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용근 '화부'

clint 2023. 7. 8. 13:42

 

첫사랑의 그리움 때문에 일생을 그녀의 영상에 매달려 살아가며

오직 첫사랑의 노예가 된 천미욱의 일생이 이야기의 기둥이다.

그는 북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향수를 달래려고 아내 모양의 목각인형을 만들어 아내가 입었던 노랑저고리 빨강치마를 입혀 그것을 안고 위안을 삼는다. 월남한 그는 국군에 입대하여 직업군인이 되었으며, 안정된 생활을 위해 결국은 하숙집 딸 정여숙과 재혼한다. 아들을 하나 낳았고 그는 월남 파병된다. 귀국 후 더 잘 살아 보겠다는 욕심 때문에 돈에 유혹되어 부정을 저지르다 베트콩의 습격을 당하고 심장에 파편이 박힌 전상자가 되어 귀국한다. 그가 귀국해 보니 그동안 송금한 돈과 재산을 모두 탕진한 아내 여숙이 아들 명길까지 고아원에 버리고 도망하였음 알게 된다. 그는 또다른 고민에 싸인다. 월남에서 쿠엔카오 링을 이용해 거짓 전과로 표창을 받은 사실, 그후 베트콩의 기습을 받아 전상자가 되어 귀국한 몸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결국 그는 일자리를 가장 낮은 일로 택한다. 중소도시의 화장터 (장제장), 화부가 된 천마욱(59)은 장제소 화장부로 기계실을 책임지는 반장이다. 화부로 근무하는 화장실 내에서 화장로의 재 속에서 금은보석을 모아 재산을 늘려간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과 여숙을 향한 복수심에 불탄다.

 

 

한편 명길은 새우젓가게를 하는 노부부의 양아들로 들어간다. 양부모는 월남한 실향민으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돈 만을 아는 수전노가 된다. 명길은 더 성장하여 생모 여숙을 찾게 되었고, 처음에는 생모를 돕기 위해 양부모 집에서 돈을 도둑질해 생모에게 갖다 준다. 그후 생모가 창녀로 전락하자 격분하여 생모를 찾아가 눈을 찔러 보복을 한다. 미욱은 화장터 동료 화부 박복의 주선으로 다시 추자와 재혼하게 되는데 이 모두가 추자의 정부인 박복의 간계에 의한 것이다. 박복은 이산가족들이 가족을 애타게 찾는 심정을 이용해 사기를 친다. 다름 아닌 돈 많은 노부부 명길의 양부모 앞에 나타나 가짜 조카 행세를 하는 사기극을 벌인다. 사기극은 노부부가 고아원에서 데려다 기른 양아들 격인 명길에 의해 추진된다. 화부 박복은 고모를 만나 조카 행세를 하게 되고 고모의 새우젓 가게에서 불량배처럼 생활하는 명길을 이용한 계략을 꾸민다. 양자 명길은 박복의 하수인이 되며, 박복은 명길을 통해 고모 내외가 돈을 감추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사서 몰래 허벅지살 속에 감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모부가 돌아가자 박복이 먼저 허벅지에서 다이아몬드를 훔쳐내기 위해 시체를 해부한다. 화부 박복은 비밀 화장을 통해 다이아를 차지하려다 실패하고 할머니의 가슴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아 달아날 준비를 한다. 한편 세 번째 아내와 다시 재혼한 미욱은 새 생활을 도모하지만 재혼한 여자, 추자에게 배신당하고 재산과 원호 보상금마저 탕진한다. 추자가 살림을 처분하고 도망하기 위해 안마사를 불러오고 안마사의 안마를 받다가 미욱은 그녀가 전날의 아내인 여숙 임을 발견한다. 미욱이 여숙을 살해하여 완전 범죄의 음모를 꾸미는 순간에 명길이 나타난다. 박복에게 배신당하고 칼에 찔려 죽음이 임박한 순간이다. 명길과 생모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미욱이 명길의 아버지임이 밝혀진다. 미욱이 그동안 사랑해온 목각인형과 치마 저고리가 옛 사랑의 추억과 가족애를 떠올리게 한다.

 

 

미완의 세기를 남기며 (작가의 글 최용근)

20세기까지 인간을 지탱하던 큰 힘이 가족이요. 그 가족 속에서 우리는 이제껏 인생을 논했는지도 모른다. 가족의 바탕 위에서 영화를 꿈꾸던 지난날이 어쩌면 행복의 절정이었다고 향수처럼 이야기하는 시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 그리해서 이산 가족의 한을 남겨둔 채 우리는 미완의 세기를 남기고 새로운 세대를 맞이해야 한다. 그 길목에서 우리를 돌아보는 일이 이번 작업의 의미이기도 하다. 인위적인 이별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었던 부끄러움과 과거가 모든 사람을 형틀의 시간 속으로 몰아가는 것 아닌가? 그래도 우리는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러면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지나칠 수 없다. 지나온 과거 울타리에 갇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감정의 감옥 속에서 그래도 자기를 지탱할 구원의 힘을 얻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우리들의 오늘이지 않은가? 물질 문명이 전례 없이 발달하자 극도의 이기주의자로 전락하고 인간이 목적 아닌 수단으로 변해가는 시간 속에서 손을 놓고 통곡만 하고 있을 수는 더욱 없는 일이다. 찾아야 하고 찾으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해서 부끄러운 손을 씻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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