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헨리크 입센 작 김미혜 역 '헤다 가블레르'

clint 2022. 11. 26. 07:13

 

27년간의 자의적 망명을 끝내고 1891년 노르웨이로 돌아가기 직전 입센은 소위 뮌헨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헤다 가블레르>1890년 발표한다. 동명의 여주인공 헤다는 입센의 작품 속 여성 인물 중 가장 논란이 많았고, 현대에 와서는 입센이 19세기 말에 어떻게 그토록 현대적인 캐릭터를 창조했는지에 대한 놀라움이 표시되곤 한다. 헤다에 대해서는 때로 '괴물'이라는 평가까지 있었을 정도이다.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는 입센이 삶에 대해 분노한 한 여인에 대한 연구를 선택한 것은 칭찬했으나 그 주제를 너무 특별화하는 바람에 헤다가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유형상의 특질을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입센의 여성인물들에 대해 연구한 조안 템플턴 (Templeton)"헤다가 악녀이거나 동기 없는 변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입센의 세심하게 계획된, 그의 주인공이 살고, 증오할 이유가 충분한 현실의 풍부한 묘사를 간과한 것"이라 지적했다.

<헤다 가블레르>는 헤다가 자살에 이르기까지 일어나는 이틀 동안의 사건들, 그녀와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주 플롯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4막 내내 같은 곳에서 극적 행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극적 행동'이란 용어는 이 드라마에 맞지 않는 듯 보인다. 입센이 분석적 기법을 일부 사용하긴 하지만 여기서는 과거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헤다의 심리상태를 천착하기 위한 기법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다른 인물들은 등퇴장을 반복하지만 헤다는 마지막에 자살하기 위해 내실로 들어가는 때를 제외하고는 4막 내내 무대에 머문다. 다시 말해 헤다는 그녀의 '감옥''감금당한 채' 오직 자신의 상상과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다. 헌데 그녀는 구태여 소통하고자 애쓰지 않는다. 다른 인물들이 범상한 시민사회인 현실의 세계에 존재한다면 헤다는 자신만의 병적이고 고독한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다. 가블레르 장군의 딸로 헤다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그들보다 낫다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장군에게서 낡은 피아노 한 대, 그의 초상화, 그리고 권총 몇 자루만을 물려받았다. 작가는 헤다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알리지 않는다. 이는 현재의 헤다를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이다. 특이한 것은 장군의 부인, 즉 헤다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권총들을 장난감 삼아 노는 헤다가 어떤 의미에선 미성숙이고, 여성적인 모든 것을 혐오하는 것은 바로 이 모성의 결핍 때문으로 보인다.

헤다가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권총은 남성의 성기, 즉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자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는 죽음과 놀이하는 헤다. 즉 그녀가 스스로의 목숨을 가지고 노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헤다는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천재인 뢰브보르그에게서 강한 성적 충동을 느끼고 그를 사랑하지만 '사랑'이란 '끈적끈적한 단어'를 혐오한다. 그녀는 강하면서 부서지기 쉽고 스캔들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이며 차갑고 구식이지만 열정적이고, 오만하면서 악의에 차있고, 남성적이길 원하면서 여성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많은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녀의 '여성적임'은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그런 헤다가 갈등하는 두 세계를 대변하기 위해 입센은 두 남자, 테스만과 뢰브보르그를 대비시킨다. 특히 테스만은 아내가 된 헤다를 이해하기엔 너무 평범하고 단순하다. 헤다는 적어도 겉으로는 충동적으로 테스만과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결혼은 헤다의 무의식 속에서 계산된 것이며, 상류사회로 복귀하고자 하는 소망의 산물이다. 문제는 평범한 시민 생활을 하는 테스만 가에 그녀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원래의 식구들인 테스만, 늙은 고모, 늙은 하녀는 함께 하나의 전체이자 통일체로서 공통된 사고방식, 공통된 기억들, 삶에 대한 공통된 태도를 지니고 있으나 헤다는 이런 것들을 수용하고, 이런 것들에 순응하려는 생각이 애초부터 없기 때문이다. 선량하고 무해한 그들이 헤다에게는 자신의 근본적 속성에 반()하는 해롭고도 낯선 '어떤 힘'으로 보인다. 모든 남성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헤다를 아내로 맞이한 테스만의 긍지, 가블레르 장군의 딸을 조카며느리로 맞이한 율리아네의 너무 많은 배려가 헤다는 역겹다. 무엇보다도 고모 의존적 인데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감동받는 테스만의 언행이 자신을 자신이 너무나도 혐오하는 일상적 평범함으로 떨어지게 할 것임을 헤다는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그래서 그녀는 임신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어린 생명에게 모성을 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헤다 가블레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오직 헤다라는 캐릭터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인물들의 모든 대화가 헤다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발화되기 때문이다. 헤다는 분명 입센이 창조한 여성 인물들 중 가장 말이 적은 여성이다. 그런 그녀에게서 가장 많은 말을 끌어내는 사람은 판사 브라크이다. 그는 세련된 관리이지만 헤다를 자신의 정부로 삼기 위해 그녀의 집을 자주 방문하는 위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삼각관계이며 이 집의 유일한 수탉이 되길 원한다. 남자들이 스릴을 느끼는 삼각관계, 그것을 원하는 남자이기에 그 또한 그저 상식적인 남자일 뿐이다. 그러나 브라크의 극적 기능은 매우 크다. 헤다가 그를 통해 바깥을 경험하며 그와의 대화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주며 스스로를 가장 많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브라크는 또한 새로운 소식의 전달자로서 극 진행의 추동력을 제공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헤다의 자살을 가속화 한다. 뢰브보르그를 죽게 한 권총이 헤다의 것임을 자신이 입을 열지 않는 한 경찰이 밝히지 못할 것이라고 헤다를 협박함으로써 결국 헤다는 그가 쳐놓은 올가미에 빠진다. 헤다가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그것을 거부하기 위함이다.

