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가게 오시치의 이야기는, 1683(天和 3년에 화형에 처해진 오시치의 사건을, 그 3년 후, 井原西鶴(이하라 사이즈루)가 <好色5人女> 중 네 번째로 채택한 이래, 에도시대 중기의 죠우루리 작자 기카이온들에 의한 보살피는 죠우루리의 외제(外題)로서 유포하였다.
다카도 가나에의 「오시치」는, 그것을 밑바탕으로 한 '1인극'으로 오시치의 내면을 훌륭하게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전 세계를 전대미문의 빚 속으로 던져 넣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종말의 빛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빛이다.
시간을 알리는 온갖 소리. 300년이 지난 것을 나타냄과 동시에, 종말적 현재를 말하는 소리가 있어, 연옥(황천 · 저승)에서 돌아온 오시치가 나타나, 세상에서 있었던 나날을 회상한다. 모든 계기는 화재였다.
그리고 회상의 시간은 끝나고, 개막할 때와 같은 종말을 알리는 소리가 시작된다. 오시치는 연옥에서 돌아온 사명을 깨닫는다. 전 일본, 아니, 전 세계를 불태우고 하늘을 가리고 함부로 날뛰는 백적청흑(묵시록적 말馬)을 너른 하늘과 함께 모조리 태워버리는 것. “모조리 태워버리고………죽음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죽음의 죽음, 죽음이 죽는다. 소생(蘇生)이, 시작된다. 지구의 소생… 우주의 소생…….” 그리하여 전 세계가 불타올랐다.
여기에는, 놀이는 없다. 이제는 없다. 그리고 아직도 없다. “지금은, 종말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종말의 빛이, 다만 하나의 오나나의 생사의 내면과 함께, 악취를 풍기고 있는 전 세계의 썩을 대로 썩은 실태를 동시에 비추고, 그 문제성이 그대로 한 번에 비춰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이다.
오시치는, 처형장으로 향하는 말 위에서도 "양심의 가책 같은 거,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죄를 지었다고 하는 통한의 마음도 조금도 생기지 않는다."라고, 어쩌면 <하얀 무덤>의 슈헤이의 그것과 같은 대사를 독백한다. 하지만 “그런 내가 어쩐지 무서워 흐물흐물 썪어가는 두부같이 쉰 냄새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 기분 나빠…” 라는 ‘썩은 냄새'를 실감하는 것에 의해, 오시치는 슈헤이를 넘어서고 있다. 그 썩은 냄새는, 한층 더 건물에서는 '얼룩'으로서, 그것도, 죽음으로 조차 씻기지 못하고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얼룩으로 자각된다. 그 절망 안에서, '너는, 깨끗하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의 출연을, 기적처럼 꿈꾼다. 여기에는, 문학표현이라고 하는 그 한계 내에 있어서, 죄의 인식과 용서에의 사무치는 바람이, 대부분 그 극한까지 표현되어 있다.
죽지 못하고 썩어가는 인간의 비릿한 송장 썩는 냄새로 가득한 세계는 하늘을 가린 묵시록의 말에 의해 빛을 차단당하고 있다. 흰 말은, 권력자, 지배자의 말. 빨간색은, 피와 전쟁의 말. 파란색은 병, 쇠약, 파괴의 말. 검은색은, 죄와 죽음의 말. 인간은 죽음에 의해 지배되고 세계는 허무에 복종하고 있다. 그들 원흉의 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죽음의 죽음, 죽음이 죽을 때, 되살아나, 지구와 우주의 소생이 일어난다. 허무에 복종하고 있던 모든 우주, 모든 존재의 회복이라는 장대한 묵시록적 세계가 “두개의 방(찻집극장)을 새빨갛게 물들여 충만했다.
오시치는 1666년생 에도 출신 소녀로, 1683년 3월 29일에 화형당했다고 한다. 죄목은 방화 미수. 이름의 의미는 야오야(야채 가게) 일곱째. 당시의 민중들에겐 흔한 명명법이었다.
오시치는 화재로 인해 가족과 함께 쇼센인(절)으로 피난갔다가, 그곳의 동자승인 이쿠타 쇼노스케를 보고 짝사랑을 하게 된다. 이후 어떻게 하면 쇼노스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괴로워하던 오시치는 다시 큰불이 나면 절로 피난 가게 되고 쇼노스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방화를 시도하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스즈가모리 처형장에서 말뚝에 묶여 화형당했다. 당시 방화범은 화형에 처해졌기 때문. 미수범인 오시치가 화형에 처해진 것은 미수범도 실행범과 동등한 형벌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재판을 맡았던 관리는 오시치를 사형만은 면해주고자 “너 열다섯 살이렸다?”라고 두 번이나 물었으나(당시 열다섯 이하는 미성년으로, 죄가 있어도 형을 받지 않았다) 오시치가 관리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바득바득 열여섯이라 바로잡는 바람에 화형을 면하지 못했다고 한다. 방화범이긴 하나 미수에 그친 데다 철없는 여자아이가 사랑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 당시에도, 지금도 많은 이들이 오시치를 불쌍하게 생각하며 위령비도 있다(도쿄 엔조지 소재). 간혹 지장보살이 머리에 작은 솥을 올려놓고 있다면 오시치를 위해 올려둔 것이다. 화형의 불길의 뜨거움을 솥이 식혀준다고 생각하기 때문. 종이학을 공양하기도 한다. 1666년은 불말띠의 해(병오년) 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화재의 영향으로 "오시치가 불말띠해 생이라 몸 안에 불의 기운을 갖고 태어나 방화를 저지른 것"이라는 미신이 퍼져 병오년에는 여자아이를 낳지 않는 풍습이 생겨났다 한다. 병오년은 60년에 한 번씩 돌아오며 가장 최근의 병오년은 1966년이었는데, 실제로 일본 1966년생은 남자가 여자보다 많다.
실제 인물임은 거의 확실하나, 기록에는 방화 사건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을 뿐이며 실제 인물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제대로 알려져있지 않다. 애당초 야채가게 딸이었는지조차 불명. 오늘날 전해지는 야오야 오시치의 이야기는 거의 전부 이야기 등을 통해 전해지며 각색된 것이라 진위가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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