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망명으로 외국에서 27년을 산 입센의 마지막 정착지는 두 번째로 머물게 된 뮌헨이었다. 이곳에서 6년을 체류하며 입센은 소위 '뮌헨 3부작'으로 불리는 <로스메르스홀름>, <바다에서 온 여인>, <헤다 가블레르>를 발표한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입센의 어느 작품들에서보다 흥미로운 여성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여성들은 또한 단순히 당시 사회의 관습과 통념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가장 가까운 남성들에 의해서도 특이한 운명을 살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로스메르스홀름>의 창작은 입센이 오랜 부재중 1885년 고국에 돌아와 4개월간 머물며 받은 인상, 경험, 관찰 등에 힘입었다. 입센은 고국의 발전은 보았지만 아직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것을 보았다. 즉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고 이런 점이 고국의 동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지는 못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트론헤임에서 있었던 노동자 행진의 연설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우리의 공적 생활에, 우리의 정부에, 우리의 대표자들에, 우리의 언론에 고결함의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나는 가문의 고결함, 부(富)의 고결함, 학문의 고결함, 재능의 고결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인격과 정신 및 의지의 고결함입니다. 그것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고국인 노르웨이보다 선진국이었던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살며 인간과 사회의 여러 측면을 보고 경험한 입센은 물질적인 발전만이 아니라 정신적 발전, 사회 요소요소에 '자유'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고결함'이 뿌리 내린 민주주의가 고국에서 실현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로스메르스홀름〉은 그 소재를 현실정치에 두고 있고 전에 쓰인 사회문제극들의 잔재가 분명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사회에 대한 앙가주망이 전경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그보다는 개인들 내면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들오리>에서 시작된 'Sein'(존재)과 'Schein'(외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고도 보인다.
<로스메르스홀름>이라는 제목은 로스메르의 '작은 섬'을 의미한다. '섬'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물과 떨어져 바다로 둘러싸인 어떤 곳이란 이미지인데 작품에선 목사였던 요한네스 로스메르가 머무는 오래된 저택을 가리킨다. 그는 수백 년의 전통을 지닌 가문의 후손이다. 헌데 로스메르 저택은 아이들이 울지 않고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도 웃지 않는 어둠과 우울함, 그리고 죽음의 상징이라는 백마가 나타난다는 곳이다. 목사였으나 이미 배교자가 된 로스메르는 자신만의 '작은 섬'에 살면서 일상적 가치관을 따르지 못하는 이기주의자이며 그곳에서 벗어나 타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극의 마지막에 자신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며 레베카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것은 그의 이기주의의 절정이다.
그러나 로스메르는 좋은 가문의 후손인데다 적어도 평판으로는 고결한 인물이기에 현실정치가들, 즉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어떻게든 자신들 측으로 끌어들이려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물방앗간 다리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아내 베아테보다도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는 레베카를 처음부터 사랑했기 때문에 죄의식에 싸여 있으며 스스로의 도덕성을 의심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기 위한 레베카의 은밀한 계략과 조종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녀의 덫에 걸린 것이다.
이 로스메르라는 인물에는 모델이 있다. 입센이 두 번째 로마 체류시 문우를 즐겼던 스웨덴 출신의 시인 스노일스키(Carl Snoilsky) 백작이다. 스노일스키는 1860년대 자유사상을 대표하는 정치적 시인이었다. 공직을 두루 맡기도 했지만, 그는 공직과 첫 결혼에서 불행했다. 1879년 모든 공직을 사퇴하고 첫 부인과 이혼한 그는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고 자의적 망명을 떠난다. 이때 그는 성숙한 시인으로서 혁명적 분위기의 삶을 찬양하며 전통에 반하는 정열을 대변한 인물이었다. 그의 자의적 망명이 입센 자신의 경우와 비슷해서인지 그와의 문우는 입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입센은 스노일스키의 둘째 부인을 모델로, 입센의 여성인물 중 가장 설명하기 어렵지만, 매력적인 레베카 베스트를 창조했다.