입센은 <헤다 가블레르>에서 어떤 변화나 구원도 제시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일상은 "상궤에 빠지고, 관습적이고, 공허한 상호작용의 시시하고 통속적인 영역"일 뿐이다. 입센의 후기 작품들에서 보이는 "극단적으로 고립되고, 이해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 중에서 헤다 가블레르는 단연 돋보인다. 인생에서 어떤 목적도 갖지 못한 채 지루함만이 삶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여성인 헤다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이상 없는 삶을 살아야 할 때 세계는 어떻게 보일지"를 제시한다.

입센의 당대는 고전시대의 이상주의가 무너지고, 부상하는 부르주아지의 일상성이 점차 중시되던 시기였다. 헤다는 그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아니 적응하기를 거부한 '조산된' 여성이다. 그래서 입센은 헤다가 테스만과 결혼했음에도 여전히 처녀 때의 성인 가블레르를 사용하게 하며, 남편과 시고모도 성으로 부르게 함으로써 사회의 관습을 깬다. 이에 대해 입센은 헤다가 아내이기보다는 아버지의 딸임을 암시하고 싶어서였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을 묘사하는 것, 즉 어떤 사회의 상황과 관점을 배경으로 인간의 느낌들과 인간의 운명들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헤다 가블레르>189012월 크리스티아니아와 코펜하겐에서 동시에 10,000부가 출판되었고 영어와 독일어 번역본이 곧이어 나왔다. 그 후 번역된 언어는 러시아어, 덴마크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그리고 포르투갈어였다. 발표 후 5년이 채 되기 전 여섯 편의 패러디까지 나왔다. 세계 초연은 1891131일 입센이 함께한 가운데 뮌헨의 호프테아터(궁정극장)에서 있었다. 한국 초연도 1986년과 87년 극단 서울앙상블의 대표 하경봉의 연출로 무대화되었는데 87년에는 <헤다>라는 제목이었다. 또한 2012년 국립극단의 제작으로 명동예술극장의 무대에 올랐다. 어느 나라이든 헤다 역의 여배우가 작품의 성패를 가름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이혜영 배우가 맡았다.

헤다는 오늘날에도 입센이 창조한 여성인물 중 가장 현대적이라 평가된다. 이런 평가에 준하는 현대적 프로덕션의 시작은 1906년 메이에르홀드의 반자연주의적 연출이었다. 이 러시아 연출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입센의 드라마를 새로이 보도록 색깔, 형태, 움직임 등을 통해 감각적인 인상을 주고자 했으며 근본적으로 작가의 무대 지시문을 고려하지 않았다. 거실에 걸려있던 가블레르 장군의 초상화를 소품에서 처음으로 제거한 것도 메이에르홀드 였다. 반 자연주의적, '현대적'이라 평가되는 메이에르홀드의 연출은 <헤다 가블레르>를 매우 새롭게 보도록 하는 전통을 세웠다. 이 전통을 다시 계승한 인물은 잉그마르 베리만이다. 그가 1964년 스톡홀름의 드라마텐에서 연출한 <헤다 가블레르>20세기에 공연된 입센의 작품 중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영향력있는 프로덕션들 중 하나"라고 평가되기도 했다. 베리만 연출의 기본적인 콘셉트는 어떤 제2의 기회도 대안도 없는 세계에 묶여있는 유령 같은 인물들의 '운명극'이었다.

