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는 오닐의 인생과 미국 연극에 또 다른 이정표를 남겨 주었다. 이 작품은 1936년 오닐에게 작가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노벨 문학상을 안겨주었고, 이로써 오닐은 미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 극작가가 되었다.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는 「귀향」, 「쫓기는 자들」, 「홀린 사람들」의 3부(13막)로 구성된 장막극이다. 이는 그리스 비극 『오레스티아』(Oresteia)의 신화적 구조 안에, 남북전쟁을 전후한 1850년대의 미국 역사를 프로이트 심리 이론 및 멜로물적 요소와 적절히 융합시켜 재설정한 것이다. 이 작품은 주제의 폭과 깊이 그리고 사실주의와 표현주의가 혼합된 형식 등 여러 면에서 오닐의 최대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닐의 뛰어난 상상력과 극적 감수성이 재창조해낸 이 신화적 3부작이 자아내는 강렬한 극적 감동은 비평가들로 하여금 오닐을 세익스피어와 라신(Jean Baptiste Racine)에 비교하게끔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버지ㆍ어머니ㆍ딸ㆍ아들 사이의 적나라한 심리적 갈등과 그로 인해 죄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는 등장 인물들의 운명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숨은 힘’과 패배할 수밖에 없는 투쟁을 벌이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여기에 나오는 ‘숨은 힘’은 참사랑과 성적 욕구에 대한 무의식적 갈구, 사랑과 증오의 양면성, 후손에게 계승되는 조상의 죄, 성적 억압으로 인한 창조적 에너지의 파괴, 반자연적인 청교도적 윤리관과 죄의식,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삶과 죽음의 모습, 엘렉트라ㆍ오디푸스 콤플렉스 등의 다양한 힘들이다.
마농(Mannon)가의 비극은 위선적인 청교도 윤리관에 얽매인 마농가 사람들이 자유로운 삶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마리(Marie)를 내쫓을 때부터 시작된다. 마리의 아들 브란트(Adam Brant)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마농가에 접근하여 에즈라 마농(Ezra Mannon)의 아내 크리스틴(Christine)과 비정상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다른 마농가 사람들 또한 모두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로서 억압된 성적 욕구로 인해 깊은 좌절감을 느끼며, 이를 비정상적인 사랑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크리스틴은 남편 에즈라를 사랑하여 결혼하였으나, 사랑이 결여된 그의 엄격한 삶에 몸서리치며 형식상의 부부 관계만을 유지하다가 정부인 브란트와의 사랑을 위해 남편을 독살한다. 아버지와 브란트를 동시에 사랑했던 라비니아(Lavinia)는 어머니에 대한 질투와 혐오증으로 동생 오린(Orin)에게 어머니와 브란트가 만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어머니에 대한 오린의 감정 역시 독점욕에 사로잡힌 연인의 감정과 유사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정부의 밀애 장면을 보는 순간 오린은 격분하여 브란트를 죽이게 된다. 사랑을 잃은 크리스틴은 절망에 잠겨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
브란트와 어머니의 죽음을 정의의 심판이 내린 벌이라고 말하는 라비니아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축복받은 섬’으로 항해를 떠난다. 그곳에서 라비니아는 인위적인 성적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능대로 자유로운 삶과 사랑을 체험하고 정열의 화신으로 변모한다. 이제 라비니아는 그녀를 사랑하는 피터와 결혼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오린은 어머니의 자살에 대한 책임감에 사로잡혀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며 어머니에게 향했던 감정을 라비니아에게서 찾고자 한다. 그는 변모된 라비니아에게서 애증의 감정을 느끼며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집으로 돌아온 오린은 죄의식으로 신경쇠약증세를 보이며, 마농 가문의 역사를 기록하여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라비니아는 자신의 미래를 방해하는 오린을 자살로까지 몰로 간다. 그러나 오린의 자살은 라비니아를 영원히 과거 속에 묻히게 한다. 그녀는 자신이 죄악으로 점철되어온 마농가의 운명에서 해방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가혹한 정의의 심판을 내린다. 혹독하게 자신을 벌하기 위해 죽음의 집으로 들어가는 라비니아의 뒷모습은 패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고 진정한 자아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대결하는 불굴의 인간 정신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나치게 심각한 주제와 멜로물적인 요소, 그리고 반복되는 감정적 외침이 자아내는 중압감이 때로 극적 흥미를 감소시키며, 마치 프로이트 이론을 전달하는 교과서처럼 느끼게 하기도 한다. 또한 대사가 지나치게 웅변적이고 반복이 심한 경우를 제외하면, 현대극에서 느끼기 어려운 강렬한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심오한 주제와 장엄한 비극 정신, 그리고 강렬한 언어는 아마도 이 작품을 현대 연극의 마지막 고전으로, 그리고 오닐을 현대성을 지닌 마지막 고전 극작가로 규정하는 데 손색이 없다.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Mourning Becomes Electra, 1931)는 오닐(Eugene O'Neill)이 쓴 여러 작품 중에서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1956)와 함께 금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오닐은 미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 극작가가 되었고, 미국 연극계 역시 노벨상을 수상한 극작가를 배출함으로써 명실공히 세계적 수준에 올라서게 되었다.
