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고국을 떠나 외국에 머물면서 입센은 늘 바다를 그리워했다. 그 그리움이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갔다고 하니 대개의 노르웨이인들처럼 입센 역시 무의식 속에선 바다의 지배 아래 있었던 듯싶다. 입센은 1887년 여름 덴마크의 해안가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매일 바다를 보며 바다를 새로이 발견했다. 이 발견의 결과물이 소위 '뮌헨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바다에서 온 여인>이다. 새로이 발견한 바다에 대해 입센은 다음처럼 메모했고 이 메모 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는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발견된다: "바다가 갖는 자성(磁性)의 힘. 바다에의 갈망. 인간과 바다의 유사점. 바다에 묶여있음. 바다에의 의존, 바다로 돌아가야 함. 바다의 풍부한 삶과 '영원히 상실된 것'의 이미지들. (…) 바다는 최면을 걸 수 있다. (...) 그녀는 바다에서 왔고 (...) 젊고 제멋대로인 선원과 몰래 약혼을 했기 때문에 (...) 마음속에서, 본능으로는 그가 결혼해서 함께 살 남자인 것이다."
북부 노르웨이의 한 피오르 마을이 배경이기 때문에 넓은 세계로 나가는 소망의 상징이자 대상인 '바다'는 분명 <바다에서 온 여인>에서 중요한 모티프이지만 이 작품의 주제는 과연 인간이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환경에 잘 동화될 수 있는지, 처음 만난 타인에게 익숙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17년 전 이곳에 도착하여 '동화'되었다고 언급하는 화가 발레스테드의 이야기로 극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며, 주인공 엘리다가 시골 의사 반겔의 두 번째 아내로서 남편에 익숙해져 가는 쉽지 않은 과정이 극이 진전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엘리다의 이름은 기독교식이 아니고 이교적인, 배의 이름이다. 그녀는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항해를 해야 하는 운명임을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정착한 곳에 동화되기 어려운 그녀의 갈등 또한 이미 예정되어 있다. 왜냐면 엘리다는 순치된 문명 세계가 아니라 거친 자연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바다에 대한 엘리다의 그리움과 갈망은 "밤과 낮, 겨울과 여름, 이 끝없는 역류- 바다를 향한 이 향수."와 같은 대사에서 절절하게 드러난다.
주인공 엘리다는 부친의 사망 후, 나이 많은 의사 반겔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의탁할 곳을 찾기 위해 자신을 팔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반겔의 소유물로서 그와 살기 위해 피오르 마을에 온 순간부터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삶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는 마치 계약에 의해 주인에게 예속된 노예로서 자유에의 격렬한 열망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진실을 두 사람은 서로 말하지 않고 있다. 현재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정상적이 아니다. 아이가 죽고 난 후 엘리다가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반겔은 의사이기 때문에 아내를 잘 치료한다면 자신들의 상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지만, 엘리다는 그렇지 않다. 왜냐면 두 사람은 애써 진실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오르 마을, 반겔의 집 외부에서 극적 행동들이 일어나기 때문인지 <바다에서 온 여인>의 전반적인 톤은 밝고 염세주의의 낌새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 밝은 톤은 작품 외연의 사실적이고 일상적 층위에서 두드러지지만 내연은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한 신비롭고 환상적인 층위를 이룬다. 이 큰 규모의 두 층위 외에도 <바다에서 온 여인>에는 서로 대조되는 폐쇄/공개의 세계도 공존한다. 그 대조는 피오르/바다, 잉어 연못/바다, 작은 마을/넓은 세계로 나타나며, 외면/내면의 대조는 몸/영혼 혹은 정신, 현실/꿈의 세계로 대변된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는 바다/육지의 대조로서 이는 작품의 구조, 행위, 대사, 무대 장면 등에서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높낮이와 강약이 조절되며 나타난다.