베리만은 입센의 텍스트에 들어있는 사실주의적 디테일을 거의 대부분 제거했다. 양식화된 최소한의 대소도구로는 암홍색의 소파, 빨간색 의자 두 개, 검은 책장, 검은 피아노가 있었고, 피아노 위에는 암홍색의 장미 부케와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었다. 그 거울 속에 헤다의 단조로운 '감옥의 세계'가 비치고 있었다. 전체 무대 공간은 완전히 비재현적인 박스로 암홍색의 벨벳 천으로 된 프레임이 둘러쳐져 있어 마치 거대한 무덤처럼 보였으며 밀폐공 포증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베리만은 특히 메이에르홀드가 주장한 바대로 관객을 제4의 창조자가 되도록, 즉 헤다의 정서적 변화과정에 관객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무대와 객석을 가깝게 하기 위해 공연이 시작된 몇 분 전 커튼을 반쯤 올려놓았다. 베리만의 연출 콘셉트는 조명에서 극대화되었는데 하우스의 조명은 공연이 시작된 후에야 암전되었다가 공연 중에는 하우스의 뒤편에서 조명을 쏘아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지 않은 채 공히 조명 속에 들어 있었다.

베리만의 <헤다 가블레르> 해석과 연출기법은 1970년대 유럽 전역에 심지어는 입센의 산문드라마들의 무대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섬나라인 영국에서는 여전히 복고조의 무대화였다. 예를 들어 1972년 로열 코트의 <헤다 가블레르><번안: 존 오스본/연출: Anthony Page>는 원작에 아주 충실한 자연주의적인 디테일을 살린 프로덕션이었다. 반면 독일에서는 해체와 인용 기법의 연출이 대세였다. 1977년 베를린 실러테아터의 <헤다 가블레르>(연출: Niels-Peter Rudolph)는 완벽한 패러디물이었다. 살아있는 비둘기가 의미 없이 날 아다니는 난장판 무대에서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멍청한 부르주아들로 해석 된 인물들은 끊임없이 가구 등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그런 혼돈과 소란 속에서 헤다는 그녀의 절망을 가시화하기 위해 피아노 위로 뛰어오르기도 했고 옷상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기도 했다. 그녀의 자살은 거의 호러쇼 수준으로 내실을 감추고 있는 휘장을 찢자 그녀의 주검이 튀어 나왔다.

 

 

21세기의 공연으로 본 옮긴이도 관극한 <헤다 가블레르>2005년 베를린 샤우뷔네에서 초연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연출작이었다. 완전히 오늘날의 일상적 의상을 입힌 공연에서는 대개의 오스터마이어 연출작에서 보이는 에너지와 강렬함보다는 매우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무대는 투명한 유리로 반분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마치 거울처럼 사물을 그대로 비추는 검은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무대는 헤다를 제외한 인물들이 대화를 나눌 때면 다양한 각도로 회전하며 유리 너머에 있는 헤다에게는 들리지 않게끔 연출되었다. 헤다가 자신의 관자노리에 쏘는 총소리도 다른 인물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으로 상정되어 마치 체호프의 <갈매기>에서 트레플레프가 오프-스테이지에서 자살할 때에도 무대 위의 다른 인물들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를 연상시켰다. 헤다의 죽은 모습은 무대가 회전하며 관객에게 보여졌다. 흰 벽에 아름답고 선명한 핏자국을 여기저기 흩뿌린 채 헤다는 그녀의 소망대로 '아름답게' 죽어있었다.

이 공연의 프로그램 노트에는 특별한 연출 콘셉트가 들어있지 않았고, 대신 '자살'에 대한 견해를 역사적 인물들의 글을 통해 소개했다. 오스터마이어의 연출 콘셉트는 "조만간 누구나 운명에 순응한다"라는 표제 구절 하에 영국의 천재작가 사라 케인이 1999년 자살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쓴 <4.48 사이코시스>의 구절들이 쓰여 있었다. 일부만 소개하면, "난 슬프다/ 미래는 희망이 없고, 절대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느낌이 든다/ 난 지루하고 모든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 / 난 자살하고 싶다/ 난 다른 사람들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 난 나의 고독, 나의 두려움, 나의 구토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 (...) / 난 사랑할 수 없다/ (...) / 난 나의 죽음에 미쳐 있다/ (...) 난 죽고 싶지 않다/ (...) / 난 살고 싶지 않다/ () 다른 사람을 제어하고 영향력을 끼치자/ (...) / 독자적인 심리적 공간을 주장하자/ (...) / 사회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롭자/ 폭력과 고루함을 극복하자/ 독립적이고 소망에 따라 행동하자/ 관습에 저항하자/ (...)/ 자기 존중감을 견지하자/ 두려움을 억누르자/ 약점을 극복하자/ (...) / 자유롭자." 이 구절들은 1890년에 창조된 헤다의 내면에 들어있던 언어였을 것이리라는 놀라운 일치감이 있다. 1세기도 훨씬 더 전에 입센에 의해 창조된, 조산된 인물 헤다 가블레르가 정신장애로 고통받다 20세기가 마감되던 해 자살한 사라 케인에게서 되살아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