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위기훈 '역사의 제단'

clint 2023. 7. 7. 07:41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 남산 윤우의.

극은 해설자를 통해 서사적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초점은 상해임시정부의 김구의 주도적 정치적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남산이 백범의 지시에 따라 홍커우 거사를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다.

백범일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산의 홍커우 공원 거사를 김구가 임시정부 내에

입지를 다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남산 윤우의는 백범의 소개로 김홍일에게 폭탄을 건네받고 홍커우 거사를 거행한다.

이후 백범이 주도하는 임시정부에 관심과 중국의 자금지원이 쏠리게 되고

임시정부내에 백범의 입지도 튼튼해지게 된다.

신암 안공근은 남산의 의지와 결기로 일으킨 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백범에게 항의한다.

그러나 백범은 모두가 독립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묵살한다.

7년 후 안공근은 누군가에 의해 암살당하게 된다.

마지막 목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독립에 대한 결연함과 기세는 강인하고 결기에 차 있었던

25살의 피 끓는 청년 윤우의의 삶을 통해 재조명된다.

 

 

<역사의 제단> '매헌 윤봉길'로 알려진 '남산 윤우의'에 대한 이야기다. 위기훈 작가는 이 작품의 집필 이유에 대해 "남산 윤우의'의 경우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바로 잡는 게 우선이어야 했다"면서 "윤우의라는 인물이 역사의 제물이 되기를 자청했던 뼈아픈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창작했음을 밝히고 있다. 태극기 앞에서 권총과 수류탄을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비롯해, 도시락과 물통 폭탄, 백범 김구 선생과 교환한 시계 이야기 등 우리는 윤봉길 의사에 대해 사소한 것까지 잘 알고 있는 듯 친근하다. 그런데 그렇게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진짜는 따로 있다는 발견은 작가에게 큰 부담을 안겨준다. 널리 알려진 것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 '있는 그대로'를 밝혀야 한다는 것도 부담인 데다가 어떤 방법으로 알려주고 수정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도 큰 고민이다. 위기훈 작가의 발견은 백범일지에 기대어 있는 윤봉길 의사에 대한 기록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 백범의 지시에 의해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실행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윤봉길 의사, 남산 윤우의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역사의 제물이 되기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의 제단은 누군가가 꾸며내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었으며, 그 제단에 비쳐질 제품 역시 누군가가 선택한 것이 아니 있다. 모든 것은 남산 윤우의의 의지였다. 이것이 '펙트'

 

 

이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기준의 상식들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까? 위기훈 작가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바로 해설자를 설정한 것인데, 리치 퍼포먼스까지도 가능할 정도로 해설자는 적극적으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여러 명의 해설자가 해설의 내용을 나누어 윤우의의 의거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여, 그 사이사이 윤우의의 의지가 강조되는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형상화한다, 이른바 서사극적 양식으로, 관객들의 몰입보다는 판단이 필요할 때 유용한 양식이라는 것을 작가가 적극 활용한 것이다. 이미 상식에 되어버린 사실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문제 제기할 때, 관객과 함께 조목조목 그 이유를 살펴보면서 작가가 의도한 바를 최종적으로 관객이 고민하게 만드는 극작술을 적용했다. 주제와 의도에 맞는 유효한 방법의 선택이었다해설자 중심의 서사극 양식이다 보니 자연스레 무대는 빈 무대다. "최소한의 소품과 특이점을 강조한 대소도구만 배치되어 있는 '사실적인 무대를 지양한 서사극적 공간이어야 해설자들이 자유롭게 윤우의 의사의 의거를 설명하고 장면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를 버리고 처자식을 버리고 나라와 겨레, 독립을 선택한 윤우의 의사의 "강의한 사랑'은 해설자의 설명과 의거 과정의 재현을 통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매진 윤봉길이 아닌 남산 윤우의를 강조하기 위해서 허구적으로 무언가를 꾸며내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 팩트에 입각해 그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한 극작술의 선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의 글 위기훈

