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허규 '바다와 아침등불'

clint 2016. 10. 9. 09:20

 


거제도 배내포라는 낙후된 작은 포구에 도선감댁 어른으로 불리는 윤노인이 살고 있다. 노인의 집안은 조상 때부터 이 곳에서 목선 조선업을 하면서 살아왔다. 근년에 와서 철선의 수요가 늘어감에 따라 목선 제조업은 폐업상태에 이르렀고, 게다가 그곳이 조선 공업단지로 지정되면서 원주민들은 땅을 팔고 타지방으로 전출하거나 근처 조선소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 노인의 목선 공작소도 대기업인 고려조선소 확장계획에 따라 타의에 의해 팔아야 할 처지에 있을 때 노인 방 벽장 속에 있는 오래된 가전품인 고서 뭉치를 정리하다가 이조 중기 임진난 후에 작성된 통영장사 판옥선 조선도본을 발견하고 그의 생의 마지막 사업으로 그것을 복원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자금, 인원, 기술 등의 어려움이 있고 가내의 반발과 외부의 압력으로 쉽게 추진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때 마침 5년전 노인집 목선을 타고 고기잡이 나갔다가 실종됐던 해원이라는 청년이 돌아와 적극 협력하게 된다. 해원은 고아 출신으로 윤노인이 키워 가르친 청년이다.
어느날 선복장인 변서방이 기계톱에 치명상을 입고 숨지게 되고 게다가 조선 도면을 도난당하여 노인은 심한 충격을 받고 공사를 중단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해원의 투지와 가족들(특히 딸)의 협력으로 배를 완성하게 되고 윤노인은 화려한 진수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밝은 아침 햇살을 받는 등불처럼 죽어간다.

 

 

 

 

전통의 계승과 복원의 중요성을 조선 과정의 여러 가지 난관과 최종적 완성을 통해 제시하였지만, 원작이 지닌 주제의 진부성과, 긴박감이 부족한 구성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시련 끝에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졌는데 주인공이 자살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후반의 갑작스런 해결은 딸의 급작스런 태도변화 때문이었는데, 딸을 사랑하는 젊은이와의 관계가 치밀하지 못해 감상으로 흘렀다. 그리고 현대조선소의 방해는 사족같다.  희극적인 인물 황주사는 성격을 잘 살리기는 했으나 극전개에서 어떤 지렛대 구실을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허규     1934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났다. 1957년 서울대 농과대학 임학과를 수료했다. 대학 연극부를 거쳐 1960년 극단 실험극장 창립 동인이 되었다. 1960년대 극장주의 연극 운동에 참여했으며, 1973년부터 1981년까지 극단 민예 대표를 지냈다. 가면극과 마당극 등 다양한 전통연희 기법과 방식들을 훈련하고 발전시켰다. <심청가> 등 창극 연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1977년 <물도리동>으로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 1979년 <다시라기>로 제4회 대한민국연극제 연출상을 수상했다. 1981∼1989년 국립극장장을 지냈고, 1980∼1983년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을 지냈다. 대표작으로는 <물도리동>, <다시라기> 등이 있다. 1934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났다. 1957년 서울대 농과대학 임학과를 수료했다. 대학 연극부를 거쳐 1960년 극단 실험극장 창립 동인이 되었다. 1960년대 극장주의 연극 운동에 참여했으며, 1973년부터 1981년까지 극단 민예 대표를 지냈다. 가면극과 마당극 등 다양한 전통연희 기법과 방식들을 훈련하고 발전시켰다. <심청가> 등 창극 연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1977년 <물도리동>으로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 1979년 <다시라기>로 제4회 대한민국연극제 연출상을 수상했다. 1981∼1989년 국립극장장을 지냈고, 1980∼1983년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을 지냈다. 대표작으로는 <물도리동>, <다시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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