총 3부 13막으로 구성된 장막극인 이 극은 원래 오닐의 순수 창작품이 아니다. 이 극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에스킬러스(Aeschylus)의 3부작 {오레스테아}(Oresteia)를 남북전쟁 후의 뉴잉글랜드의 한 가정에 적용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제1부 [귀향](Homecoming)과 제2부 [쫓기는 자들](The Hunted)은 {오레스테아}의 제1부 [아가멤논](Agamemnon)과 제2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Choephori)과 거의 동일하다. 제1부 [귀향]에서는 에즈라 메논(Ezra Mannon, Agamemnon에 해당)의 아내 크리스틴(Christine, Clytemnestra에 해당)이 그녀의 정부 아담 브랜트(Adam Brant, Aegistheus에 해당)와 공모하여 전쟁에서 돌아온 에즈라를 살해한다. 제2부 [쫓기는 자들]에서는 에즈라 메논의 아들 오린(Orin, Orestes에 해당)과 딸 라비니아(Lavinia, Electra에 해당)가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에게 복수를 한다. 여기까지는 오닐의 작품과 에스킬러스의 작품이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제3부 [홀린 사람들](The Haunted)은 에스킬러스의 작품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오레스테아}의 제3부 [자비로운 여신들](Eumenides)에는 등장하지 않던 엘렉트라(Electra)가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의 제3부 [홀린 사람들]에는 등장하여 극을 이끌어 간다. 에스킬러스의 작품에서는 오레스테스(Orestes)에 종속하는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던 엘렉트라가 오닐의 작품에서는 극 전체의 액션을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이와 같은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는 그리스 비극에 기초한 현대극을 완성해 보겠다던 오닐의 야심에서 탄생된 작품이다. 1926년 봄부터 여러 해 동안 그리스 운명비극에 필적할 만한 현대심리극을 완성해 보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오닐은 여러 그리스 고전극들을 두루 섭렵한 후, 최종적으로 에스킬러스의 삼부작 {오레스테아}를 그의 극의 모델로 삼기로 결정했는데, 그 이유는 {오레스테아}의 내용이 다른 그리스 비극에 비해 깊이 숨겨진 가족관계를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의 오린과 오닐 자신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큰 키, 여윈 몸, 매부리코, 까무잡잡한 피부, 검은머리, 예민한 입술선 등의 신체적인 면에서 두 사람은 매우 닮았다. 침울하고 내성적인 성격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집안에서 아기 취급을 받으며 자라났다는 점, 그리고 바다에 매혹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비극적인 가족사를 써서 밀봉한 후 그들의 사후에 개봉토록 요청한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어머니에 대한 미묘한 애증의 모순된 감정을 가졌다가 결국 어머니를 향한 용서와 화해의 감정을 갖게 된다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상의 여러 점들은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가 오닐의 자서전적인 면이 투영된 작품이라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오닐은 에스킬러스의 {오레스테아}라는 고대 그리스 극을 연상시키는 장대한 배경 속에 교묘한 방법으로 그의 어머니와 그 자신을 투영시켜 용서와 화해라는 감정상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함으로써 어머니에 대한 그의 감정적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출구를 마련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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