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헨리크 입센 작 김미혜 역 '대건축가 솔네스'

clint 2022. 11. 26. 07:28

 

 

세 번째로, 6년간 체류한 뮌헨에서 입센은 세 편의 희곡을 쓴 후 1891년 고국 노르웨이로 돌아왔다. 자의적으로 고국을 버린 지 27년 만이었다. 평생 고국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지녔던 입센이 만년을 고국에서 보내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결국 만년을 크리스티아니아(오늘날의 오슬로) 에서 보냈고 1900년 첫 번째 뇌졸중으로 쓰러질 때까지 2년마다 한 편씩 모두 네 편의 드라마를 썼다. 이 중 첫째 작품이 1892년 발표된 <대건축가 솔네스>이다.

<헤다 가블레르>에서 부르주아지의 관습을 혐오하면서도 그 써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며 스캔들을 두려워하는 주인공 헤다의 성격이 입센 자신을 닮아있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는데 <대건축가 솔네스>에서도 입센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읽힌다. 그 이유는 귀국과 동시에 입센에게 일어난 두 가지 사건에 기인한다. 첫째는 입센에게 강렬한 시적 영감을 준 힐두르 안데르센과의 재회였고, 둘째는 당시 소설 굶주림이 성공하며 노르웨이의 '무서운 아이'로 평가받은 작가 크누트 함순(Knut Hamsun, 1859-1952)의 문학강연에서 공격을 받은 일이다.

중년의 나이가 되자 입센은 세 명의 젊은 여성과의 만남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곤 했다. 입센은 그녀들을 "나의 공주들"이라 불렀고, 마지막 공주 힐두르는 입센의 어린 시절 친구의 딸로 그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1874년 고국을 잠깐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열 살이었던 힐두르와 입센은 재회했고 그녀는 27세의 나이에 노르웨이의 첫 여류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여성이 활동하기 쉽지 않았던 시절에 힐두르는 라이프치히와 빈에서 유학한 후 노르웨이의 문화적 환경 조성에 상당히 기여했고, 낭만파 음악에 대한 강의와 리하르트 바그너 음악의 해석으로 유명한 놀라운 여성이었다. 입센이 힐두르에게 끌린 것은 무엇보다도 그녀가 자기실현에 열정적으로 매진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문학 강연회, 음악회, 미술관, 극장 등에 드나드는 기간에 <대건축가 솔네스>는 창작되고 있었고 입센은 힐두르와 만난지 꼭 1년이 되는 1892919일까지 이 드라마를 완성하느라 무진 애를 썼다.

1891년 열렸던 '노르웨이 문학'이란 제하의 문학강연에 크누트 함순은 입센을 초청했다. 함순은 여기서 문학작품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외부의 사건을 다룬 작품이고, 또 하나는 내적 동기를 다룬 작품인데, 전자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것이고, 후자는 심리적인 것이다. 함순은 전자는 가치가 없고, 후자는 가치가 있다는 논리를 폈다. 말하자면 함순은 외부의 사건을 다룬 사회문제 적 작품들을 공격한 것이었고 이는 그동안 사회문제극을 쓴 선배 입센에 대한 공격에 다름아니었다. 함순에 따르면 문학이란 인간 내면의 어두운 구석을 탐색하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영혼 속에 들어있는 예견 할 수 없는 동인(動因)과 변화를 추적할 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며 함순은 건축물에서 따온 이미지인 '공간'을 강력히 요구했다. 즉 옛 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공간(자리)'을 내주어야 한다는 요구였다. 이 이미지는 곧바로 <대건축가 솔네스>에 이용되었다. 이 작품은 젊고 능력있는 설계사 라그나르 브로비크에게 자신이 쌓아온 위치와 입지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싸인, 나이 들어가는 대건축가를 그리기 때문이다.

