명이 한탄하고 계시는 까닭은 아닌지...... 심히 우울하고 안타깝고 우려되는 바 없지 않다. 제발 21세기의 일본이 라는 나라는 좀더 철이 들고 성숙하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랑스러운 모습과 떳떳한 자세였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가 수당 정정화 선생의 일대기를 극화하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연극배우 원영애씨의 권유와 청탁에 의해서이다. 그에 앞서 여자독립군 정정화의 <녹두꽃>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구해 읽은 적이 있었는데- 초판은 <녹두꽃>이었는데 나중에 <장강일기>로 제목이 바뀌었다- 그때 나는 적지 않은 감동과 흥분을 경험한 바 있었다. 그저 막연히 상식으로만 알고 지냈던 상해임시정부의 실상과 오로지 나라의 자주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서 그 숱한 세월을 간난신고 속에서 살아갔을 애국선열들의 눈물겹고 자랑스럽고 피나는 노력들을..... 해서 나는 먼지 낀 서가에서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다시 꺼내서 읽지 않을 수 없었으며, 석오 선생의 <이동녕 일대기>, 장준하의 <돌베개>, 김준엽의 <장정>, 이범석 장군의 <우등불>, 그러고 이현희 학술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사> 및 관련 저술들을 쉴새없이 읽었다. 행여 선인들의 고귀한 행적에 누를 끼쳐서는 안된 다는 일념으로 탐독하였다. 그리고 때맞춰 국가보훈처가 제정한 “8월의 독립운동가"로 수당 정정화 여사가 선정되었으니, 이번의 연극 공연이야 말로 유족이신 감자동 선생과 더불어 한결 흐뭇하고 의의있는 예술행사라는 생각이다.

끝으로, 연극적 재미와 무대 형상화의 방법상 본인의 작품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밝히는 바이며, 그리고 중견배우 허현호 조상건 권병길 최효상 등 여러분과 출연진 및 스탭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이 뜨겁고 긴긴 여름날을 달포가 넘게 땀 흘리고 애들 많이 많이 쓰셨습니다연극동지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정정화 여사.

한성부에서 태어나 1910년 어린 나이에 김의한과 결혼했다. 남편은 구한말 고위 관료인 김가진의 맏아들이었다김가진은 1919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전격 망명했고, 정정화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1920년 역시 상하이로 망명했다. '연로하신 시아버지를 모셔야한다'는 일념때문이었다그녀는 감시가 덜한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역할을 맡아서 중국과 국내를 오가면서 10여년간 자금 모금책,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또한 중국 망명 27년 동안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이동녕, 백범 김구 등 임정요인 및 그 가족들을 돌보며 임시정부의 안 살림꾼으로서 임정 요인들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였다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을 조직하여 간부를 맡았고 충칭의 3·1 유치원 교사로도 근무했다. 1943년 대한애국부인회 훈련부장이 되는 등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그러나 광복 후 인생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미군정의 홀대 속에 1946년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고, 오랫동안 임시정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구가 곧 암살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중 김의한은 안재홍, 조소앙 등이 납북 되었으며, 남한에 남은 정정화는 부역죄로 투옥되는 등 고초를 치렀다.저서로는 회고록 녹두꽃(1987, 개정판 장강일기)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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