'역사의 제단'이라는 진부한 제목을 삼은 이유

 

역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 본질을 다루는 극이다. 역사적 사건은 같은 맥락 아래 현재의 연장선에 있다. 그래서 복잡한 현재 상황을 빗대어 명확한 초점으로 지금의 우리를 다시 돌이켜볼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읽고 바라보는 것은 어렵다. 복잡한 국제정세, 이해관계 속에서 여러 방면으로 왜곡되었고, 그 수법도 다양하다. 한 나라 안에서 조차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을 달리 규정한다. 경쟁적 이데올로기들의 대립 양상이나 사회정치적 등의 여러 시각 차이로 복잡한 관계망을 이루고,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 해석의 문제가 때로 역사 왜곡의 수법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입장을 달리 하는 국가별로 왜곡된 바는 더욱 크다. 사소하게는 특정 역사적 사실을 지칭하는 명칭부터 다르다. 6.25전쟁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 공식명칭은 6.25전쟁이나 북한은 조선전쟁,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항미 원조전쟁, 일본에서는 조선 동란으로 부른다. 저마다의 입장과 시각 아래 명칭부터 달리하는데 역사해석에는 그 입장 차가 더욱 클 수밖에. 그러나 복잡한 국제 정세는 그 복잡함에 비해 목적은 매우 단순하다. 국익 우선이 그것이다. 노골적인 그 최종은 전쟁으로 인한 약탈이므로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읽고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방 연극단체로부터 희곡을 의뢰받는 경우, 소재가 특정될 때가 많다. 지역 콘텐츠 개발을 목적으로 지역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 역사적 사건이 그것이다. 그 중 인물 소개는 희곡으로 가치를 갖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인물은 위인전으로 요청하는데, 위대한 인물의 삶을 통해 꿈과 희망을 갖도록 하는 위인전의 기능 때문이다. 위대한 인물의 삶,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런 위대한 인물은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독자나 관객에게 '위대한'이라는 일방적인 시각을 강요한다. 이 시선은 '나는 의미 없는 존재'라는 상대적 박탈감, 패배의식의 불씨가 되기 쉽다. 이 같은 결점을 안고 윤봉길이라는 인물로 희곡 <역사의 제단>을 창작한 것은 윤봉길에 대해 전혀 다른 사실을 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름 윤봉길과 매헌이라는 호는 그가 사용한 바 없는 이름이고 호였다. 그의 이름은 봉길이 아닌 '윤우의'였고, 그의 호도 매헌이 아닌 '남산'이었다. 전국민이 이름과 호마저 잘못 부르고 있었다. 확인할 수 없었으나 이 역시 또 다른 역사 왜곡의 방편이었는지 모른다. 남산 윤우의의 역사적 거사,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고는 더욱 놀랐다. 이제까지 교과서 에서 배운 것과는 배경도, 뜻이 세워진 과정도 달랐다. 남산 윤우의 라는 청년이 최종까지 경험한 일에 대해 최소한의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코비드19 대응으로 국격이 상승하고 있다. 다방면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곳곳에서 역사적 의미를 담은 행사들이 줄지어 행해지고, 몇 해 전부터 친일청산이라는 대주제 아래 많은 국가적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바람직한 활동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과장도 있을 것이다. 해석의 문제라며 궤변도, 이에 대항하는 언행도 있을 것이다. 사실 기록을 무대화 하여 연극제에서 갈채를 받은 것은 창작을 업으로 삼는 이에겐 과분한 일이다. 그래서 더욱 최소한의 기준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역사극은 역사와 문학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남산 윤우의'의 경우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바로잡는 게 우선이어야 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수많은 역사에 많은 부분이 '있는 그대로의 시각'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게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역사 문제 중 하나다. 윤우의라는 인물이 역사의 제물이 되기를 자청했던 뼈아픈 사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우선 알아야 하기에 '역사의 제단'이라는 낡고 고루한 표현을 제목으로 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진부한 단어에 담긴 진정한 무게를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이를 변명할 수 있는 지면이 할애된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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