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지훈 '방바닥 긁는 남자'

clint 2016. 5. 10. 09:40

 

 

 

재개발이 예정돼 사람들이 모두 떠난 동네 낡은 단칸방에 사내 4명이 함께 산다. 하루 19시간 이상씩을 자면서 어떻게 하면 더 게을러질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게 이들의 일. 설거지는 한 달에 한 번 하고, 속옷은 3년에 한 번 갈아입는 게으름과 더러움의 끝을 보여준다. 이들은 스스로를 누룽지 인간이라 명명하며 세상과 자발적으로 동 떨어진다.

노숙자에 가까운 백수남자 4명의 자학개그가 계속 이어지지만 극의 중후반으로 치닫자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이들이 머물고 있는 방바닥이 돈의 노예가 되고 권력투쟁에 사활을 거는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새벽녘 창문가에 서서 출근하는 사람들의 입김을 보며 나누는 대화와 지도자 선출 과정 등 곳곳에서 신랄한 현실의 민낯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약육강식의 문제는 존재하고 힘이 센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힘이 없는 자는 힘이 센 자에게 빌붙어 살기도 한다. 남자들은 길 건너 중국집에 편지로 짜장면을 주문한다. 멀리서 영업 온 다방아가씨가 그들의 혼을 빼놓고 지나가는 학생이 그들의 유일한 삶의 다른 일면이다. 나무 밑둥 위에 버티고 있는 그들의 단칸방에 마침내 조항신이 나타나 분노한다. 조항신이 떠나고 그들은 조항신이 두고 간 항아리에서 돈을 가지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향해 떠난다. 이들이 한사코 나가길 거부했던 단칸방은 끝내 부서지고 이들은 밖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거대한 나무의 밑동에 얹혀 있는 집. 이곳에서 누룽지 인간을 자처하는 사내 4명이 살아간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집은 낡고 더럽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사내 1, 2, 3, 4는 집보다 더 더럽다. 악취마저 증발한 두발과 몸을 신문지로 닦아내는가 하면 속옷은 3년에 한 번씩 갈아입는다. 자장면은 인편으로 편지를 보내 34일 기다려 배달해먹는다. 게으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들은 방바닥에 누워 꼼짝하지 않고 하루 19시간 이상 잠을 잔다. 잠시 깨어나서는 식욕을 채우고 나머지 시간은 또 잠 잘 준비에 쓰며 잡다한 괴설을 늘어놓는다.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는 김지훈의 신품이다. 그는 <원전유서>라는 430분짜리 연극으로 파장을 던졌다.

사내 넷은 비좁은 곳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자리를 두고 권력다툼도 벌인다. 머리 크기가 가장 큰 사람을 방의 지도자로 꼽는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하찮은 인간들의 일임에도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작가는 이들에 대해 생물학적인 분류가 필요하다면 조직 사회에서 도태된 수컷이라고 밝힌다. 이들도 잠만 자는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잠자는 인생은 소외된 개인이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유배시켜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인 셈이다.

 

 

 

 

 

 

 

작가의 역설은 엽기적이고 코믹하다. 그러나 누룽지 인간들이 새벽녘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털어놓는 고백에서 한 차원 승화된다.

저거 봐. 햐 사람이 뛰어간다. 무슨 짐승도 아니고”(사내 3). “얼굴들이 다 금방 지은 밥 한 그릇 같다. 왜 저렇게 곱지. 왜 나한테는 새 밥 풀 때 나오는 김처럼 하얀 입김이 없을까”(사내 4).

이 작품은 <원전유서>의 여진 때문인지 소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 세상의 온갖 바보스러움을 한꺼번에 토해내려는 작가의 과욕 탓에 산만할 때도 있다. 그러나 신랄한 현실풍자와 인간의 근원적인 삶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진지하다. 의뭉스럽게 세상에 대해 항변하는 누룽지 인간들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섭 '이사하는 날'  (1) 2016.05.10
이강백 '황색여관'  (1) 2016.05.10
오영진 '무희'  (1) 2016.05.09
오태석 '사추기'  (1) 2016.05.09
정소정 '뿔'  (1) 201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