<대건축가 솔네스>의 창작에 영감을 준 또 한 가지는 독일 여자로 입센의 둘째 공주였던 헬레네 라프가 입센이 뮌헨을 떠나기 직전 들려준 어떤 대건축가에 대한 전설이었다. 뮌헨의 성 미카엘 성당을 건축한 이 대건축가는 성당의 지붕이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탑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얘기였다. 그 전설을 들은 입센은 그렇게 높은 건물을 짓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신에 도전한 자신의 오만함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고 그가 창조한 대건축가 솔네스 역시 자신이 세운 높은 탑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러나 솔네스의 죽음은 전설 속 인물의 죽음과는 다르다. 그의 죽음에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어린 여성 힐데가 있다. 힐데는 이미 <바다에서 온 여인>에서 반겔 박사의 둘째 딸로 등장했다. 그녀는 어린 새엄마인 엘리다의 사랑을 갈구하는 천방지축 소녀이기도 했지만 조각가가 되려는 링스트란의 허약함을 지적하는데 쾌감을 느끼는 안티-히로인이다.

 

 

<대건축가 솔네스>에서는 솔네스가 그녀의 고향인 뤼상게르에서 낡은 교회에 높은 탑을 완성하고 그 높은 탑에 꽃다발을 거는 모습을 힐데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생생함을 여전히 눈앞에 보는 힐데는 10년이 지난 후 나이 들어가는 솔네스를 찾아와 극의 추동력을 제공하면서 솔네스에게 팜므파탈의 역할을 한다. 힐데의 모델이 된 것은 입센의 첫째 공주였던 오스트리아 여성 에밀리에 바르다하와 힐두르 안데르센이라고 전해진다.

힐데가 10년 전 흥분했던 것은 단지 대건축가가 꼭대기에 올라갔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가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의 놀라움과 스릴이었음이 암시된다. 그녀는 솔네스가 10년 전 자신에게 작은 공주 같다고 했으며 어른이 되면 자신의 공주가 되어달라고 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10년이 지나면 트롤처럼 와서 그녀를 데려가겠다고, 왕국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으며 자신에게 여러 번 키스했다고 힐데는 주장하지만 솔네스는 전혀 기억에 없다. 그러나 그가 약속한 날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힐데는 직접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힐데는 내면의 무엇인가가 자신을 솔네스에게 오도록 유혹했다고 한다. 솔네스는 그 '무엇'이 자신도 똑같이 지니고 있는 트롤이라고 생각한다. 힐데는 이제 솔네스에게서 약속받았다는 자신의 왕국을 원한다. 그러나 솔네스는 이미 교회나 탑을 짓지 않고 가족이 모여 사는 보통의 집을 짓고 있으며 집이 불타버린 후 자신과 아내 알리네와 함께 살 집을 짓고 있다. 그러나 사실 부부는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화재로 쌍둥이 아들들과 어릴 적부터 가지고 놀던 인형들을 모두 잃은 알리네는 늘 검은 옷을 입고 지내며 남편에 대한 믿음도 신뢰도 없다. 그녀는 남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가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네스 쪽에서는 자신의 성공의 많은 부분이 아내 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녀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그는 가정사의 중요한 사안에 대한 화제는 늘 피한다.

솔네스는 그때까지 이룬 것, 예술가의 경지까지 갈 만큼 이룬 건축가로서의 업적들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무엇보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이 가졌어야 할 인간적 행복까지도 희생시킨 것이다. 독실한 집 안에서 자란 솔네스는 교회를 짓는 것을 가장 가치 있는 일로 여겼었다. 처음으로 신의 뜻을 깨닫게 된 때는 힐데의 고향인 뤼게르에서 교회 탑을 쌓았 을 때였다고 솔네스는 힐데에게 말한다. "그분이 왜 내 애들을 데려가셨는지 깨닫게 됐지. 그건 나를 얽매이게 하는 걸 갖지 못하게 하신 것이었어. 사랑, 행복, 그런 것들 말이야. 난 대건축가가 되어야 했고 그게 전부였던 거지. 난 평생 그분을 위한 집을 짓도록 되어 있었던 거라고.“ 신의 뜻까지 깨달은 대건축가는 이제 젊음의 상징인 설계사 라그나르가 자신을 옭죄어 온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 솔네스가 힐데에게 거역할 수 없이 끌리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녀의 젊음 때문이다.