<로스메르스홀름>에는 세 동아리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로스메르와 레베카, 로스메르의 친구이자 처남이고 행동하는 보수주의자가 된 크롤과 진보주의자 모르텐스고르, 마지막으로 로스메르의 스승이었지만 영락한 울리크 브렌델이 그들이다. 특히 삶에서 이상을 추구했던 브렌델은 지식인이자 예술가이며 이 작품에 유머를 제공하는 '광대'이다. 로스메르와 레베카의 동반자적 활동과 사랑, 크롤과 모르텐스고르의 정치적 대결, 그리고 브렌델의 기행이 작품 속에 격자무늬처럼 짜여 있다. 특히 책을 저술하는 지식인으로서 25년간 책 한 권 쓰지 못한 브렌델은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면서 작가의 철학을 전하는 철학적 광대로 보인다. 그는 "시간의 맷돌이 전부 먼지로 갈아버린 거요. 남은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어요!" 라고 레베카에게 말한다. 이제는 ‘폐위당한 왕'이 되어버린 자신에겐 확실하게 이상 따윈 없이 현실을 밟고 서서 할 수 있는 것만을 행하는 모르텐스고르가 삶의 좋은 예라고 그는 말한다. 브렌델의 대사는 매우 문학적이며 로스메르와 레베카가 자기 인식을 하는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입센이 브렌델을 통해 견자(見者)로서의 예술가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브렌델의 말은 이상을 갖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단 이상을 가지면 행동하라는 의미로 제자인 로스메르에게 한 말이다. 왜냐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자 목사직까지 내던졌지만 로스메르는 결코 행동하는 인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그는 죄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지속적인 승리할 수 있는 대의명분은 행복하고 죄의식 없는 사람이 이끌어야"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그의 변이다.
격자무늬처럼 짜인 이 드라마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모티프는 '죽음' 이다. 죽은 자들의 상징인 백마, 이미 자살하여 무대 위의 실체로서 등장하진 않지만 다른 인물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며 극의 추동력을 제공하는 로스메르의 아내 베아테, 그리고 마지막에 동반 자살하는 로스메르와 레베카. 이렇게 죽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로스메르스홀름>은 비극일 수 있다. 그러나 죽음 말고도 이 작품을 현대적 의미의 비극으로 만드는 것은 행동하지 않는 이상주의이다. 왜냐면 이 이상주의는 '정신의 고결함'과 동의어로 포장되어 인간의 정열을, 삶의 활력을 죽이기 때문이다. 이것의 희생자는 로스메르와 레베카이다. 로스메르는 행동하지 않으면서 콤플렉스의 집합체처럼 보이고, 레베카는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여자가 된 것이다. 춥고 암울한 북쪽에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녀는 "거대한 새로운 세계가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로스메르스홀름을 떠나려 하면서 그녀는 말한다: "로스메르스홀름이
내 힘을 고갈시켰으니까요. 여기서 난 용기와 의지가 꺾였어요. 불구가 되어 버렸어요! 한때는 두려운 것이라곤 전혀 없었지만 그런 시기는 지나갔어요. 난 행동할 힘을 잃었어요, 요한네스." 레베카는 그 캐릭터에 대해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에 의해서 드러나는 몇 가지 인물 유형”이란 에세이에서 다룰 정도로 흥미를 끄는 인물이다.
<로스메르스홀름>의 세계 초연은 1887년 1월 베르겐 극장에서 이루어졌으나 큰 성공은 아니었고, 석 달 뒤 크리스티아니아 극장에서의 공연 역시 관객의 반응이 차가워 겨우 10회 공연으로 끝났다. 같은 해 4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이루어진 독일 초연도 대실패였다. 그러나 한 달 뒤 베를린에서의 공연은 평자들의 적대적 평문이 많았음에도 관객의 관심을 끌었다. 1891년 2월 보드빌 시어터에서 있었던 영국 초연은 평자들에게서 혹평을 받았다. 입센은 "상당히 불쾌한 기행들의 편집자"라는 평, '그의 희곡은 병적이며, 사실 희곡이 아니라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수용할 수 없는 환상적 이론의 지루한 전개"라는 평도 읽어야 했다. 심지어는 입센의 추종자들과 찬탄자들까지도 희곡이 애매한데다 인물들이 인간이라기보다 추상체 같다고 지적했다. <로스메르스홀름>은 책으로도 잘 팔리지 않았고 해가 거듭되어도 이런 상황은 좋아지지 않아 공연의 성공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로스메르스홀름>이 발표된지 13년 후인 188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당시의 관객/독자에게 무의식의 탐구와 같은 소재는 익숙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로스메르스홀름>은 현재의 관점으로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주지만 당시의 관객/독자들은 모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연구가 발표된 시점을 감안한다면 이 경우에도 입센은 시대를 앞선 작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로스메르스홀름>은 스트린드베리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스웨덴 작가는 당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혼에 대해 어떤 지배력을 갖는 '자석과 같은 매력'과 최면에 관심이 있어서 입센의 이 드라마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로스메르스홀름>이 발표된 지 두 달 후 비슷한 모티프가 들어있는 스트린드베리의 <아버지>(Fadren)가 발표되었기 때문에 이 두 드라마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연구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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