<바다에서 온 여인>에는 두 개의 플롯이 존재한다. 주 플롯에는 반겔- 엘리다- 이방인의 삼각관계, 아른홀름- 엘리다- 반겔의 또 다른 삼각관계가 있으나 후자는 반겔의 오해로 인한 것이기에 중요하지 않다. 부 플롯에는 아른홀름-볼레테, 링스트란-힐데의 두 쌍이 존재한다. 이렇게 엮여 있는 인물들은 좁고 폐쇄된 피오르 마을 너머에 있을 바다의 신비로움과 넓은 세계에 대한 갈망과 동경을 가진 측과 작은 마을의 현실에 묶여있으나 별다른 소망을 갖지 않은 측으로 나뉜다. 엘리다와 반겔의 큰딸 볼레트는 전자에 속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후자에 속한다. 흥미롭게도 여성 인물들은 갈망과 동경을 지니고 있고, 남성 인물들은 현실에 안주해 있다. 비록 자신을 팔았다고 생각하지만 엘리다는 함께 해온 시간과 함께 반겔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부부로서의 일상도 함께하기 힘들기에 엘리다는 의사인 남편에게 자신을 치료해 달라며 과거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모두 털어놓는다. 그녀는 이름도 분명치 않으며 범죄자인 것 같은 '이방인'과 사랑에 빠졌었고, 거의 약혼한 것 같은 관계에 있었다. 이방인은 그녀의 손에서 반지를 빼내어 자신의 반지와 함께 열쇠고리에 묶어 바다로, 피오르로 던지면서 두 사람이 '바다에 두고 결혼하는 거‘라고 했다. 그의 행위와 말은 엘리다에게 있어 결혼식과 동등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이방인은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엘리다는 그를 기다리지 않고 반겔과 결혼함으로써 중혼에 대한 죄의식에 빠져 있다. 그녀는 이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어 반겔에게 자신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이방인이 엘리다에게 '이상한 힘을 행사’한다고 반겔은 말한다. “그 남자가 내 앞에 서 있는 걸 너무도 생생하게 보곤 해요. 아니 약간 비켜 서 있어요. 그 남자는 결코 나를 보지 않아요. 그냥 거기" 있다는 엘리다의 말은 의사인 반겔의 견해를 강화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는 이방인의 신비로운 힘에 대한 공포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그 공포가 시작된 때부터 그녀는 반겔을 남편으로 사랑하지 못했다. 그녀의 강박관념은 자신의 아이가 그 이방인의 눈과 닮았었다고, 바다처럼 변했다고 토로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방인은 어떤 인물인가? 실제 인물인가? 선원이었던 킹스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이방인은 엘리다의 강박관념 속에만 현존하는 어떤 이미지 같다. 그는 이 극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층위에 속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그는 애매하다. 누구도, 그와 이미 결혼했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엘리다까지도 그가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방인은 메타 상징이고, 상징의 상징이며, 바다가 표상하는 모든 것의 구제화"라고 맥팔레인은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임원이 '바다의 상징을 설정하고, 그것을 의미로 지우고, 그것을 이방인이라는 인물로 의인화' 됐다는 전제 하에 가능하다. 3막에서 엘리다가 자신을 데리러 온 이방인을 전혀 알아보기 못하는 것을 볼 때 이방인은 그녀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무엇, 즉 바다를 향한 엘리다의 열망이 낳은 '허구'일 수 있다. '(그가) 나를 응시하고 있어요"라는 말과 “그 남자는 그냥 거기 있어요.”뭐라는 말은 거의 같은 의미, 즉 엘리다의 강박관념을 전한다. 로버트 윌슨의 1998년 연출작으로 2000년 서울연극제 개막작으로 공연된 <바다의 여인>을 볼 때도 윌슨 역시 이방인을 하나의 상징으로 해석했음을 알 수 있다.(수잔 손탁 각색)에서도 이방인은 배경에 무언의 실루엣으로 처리되었다.
이방인이 실존 인물로서 엘리다를 데리러 온다. 이제 그녀로선 반겔과 이방인 중 선택해야 한다. 그녀에게는 '누군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면 이방인이 그녀에게 자신과 함께간다면 그건 '자유 의지'여야 한다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엘리다는 처음에는 이방인과 함께 가겠다고 하며 반겔에게 자신이 팔린 몸이지만 그가 자신의 정신적인 면까지 지배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내 마음, 생각, 내 욕망과 갈망, 이런 걸 당신이 붙들어 둘 순 없어요! 그것들은 미지의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난 그렇게 생겨 먹어서 당신이 그런 것에서 갇아둘 수는 없어요!" 여태껏 한번도 엘리다의 사랑을 요구한 적 없어 그녀의 동의만을 구했던 반겔은 이제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말한다. 이제 엘리다는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반겔은 그 자유로운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한다. 엘리다는 책임이 따른 자유 의지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반겔을 선택한다.
<바다에서 온 여인>에서 엘리다의 변화와 선택은 결혼생활에서의 정착이라는 행복한 결말을 낳는다. 이는 엘리다와 반겔 양쪽이 모두 변했기에 가능했다. 우유부단한 데다 나이도 많은 반겔은 엘리다와의 관계에서는 매우 적극적이고, 결단력 있는 남성으로 변한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알리다에 대해 참을성을 갖고 많은 것을 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반겔은 입센이 그린 남편 중 가장 비이기적이며 ”이방인으로 대변되는 낭만적 절대주의의 반대점“에 해당하는 남자이다.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말했던 "진정한 결혼의 기적'은 반겔이 아내를 소유물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으로 인정하고 대우했을 때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1998년 11월 10,000부가 출판된 <바다에서 온 여인>은 다른 어느 작품보다 더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독일어본 셋, 영어본 셋에 러시아어와 프랑스, 그리고 에스파냐와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었다. 이는 입센이 당시 유럽에서 누리던 이름에 값한 현상이었다. 세계 초연은 1899년 2월 크리스티아니아와 바이마르 호프테아터(궁정극장)에서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특히 전자는 대성공이었다. 노르웨이에서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덴마크에서는 적대적 비평이 많았다. 그 때문인지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의 덴마크 초연은 1899년 3월에서야 무대화되었다. 그런데도 첫 공연의 관객 수는 입센 생 전에 가장 많았다.
<바다에서 온 여인>이 당시 공연으로서 궁극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보다 당시의 배우들과 관객 모두에게 낯설었던 인간 심리의 깊이가 제대로 형상화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엘리다 역을 소화하여 형상화할 수 있는 독특하고 능력 있는 여배우의 존재 유무가 초기에는 이 작품 공연의 성패를 좌우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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