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위기훈 '갑신의 거(甲申의 擧)'

clint 2023. 7. 5. 14:36

아직 공연안된 작품임

 

김옥균의 갑신정면과 그의 암살을 소재로 한 희곡작품이 꽤 많다. 오영진의 '동천홍'과 정하연의 '마로니에의 길 ' 오태석의 '도라지', 김정옥의 '수탉이 안 울면 암탉이라도'. 김진구의 대무대의 붕괴(1929년작)도 있다. 모두 실제 사실을 놓고 작가의 전개가 조금씩 다름을 볼 것이다. 그런데 위기훈의 이 작품은 좀 신선한 느낌이 있다. 위의 대가들 보다는 젊기 때문일까?  

 

신상옥 감독의 영화도 있다. (1973년)

 

<갑신의 거(甲申의 擧)> '타임루프'로 혁명을 되짚어 보다:

<갑신의 거(甲申의 擧)> 1884년 일어난 '갑신정변'과 그 중심 인물인 김옥균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동안 수많은 역사극에서 갑신정변도 무수히 다뤄졌고, 김옥균도 다양하게 호출된 인물이기에 '왜 또 갑신정변일까?' 라는 호기심이 절로 생긴다. '왜 또'라는 질문 밑에는 갑신정변을 역사화한 기존의 방법에 대한 식상함이 깔려 있다. 갑신정변에 대한 작가의 입장을 강경하게 드러내거나 김옥균에 대한 연민 혹은 긍/부정의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갑신정변과 김옥균을 다루던 방식으로는 그 식상함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작가는 조금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실패한 혁명인 갑신정변이 무슨 이유 때문에 실패했는가에 주목했고, 그것을 갑신정변이 진행되는 한가운데서 김옥균 스스로 깨닫는 것을 상상했으며, 그것의 실현을 위해 '타임루프'라는 극작술을 활용했다.

 

 

무대는 빈 무대가 기본으로, 그 위에 '우정총국' 등의 현판이 공간에 따라 교체되면서 정보를 제공하고, 최소한으로 디자인된 대소도구와 상징적 구조물이 궁궐과 대문의 역할을 한다. 갑신정변 과정 속에서 정변의 주체들, 그들의 행동에 따른 고종과 민비의 움직임을 다양하게 펼쳐내기 위해서는 빈 무대가 유효했다. 극중 공간이 많을수록 무대는 비어 있어야 함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특히 공간을 특정하는 현판들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공간의 역동성을 창출했고, 이는 갑신정변의 긴박함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비어 있되 역동적인 무대는 '타임루프'라는 설정을 실현하기 위한 유효적절한 바탕이 되었다. 극 중 '타임루프'는 두 번 이루어지며, 그 주체는 김옥균으로 한정된다. 갑신정변의 신호탄이 된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이 타임루프의 회귀 시점이었다. 계획대로 진행되던 혁명이었는데 이 거사를 알아차린 민영익에 의해 실패하고 김옥 균은 신비로운 문으로 급히 들어간다. 첫 번째 타임루프다. 다시 개국 축하연 자리로 돌아간 김옥균은 상황을 파악한 후 국내 반대파를 제거하고 정변에 성공한 듯이 보였으나 일본의 민비 시해를 목격하면서 또다시 신묘한 문으로 도피하면서 두 번째 타임루프가 이루어진다. 또 다시 정변의 상황으로 돌아간 김옥균은 정령을 발표하지만 백성들의 극렬한 반대와 비난에 직면하면서 실패를 확인하게 된다. 두 번의 타임루프를 통해 김옥균은 실패의 원인을 스스로 각성하게 된다. 첫째는 외세에 기대는 것. 특히 일본에 기대를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백성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으로 가는 '치도세마루'를 탄 김옥균의 마지막 대사 '더는 일방적인, 일방적인 태양 아래 희망을 품지 않겠다!"는 이러한 깨달음에서 나온 탄식이라고 할 수 있다갑신정변의 근대적인 강령들의 소개를 스치듯 처리한 점, 타임루프를 통해 실패 원인을 강조한 점, 그 중심에 있는 김옥균의 각성을 도드라지게 한 점 등이 돋보인다. 거기에 "거문고와 대금, 신시사이저 연주"로 설정되어 악기의 구성이 긴박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주조하며, 신시사이저의 현대적 음감이 갑신정변의 현재적 의미를 연결해주는 직접적 매개로 활용되었다. 실제 음악이 어떠했는지 들어보지 않아도 지시문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보통은 갑신정변의 내용, 김옥균이 꿈꾸던 세상을 소개하거나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갑신의 거> '타임루프'의 극작술을 통해 갑신정변의 실패에 집중했고, 혁명이든 개혁이든 무엇을 도모하고 꾀할 때는 어떤 자세와 시각을 견지해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있는 작품이다.