 

 

솔네스와 힐데는 여러 면에서 동류의 인간이다. 늘 가파른 절벽에서 떨어지는 같은 꿈을 꾼다는 점,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미쳤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 불가능한 것에 대한 유혹을 느끼며 도전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이 때문에 힐데는 때로 솔네스 내면의 한 측면을 체현한 인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녀는 이 드라마의 리얼리스틱한 갈등구조에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처럼 나타나 솔네스를 망아의 상태에 빠지게 한다. 힐데가 현실적 인물이든 상징적 존재이든 간에 그녀는 솔네스로 하여금 마음속을 털어놓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 모티프는 입센이 그간의 작품들에서 이미 다루었던 것이고, 그것을 <대건축 가솔네스>에서 대가적 수완으로 그리고 있다. 그 모티프는 바로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지배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호스메르스홀름에서는 로스메르를 지배하는 레베카가, <헤다 가블레르>에서는 뢰브보르그를 지배하는 헤다가 이미 존재했다. <대건축가 솔네스>에서는 라그나르의 약혼녀인 카야를 지배하는 솔네스가 힐데의 정신적 피지배자가 되어 힐데의 '마력'에 끌려 자의로 높은 탑에 화환을 걸기 위해 올라가고 거기에서 떨어져 죽게 되는 것이다.

<대건축가 솔네스>는 예술가에 대한 드라마이고 입센의 마지막 작품으로 조각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우리 죽어 깨어날 때>를 선취한다. 솔네스는 독학으로 건축가가 되었고 창조적 건축가가 되었음에 긍지를 갖고 있다. 그는 뤼게르에서 고소증을 무릅쓰고 교회 탑에 올라가 화환을 풍향계에 걸음으로써 불가능한 것을 해냈을 때 결국 신을 버리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인간이 신, 혹은 보다 높은 힘에 도전하는 모티프는 유구한 유럽 문학의 전통 속에 들어있다. 예술가로서 신에 도전한 솔네스는 파우스트의 후손이라 해석되기도 한다. 솔네스의 모든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의 근간에는 바로 신에 대한 도전이 도사리고 있다. 그는 이 사실에, 자신의 트롤에 직면하기 두렵기 때문에 자신의 두려움이 젊음에 대한 것이라고, 자신의 삶에서의 여러 가지 상실이 인간적인 행복의 상실이라고 인간적 측면을 강조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대건축가 솔네스>는 극작에 있어 인물구조가 특히 흥미롭다. 인생이 생로병사를 겪듯 위대한 예술가 역시 그 단계에 해당하는 상승기-절정기-하강기-파멸기를 피할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상승기는 젊은 설계사 나그라르가, 절정기와 일정 부분의 하강기는 솔네스 자신이 파멸기는 라그나르의 아버지로 솔네스의 친구였지만 죽음을 앞둔 크누트 브로비크가 대표한다. 그러므로 크누트는 솔네스의 또 다른 모습으로 그의 하강과 죽음은 바로 솔네스의 것이 될 것이며, 이제 상승기에 접어든 라그나르 역시 머지않아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인류 삶의 순환과 진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 <대건축가 솔네스>의 보편성이 있다 하겠다.

 

 

젊음과 노년의 대립, 옛것과 새것의 갈등, 예술가의 삶이 묘사되었다고 평가되는 <대건축가 솔네스>189212월 크리스티나니아와 코펜하겐에 서 각각 10,000부가 출판되었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러시아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영국에서는 작품이 출판되기도 전에 번역본 출판권을 선취하려고 출판사 관계자들이 노르웨이 로 입센을 급히 방문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대건축가 솔네스의 리뷰는 대부분 우호적이었다. 게오르그 브라네스는 예술로서 위대하고, 상징적 언어가 풍부한 이 드라마를 여러 번 읽었다고 대단한 칭찬을 했다. 세계 초연은 1893년 정규극단이 아니라 순회극단에 의해 트론헤임에서 공연된 후 노르웨이 여러 지역을 순회했다. 이어 베를린의 레싱테아터에서, 3월에는 크리스티아니아와 코펜하겐의 정규극단에 의해 공연되었다. 특기 사항은 뤼네포, 에두아르 뷔야르, 자크 모클레르에 의해 1893년 창단된 파리의 테아트르 드 뢰브르가 오프닝 작품으로 <대건축가 솔네스>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 극단은 1909년 이 드라마를 다시 리바이벌하여 남미에서 순회공연들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