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위기훈 '아나키스트 단재'

clint 2023. 7. 10. 15:48

 

개화기부터 현재까지 아마도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역사학자는 단연코 단재 신채호일 것이다.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민족주의자가 되었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가 3.1운동 이후 민중의 존재와 힘을 자각하면서 아나키스트가 된 인물. 사실 이렇게 맥락을 짚었지만 단재 신채호는 다른 독립운동가에 비해 그다지 구체적으로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것을 반증하는 사례가 있는데,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단재 신채호가 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재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처가 불분명한 말임에도 단재 신채호를 호명하는 것은 아마도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정도로만 신채호를 알고 있어서 저 말이 신재호에게 어울린다고 어림짐작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 단재>는 단재 신채호에 집중해 인물의 성격과 행적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위기훈 작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신채호의 삶에 대해 재조명하면서 그 조짐은 '민중'을 근간으로 하는 신재호의 아나키에 두었고 어떤 삶의 궤적을 통해 아나키즘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찬찬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신채호의 사상적 변화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순국 80주년'을 기념하는 창작 목적을 잘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간 신채호의 면모를 부각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그의 아내 박자혜와 아들 수범이 등장하여 신채호의 마지막을 매듭짓게 된다.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비교적 사실적인 장면이 많은 것은 인간 신채호에게 관객이 공감하기를 바라는 목적 때문이다.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궁극적으로는 아나키스트가 된 신재호의 궤적을 관객들이 함께 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부분 감정적인 부분이 강조된 필요가 있는데, 그것을 위해 우선 첫째로 각 시기마다의 동지들이었던 김원봉 안재홍 등과의 결별을 배치했다. 둘째는 신채호의 가족들을 등장시킨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은 그 자체로 안타까운 감정을 유발하는데, 특히 아들 수범은 정서적 울림을 증폭시켰다. 셋째는 단재 신채호의 가장 행복했을 순간을 마지막 장면으로 배치한 것이다. 열다섯이나 어린 신부인 박자혜에 맞는 마흔 살 단재의 기쁘고 부끄러운 감정들이 관객들에게 먹먹하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의도였던 것이다.

<아나키스트 단대>는 엄혹한 시기 일신의 영달과 행복을 추구하는 대신 나라와 겨레를 선택했던 사람들이 결코 타고난 영웅이 아니었음을. 수많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이었을, 차갑고 서늘한 투쟁가의 이면에 신부를 맞이하는 설렘이 가득했음을 잔잔하게 펼쳐냈다.

 

 

작가의 글 - 위기훈

<단재 신채호>의 사상과 삶을 연극으로 기획하는 이유는 단순명쾌하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다한 단재의 정신을 기려 희미해진 역사관, 국민의 정체성,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힘을 키우자는 것, 그것이 목적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이어 범국가적 사건으로 온나라가 시끄럽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역사를 흡수하려고 한다. 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을 통해 역사적 범죄행각을 정당화하고 독도 영유권을 내면화하고 있다. 이는 모두 제국주의적인 발상으로 후대 에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읽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대비는커녕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국민을 전체주의 안에 가두고 이웃국가들의 야욕에 오히려 부채질을 한다.

전체주의적인 발상이 필요 불가결했던 시대가 있다. 6.25 전쟁 직후 온국민이 궁핍에 시달리던 때, 최우선적인 목적이 오로지 경제 부흥이었을 때, 그때는 유효했을 수 있다. 서울에 국민 전체의 5분의 1을 모아 최대의 생산량을 이룩해 '오직 잘 살기'를 해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선대의 노력으로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서 있다.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는 '잘 살기'보다 '제대로 살기'를 해내야 한다. 올바른 가치관, 세계관, 역사관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잘 살기 위해 의식주를 해결했으니, 이제는 제대로 살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보다 창의적인 세계를 열기 위해 내가 누군지 알아 상처를 씻어내야 한다. 다양한 관점의 역사를 읽고, 스스로 견주어 바람직한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문학 열풍은 필요에 의해 국민들이 찾아낸 유행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역사의 수레바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위 인'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한다. 단재 신채호는 충청도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영웅이다. 단재는 고구려 역사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식했다.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만주와 발해지역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뿌리이자 추구할 목표로 보았다. 아시아 전체를 호령한 고구려의 기상을 후대에 알리고자 천신만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민족주의자로서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더 나아가 사회적 모순의 근원을 깨달아 아나키즘을 주창했던, 세계적인 사상가였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아나키즘이란 용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무정부주의'라는 정확하지 않은, 다소 그 의미가 왜곡된 용어로 대신할 뿐이다. 단재의 아나키즘은 단순히 정부를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민중에 의해 탄생하는 매우 효율적인 정부의 탄생에 오히려 주목하고 있다. 민족의 애환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올바른 시민사회를 구축하고자 했던, 행동하는 지성 '단재 신채호'의 삶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 현실은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사실 그대로조차 교과서에서 만날 수 없는 지경이다. 오히려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이 지배정치권력의 입장에 따라 재단되어 왔던 것조차 모르고 있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있었으나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는 무능력하게 차디찬 감옥에서의 죽음을 자처한 슬픈 생의 신채호. 이분의 삶을 연극화 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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