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남북간의 민족적분단과 지역감정의 미묘한 대립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갈급한 부분이 통일과 화해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겠다. 그 통일과 화해를 위해서는 오늘의 분단, 분열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의 막을 올리는 의미는 우리들의 비극적인 현실속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인식하고 냉정히 진단을 내려 근원적인 치유방법을 찾아보자는 데 있다.
이 작품’ 신이국기’는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빌어 오늘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전설적, 우화적 공간에서 다루어졌던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현실적, 역사적 공간안에서 관찰함으로써 국가 권력의 파괴적 본질, 권력이 으레 들먹이는 역사적 정당성의 이면, 그리고 그 권력욕구와 인간욕구 사이의 필연적 갈등, 권력욕구가 정당성과 필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할 때에 인간욕구를 남녀가 분단(백제와 신라)의 벽을 넘어 권력 지향적인 인물들에 의해 얼마나 가혹하고 잔인하게 짓밟아 나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하는 어렵게 사랑을 이루려 하지만 끝내는 두터운 벽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바로 그 분단이 누구에 의해서 획책되어졌고 누구에 의해서 유지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문하고자 한다. 기층민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기득권자 내지는 이루지 못한 정치상황을 환기시켜 오늘의 통일을 정치현실을 반성케 하고자 한다. 「新二国記」는 지금까지의 최인석의 작품 중에서 가장 먼 과거의 얘기에서 소재를 취한 작품이다. 그러나 물론 그가 하려는 얘기는 단순한 옛날얘기는 아니다. 그는 그 옛날 백제 서동과 신라 선화의 얘기에서 지금 얘기와 같은 병든 사회와 사람들의 얘기를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어휘는 훨씬 폭이 넓어졌다. 어조도 서두르지 않는 진중한 힘이 있다. 성장을 계속하는 한 작가의 어떤 하나의 마디가 보이는 것 같다.
작가의 글 - 최인석
꼭 10년 전인 1979년에 초고를 쓰고 83년에 탈고하였던 작품을 이제야 공연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그간 써온 적지 않은 희곡 가운데에 가장 큰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수정을 위하여 책상에 앉을 때마다 몹시 큰 망설임에 시달리곤 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비단 이 작품에 대하여 내가 크나큰 애착을 느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 희극 쓰기에 대하여, 그리고 희곡 쓰는 방법에 대하여 회의를 갖기 시작했던 것이 1986년이었으니까 말이다.물론 그 당시에는 희곡 쓰기가 불편했다. 무엇보다도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약당하고 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회의는 그것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곳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내가 희곡을 쓰는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헐적으로, 그리고 점점 더 집요하게, 질병처럼 책상 앞에 앉은 나를 물어뜯었다. 그런 의심을 완전히 처리하지 못한 채로,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로 이번 공연에 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연습과정에 이따금 참여하면서 의구심과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이런 식의 희곡 쓰기 수정하기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하는 의심에서부터 이런 식의 연습방법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이런 식의 공연이 과연 얼마나 의미로운 것일까 에 이르기까지. (연습방법이나 공연방식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모든 연습방법과 공연방식에 대한 의구심이요 불안이었다.) 그 많은 의구심과 불안을 전혀 처리하지 못한 채로 막이 오르게 되었다. 관객 여러분들께 송구스럽고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들 모두가, 특히 나 자신이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정직하게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자신의 자리를 올바로 파악한 뒤에 생기는 의문만이 진정한 의문이요, 진정한 해결의 열쇠를 별러낼 수 있는 원광석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가 배우이건 연출가이건 작가이건, 바로 그런 의문만이 예술가로서의 뿌리요, 그것을 근거로 해야만 자신의 발 밑에 견고한 벽돌을 한 장, 또 한 장 쌓아 올려 그것을 딛고 한 예술가로서 굳건히 설 수 있는 것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발 밑이 견고하지 못한 사람들아 발 밑에 아무것도 딛고 서지 못한 사람들아. 발 밑에 허방 밖에 없는데도 그 허방을 딛고 서서 무엇인가를 쌓아 올리고, 그리하여 자신의 몸뚱이를 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아. 새처럼 가벼운 사람들아. 먼지처럼 떠도는 사람들아 당신들이 딛고 선 것은 땅이 아니다. 당신들이 딛고 선 것은 어리석음과 허욕에 허욕에 불과하다. 오직 사라지는 것이 미덕일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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