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이율 '믿을지 모르겠지만'

clint 2023. 7. 10. 20:50



"믿을지 모르겠지만"은 각기 다른 듯 7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연이어 진행되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작품이다. 독백 위주의 짤막한 이야기들의 연쇄극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사라진 어머니가 남긴 쪽지의 미스터리에서 시작되어 관객들이 각 이야기들로부터 그 연관성을 추리하게 한다. 관객이 추적을 하며 이야기를 꿰어가는 과정 속에서 결국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끌어내는 연극이다.

 


[줄거리]
1장, 서른다섯 남자의 이야기 -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 비밀이다.
어머니가 남긴 ‘쪽지’ 한 장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 빠진다. 
진짜 비밀은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단지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일 뿐.
2장, 잠수부의 이야기 - 보이지 않는 걸 더 믿게 된다.
잠수부는 수색작업에 나섰다가 본 것과 꿈에서 본 것에 대해 헷갈린다. 
보이는 것만 믿으면 될 텐데 희한하게도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믿게 된다.
3장, 여의사의 이야기 - 용서를 받아줄 자 왜 없는가
‘친절한 의사’로 뽑혔지만, 과거 ‘하나의 처방’이 잘못된 것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4장, 지하철 수사대 경찰의 이야기 - 빛이 없는 인생은 왜 여전한가
강력반에서 지하철 수사대로 왔다. 
‘한건’ 하기 힘들다. 겨우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을 잡았지만 
그는 유명한 교수였고 한 검사에게 전화를 한다. 
성추행범을 잡아도 소용이 없자 서러워진다.
5장, 민대리의 이야기 - 살인충동보다 성적본능이 강하다.
과거 학교 폭력 가해자였던 민대리와 피해자였던 최검사가 입장이 바뀌어 만난다.
6장, 트랜스젠더 마담의 이야기 - 행복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
트랜즈젠더 마담, 마돈나 이전에 유명했던 ‘시발’에 대한 이야기
7장, 대작가와 지망생의 이야기 - 비밀이 비밀일 수 있는 건가요?
이 모든 장면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대작가와 소설가 지망생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대는 의자 8개가 구조와 형태를 만들며 다르게 놓여 있다. 중앙 상단 위는 간혹 에피소드의 이해를 도우려고 메시지나 등장인물의 대사를 자막으로 처리한다. '살인 충동보다 성적본능이 강하다.' 마치 다큐멘터리 자막 타이틀처럼. 작품은 허구와 실재의 경계가 모호한 7개의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중첩되며 진행된다. 에피소드는 일인칭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서른 다섯의 한 남자의 출생 비밀은 대사로 시작된다. "믿을지는 모르지만…. 나의 아버지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내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출생의 비밀은 아버지의 죽음을 일주일 남겨두고 쪽지 한 장 남기고 노모의 엄마가 저수지로 사라지면서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처럼 연극은 시작된다. 이상한 문장을 남기고 저수지로 사라진 엄마의 비밀을 찾아가면서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과 충격적인 이야기는 현실 같으면서도 허구처럼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내용은 이렇다. "이것은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여, 시발" 엄마가 남긴 한마디 '시발'의 의미를 풀어야 한다. '시발, 시발'을 중얼거리며 잠수부들을 동원해 저수지 바닥 물길까지 뒤지고 잠수부들은 '시발' 거리는 아들과 한판 붙으면서도 저주지 밑바닥에서 부처의 형상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는 이상한 형체를 봤다는 말에 이야기는 잠수부, 여의사, 지하철수사대, 민 대리와 마돈나 장면까지 꼬리를 물고 진행되면서 여섯 번째 에피소드 '트렌스젠더 마담' 장면에서 한 통의 전화로 남자와 엄마의 비밀이 밝혀진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비밀은 이렇다. 저수지로 사라진 엄마는 한때 업계에서 트렌스젠더 '시발언니'로 통했다. 이 설정에서 김이율 작가의 구라 상상력도 상큼하다. '시발'은 대한민국 1호 시발자동차다. 1세대 트렌스젠더 시발 언니는 3대 독자로 '시발'로 불리던 사연은 이렇다. 3대 독자 아들이 트렌스젠더로 업소에서 일한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지는 그 시절 시발 자동차를 타고 나타났다. 아들 머리채를 잡고 호적에서 파낸다고 하면서 그 이후부터 '시발 언니'로 통했다. 쪽지의 시발은 트랜스젠더로 살아온 이름이었던 것.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시발 언니는 일본의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완전한 트렌스젠더로 살면서도 남자로 살아온 여자와 여자로 살아온 남자의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마담은 '시발 언니'를 위해 사람이 살지 않는 저수지에 집 하나를 소개해 주었고 두 사람은 아들을 입양해서 키워왔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마치 업계의 전설처럼. 믿을지 모르겠지만은 6장의 에피소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끝내면 재미가 없었을까. 김이율 작가는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구라 연극, 환상연극'이라고 정의 한 것처럼 7장 '대작가와 신인작가'에피소드를 통해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반전의 마지막 전환점을 돌며 극에 재 스파크를 내고 출생의 비밀과 '시발 언니'의 기구한 인생이야기를 소설구조로 밀어 넣는다.

 


이야기는 또다시 미궁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마치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처럼 구라 작가 6단 기술을 보인다. 현실 같은 가짜, 허구 같은 실제 이야기로 반전의 기술을 시도하고 김이율의 구라 감각도 돋보인다. 대작가 장면 이야기는 이렇다. 서른다섯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 시발 언니의 이야기와 남자 출생의 비밀 스토리는 2억 원 상금을 내건 대작가의'소설서바이블 게임'에 응모한 소설이었다. 장면을 돌려 보면, 장면마다 소설지망생이 등장하는데 에피소드에 인물들은 소설의 등장인물들이었다. 연출은 진행되는 에피소드가 작가 지망생의 시선으로 소설이라는 암시를 주는데 대작가 장면에서도 '아, 작가한테 속았구나' 할 때쯤 작가는 능청스럽게 한 발짝 더 들어가 구라 기질을 보인다. 대작가의 소설작품들을 신인 작가 아버지가 문을 걸어 잠그고 20년 동안 써왔던 것으로 밝혀진다. 대작가와 아버지의 악연은 20년 전 교통사고로 대작가의 딸을 숨지게 하면서 그의 소설을 대필해 왔고 유명베스트셀러 작가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믿을지 모겠지만, 연극이 이쯤에서 정리 되면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작가는 또다시 신인 작가 아버지와 여자이면서 남자로 살아온 서른다섯 아버지의 존재를 미궁으로 빠지게 만든다.
소설 같으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시 영화구조로 밀어 넣고 작가는 구라 6단의 기술로, 연출은 무대의 현실적인 감각으로 마지막 장면까지 진짜 같은 가짜, 허구 같으면서도 현실 같은 실제 이야기로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교란시킨다.

 

김이율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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