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동안 사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조건에 맞는 맞선남과 일주일만에 결혼을 결심한 까칠녀 선정. 자신의 카드를 빌려, 이것 저것 사주는 남자친구에게 푹 빠지지만, 결국 그가 자신을 이용하고 엄청난 카드빚을 남기고 떠났음을 알고도,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의외의 순정녀 연옥. 8년간 몸 담은 극단에서도, 나이 서른이 넘어 처음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낸 10살 연하의 후배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 그리고 소주병을 붙잡고, 선정과 연옥이 함께 사는 집에 무작정 눌러앉게 된 주책녀 단순. 이 세 여자는 나이도 성격도 직업도 다르지만, 이별을 겪고 그로 인해 끝나지 않는 성장통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세 여자 중, 적어도 어느 한 명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겉으로는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한 것 같지만, 결국 이별에 눈물 흘리는 선정에게도 갚아야 하는 카드빚보다는 그 남자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는 것에 절망하고, 남들이 보기에는 처음부터 이용당했다는 것이 뻔히 보이지만, 그래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굳게 믿는 헛똑똑이 연옥에게도 "없던 일로 하자"며 쿨하게 돌아서지만, 울리지 않는 핸드폰만 붙잡고 사는 단순에게도 무엇보다 서로에게 "그 남자는 아니야. 넌 헤어져야 해 ! " 충고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잊지 못한 그녀들의 모습은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이렇게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은 드라마, 영화, 가요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인 이별을, 과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그렸다는 점이다. 극 중에서, 선정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지 적당한 게 좋아. 적당히 보고,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미워하고... " 이별의 슬픔을 겪는 사람들은 "적당히" 하지 못한 것에 후회한다. 그러나 과연 "적당히"가 말처럼 쉬울까? 또한, 단순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이거 아니면 죽을 것 같더니, 살다보면 또 죽을 것 같은 일이 생기더라 " 우리는 이렇게 평생 두번 다시는 안할 것 같은 사랑과 이별을 되풀이하고 살아간다. 끝인줄만 알았던 무대 인사 후에, 그녀들의 끝나지 않은 사랑 이야기까지도, 우리들의 이야기인 연극 <지금, 이별할 때>였다.
선정, 연옥, 단순이라는 세 명의 여주인공의 각각의 이별, 진정한 사랑찾기에 대한 내용이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까지의 여성들, 그 중 세 명의 유별난 그러나 평범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연애보다는 현실적인 결혼을 생각하는 선정, 표현하지 못하지만 그 앞에서만은 여자이고픈 단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를 외쳐대는 열혈여인 연옥. 셋은 어찌어찌해서 같이 살게 되고, 한 공간에서 각자의 사랑을 향한 방향들이 교차하면서 관중들은 그녀들의 일상을 보며 '처녀들의 수다'라던가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선정의 이야기에는 GOD의 '거짓말'이 어울린다. "잘가 (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 (나를 잊지마)". 특히나 가장 슬펐던 장면, 옛 애인이 나즈막히 따뜻하게 선정을 부르는 장면에서 나는 이 노래를 떠올렸다. 슬픈 이야기에서 '풋', 폭소를 담당하는 쾌할한 여자 단순에게는 장나라의 '나도 여자랍니다'가 어울린다. "나도 여자랍니다. 그대곁에 있을 때면, 부드럽고 약해지는 마음" 제 아무리 털털해보여도, 사랑에 있어서는 그저 여자인 그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장 문제있는 사랑을 하는 연옥은 브라운 아이드걸즈의 '아브라카다브라'. "이러다 미쳐 내가 여리여리 착하던 그런 내가 너 때문에 돌아 내가 독한 나로 변해 내가 널 닮은 인형에다 주문을 또 걸어 내가 그녀와 찢어져 달라고 고" 유행가요 노랫말에 녹아든 상황처럼 특별한 그녀들의 독특한 상황을 경험한 것은 아니어도, '사랑'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관중과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별과 망설임속에서 각자의 사랑을 찾아가는 발걸음. 지독하고 처절해서 잘됐구나 싶은 사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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