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석 '사추기'

clint 2016. 5. 9. 11:54

 

 

 

 

<사추기>(思秋期)는 초로에 접어든 50대 부부가 생의 한가운데서 겪는 정신적 갈등과 존재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삶의 투시와 확대를 위한 기억의 장면화·의식의 시각화·인물의 분신화·행동의 인형화가 대담하게 전개된다. 전형적인 여성의 특질을 규명하는 작품으로 형식은 현대적인 기법을 구사하고 있으나 과거의 부부생활과 현재를 대비시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국립극단 제 138회 정기공연으로 1989.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오태석 연출로 공연됨

 

 

 

 

 

 


<사추기>(1979. 12)는 딸이 결혼하고 폐백하는 시간에 부부의 대화와 회상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초로에 접어든 50대 부부(이것이 思春期에 대응하는 思秋期의 의미)의 정신적 갈등과 생의 한가운데 놓인 실존적 모습을 투시한 서사극이다. 의식의 흐름과 과거의 에피소드를 재현하는 기재(器材)로서 무대 한편에 타임머신이 설치되고, 부부(장민호, 정애란 역)는 담담한 자세로 이 기재를 돌려가면서 자신의 분신(分身)과 자식, 관련 인물들, 사건의 실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되새긴다. 마치 낡은 필름이 돌아가듯, 부부가 겪은 삶은 서로의 애정과 괴리, 갈등과 이질감, 상실감을 그대로 재현한다. 서구적인 메커니즘을 최대로 활용한 작품이다.
이것은 한국적인 부부의 일상생활이 진솔하게 묻어나는 한 권의 ‘흑백사진첩’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의 장면화와 인물의 분신화(인형을 활용)를 통해 내면적 진실들은 투명하게 확대된다. 고전소설<한중록>의 이미지, 전통의 계승, 한국여성의 페미니즘과도 상관된다. 자의식이 강한 딸과 어머니의 연속성이 돋보인다.

 

 

 

 

 

 

 

작품해설
어느 민족에나 남녀가 각기 지니고 있는 성정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갈등은 양식을 달리 할 터이다. 예로부터 한국 남자는 우유부단, 오기, 이기심, 결백병을 여자는 내공, 절개, 의타심을 성정으로 지녀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두개의 인습적 이질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이 작품의 구조가 되겠다. 사춘기와 흡사한 말로 사추기가 있다. 살아온 날에 대한 회오,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꺼저가는 욕정에 대한 안타까움, 외로움에 대한 무력감등이 엇갈려서 흡사 이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사춘기의 설레임과 맞먹는 그런 야단스러운 시절, 인생50줄을 두고서 이르는 말이다. 이 작품은 막내 딸마저 짝을 지워보내는 처지에 있는 한 부부, 바로 사추기에 들어설 무렵에 처한 부부의 애기를 다루고 있다. 부인은 갑자기 둘만 남겨진다는 사실에 놀래고 겁을 먹는다. 그래서 잠시 혼자 떨어져서 시간을 갖고서 이후 부부관계며 아이들 때문에 가려졌던 일, 미루어왔던 일들을 정리하고 둘만 남겨지고 무서운 상태에 대비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연구휴가를 제의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 탈없이 살아온 남편은 이 돌연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잔뜩 두려운 여자와 두려울 것이 없는 남자 사이에 언쟁이 시작된다.
마치 낡은 사진첩을 들추듯이 이로운 증인을 불러 세우는 법정대리인들처럼 각기 입장을 좇아 얘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간다. 인습적 성정들이 빛을 내는 것이다. 얘기의 배경은 17살에 약물작용으로 죽은 자식 장례치루던 며칠간, 비교적 기억이 뚜렷한 만큼 상대적으로 상처를 크게 받은 것이지만, 굴레를 벗어날 줄을 모른다. 마치 시소를 타는 두 사람처럼 각기 입장을 세워주기도 하고 몰아붙이기도 하면서 엎치락,뒤치락. 그러면서 조금은 생기를 찾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볼을 붉히기도 하고, 흠칫 놀래고 바르르 떨기도 하면서, 어찌하지 못하고 맞아들여야 하는 어둡고 긴 계절을 예감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연극, 가까은 곳에서 벌어지는 연극>>- 작가 오태석
대체로 변하는 것을 섬어하는 성정을 우리는 가지고 살아온 듯합니다. 유가의 영향을 아무래도 크게 작용하는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대가 세어서 그래서 좋은 것 좋게 지녀오는 것도 많기도 많습니다만, 그만큼 해가 되는 것도 많을 것입니다. 어려웁더라도 해가 되는 것은 오직 치우는 일을 어느 한 쪽에서는 해야된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대가 세다는 말은 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됩니다. 우리는 말을 할 줄은 아는데 남의 소리르 들을 줄은 모르는가 봅니다. 따라서 대화가 만들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노론, 소론이 그랬고 남북이, 여야가 그러했습니다. 하기는 집이라는 굴레에서부터 대화란 당초 익숙한 것이라기보다 성가신 물건, 가급적 기피해서 편리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왜 성가신 것이 되버렸는지 모르면서, 그렇게 돼버리고 만 것입니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남녀간의 요지부동의 인습적 성정같은 것이 작용하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일이 쉽지 않은강보다 그런 생각을 해 본것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실제를 펴보는 것은 연극적인 발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어떤 방법을 이끌어내는 일에 단서가 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불구경 못지 않은 것이 쌈구경입니다. 싱겁게 끝나기 일쑤이고 씁쓸하고 허망한 뒷맛을 남겨놓기도 마찬가집니다. 구경하면서 조금은 고소한 마음이 고개를 들고 그래서 조금씩 부끄럼도 타면서 조금씩 부끄럼도 타면서 조금씩 더 끌어가주기를 바래고 종지부 못미쳐 잽싸게 등 돌리는 매정함을 잃지 않는 점에서도 같습니다. 그런데 쌈구경한 사람에게는 해야될 일이 한가지 더 생깁니다. 나름대로 승패를 가르던가 피장파장이라든 어쨌든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되지 않는 싸움도 있을 것이겠고 기왕에 싸움마당을 만들어논 바에 그런 것이 되었으면하고 바랜것입니다. 조금은 나이가 들어보이는 연극, 매우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연극, 그래서 보기에 편리하고, 연기자가 재능을 허비하지 않는 연극을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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