 

갑신정변 주동자들 (좌로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작가의 글 위기훈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기록이 아닌 평가라는 의미가 더 중요한 역사는 깨진 거울로 기능한다. 깨진 거울에 비추어진 현재의 본질을 파악해야 또 다른 성찰이 시작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현실과 국제정세는 많은 숙고를 요구한다. 촛불과 어버이연합 사이에서 대통령 탄핵과 투표를 통한 정부가 교체되었지만, 국제관계에서 북한의 핵도발과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세계열강들 사이에 끼어 있다. 조국의 미래가 위태롭게 조망 되는 일면이다. 지금과 같은 진퇴유곡 현실을 역사적 사건에서 찾아 무대 위에 제시하고자 희곡 <갑신의 거>를 창작했다. 조선 최초의 진보적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둔 정변, 그러나 배척한 청나라 대신 일본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 시선 또한 없지 않은 사건, 결국 실패로 끝나 혁명이 아닌 정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갑신정변 신분제, 연좌제를 타파하고 자주조선이라는 목표를 지향했으나, 일본이라는 제국주의 야욕에 기대어, 백성 계몽을 등한시한 정변이라는 역사학자들의 분석.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창작의 동력을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주동인 '김옥균'의 드라마틱한 인생유전에 기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정변의 실질적인 과정을 오롯이 드러내고 그 상세한 과정을 들여다볼 장치로 "타임 루프(time loop)"를 적용, 중요 지점에서 '실제와 다른, 가상의 실패 요인'이 작동되고, 이에 따른 주인공 김옥균의 격정적인 감정, 무대효과와 함께 타임루프가 발생, 다시 정변 처음의 정황으로 돌아가, 일련의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설정이다. 이 타임루프는 극 중 총 2번에 걸쳐 일어난다. '가상으로 꾸며진 실패요인'이 전개되고, 다시 되풀이되면서 실제의 역사 상황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온 가족의 목숨은 물론 나라의 미래를 걸고 일으킨 거사에서 김옥균은 분명 어느 순간 실패를 예감했을 것이다. 시대의 엘리트로서 가부장제 가치관을 인식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면화한 김옥균. 그가 이 같은 정변을 계획한 것은 당시 조선의 부조리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지적 우월감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서툴고 미숙한 결과를 낳는다. 이는 21세기 지금의 한국에서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훌륭한 목표와 의도를 가진 혁명 계획, 그러나 미숙한 실천 방안과 과 정으로 실패한 김옥균. 실제 역사의 모든 과정을 고증하여 '타임루프"라는 장치를 가동, 무대 위에 구현할 때, 어떤 극적 재미와 현실에 대한 사유가 가능할까? 자각 없이 되풀이되는 혁명의 과정은 필연적인 실패를 담보한다. 그 자각은 곧 백성의 계몽이고, 지지기 반의 확대일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구한말 계몽주의 상황과 다르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김옥균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자각하여 스스로 전략을 세우고, 스스로 또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구축해야 한다.

희곡 <갑신의 거>를 상연하는 것은, 지금, 여기의 현실이 단순한 거사로 끝날 수도, 또는 의거로서 미래를 개척하는 과정일 수도 있음을 우리 스스로 뼈저리게 자성하기 위함이다.

위기훈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기훈 '역사의 제단'  (1) 2023.07.07
윤미현 '갈수록 가관이네!'  (1) 2023.07.06
이숙인 '원룸 빌 콤플렉스'  (1) 2023.07.04
안정민 '사랑연습-갈비뼈타령'  (1) 2023.07.01
서진성 '학위논문'  (1) 2023.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