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국조 단군이 신시를 베풀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나라를 세웠다고 하는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다. 신시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세워진 겨레의 이상향이며, 따라서 이 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상징한다. 공동체 의식은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하는 장소이며 솥이다. 우리들 현대인은 과학문명의 가속적인 발전으로 소외와 고독속에서 인간을 상실하고 영국의 조각가 업스타인의 작품처럼 기계인간으로 표현되고 있다. 신시 이야기는 잃어버린「사람모습」을 되찾기 위한 우리의 굿놀이, 제의극이다. 이 극은 단군신화가 재현되는 상황안에서 신시를 체험함으로써 근원지에 대한 고갈을 해소하고 삶의 원천, 삶의 기쁨을 우리 몸안에서 되살리는 작업이다. 겨레의 아이텐티티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함으로 연극 본래의 사명에 접근한다. 그 방법론은 융학파의 자아분석이 보여주는 내면 성찰의 모험적 탐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화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성인화의식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신화신대의 고대적 심상은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현대의 시대상황으로 흘러넘쳐 그 맥락을 잇고, 단절의 벽을 무너뜨린다. 태초의 삶의 모습은 우주의 리듬, 자연의 율동 사계절의 순환을 다시 되돌려 줌으로써 우리를 재생하게 한다. 우리를 가장 잔혹하게 찢으며 지상적인 열기로 뜨겁게 연금시키고 나아가 최상의 회열속에서 천상적인 하늘의 열정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생의 흰마로 몸을 감은 성스러운 모습으로 육화되어 다툼도 없고 억눌림도 없는 자유와 평등과 평화의 이상향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꿈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수목과 같이 희생된 삶의 모습! 그것은 봄을 맞아 싱싱하게 물이 오른 신시의 신단수이며, 우리들의 공동체이고 이겨레가 이룩하려는 아이텐티티이다, 따라서 신단수는 바로 세계수로소 인류의 비젼인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단군신화에 대한 분분한 논쟁에 휘말려서 짐짓 우리의 귀중한 건국신화를 외면해왔다. 아니다, 단군신화는 이제라도 재평가되고 끊임없이 탐구되어 각 분야마다 가장 활발한 이 민족의 테마로 대두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이상과 같은 관점을 바탕으로 해서 굳세계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말하자면, 은근과 끈기, 그 원천적인 힘은 우리의 건국신화속에 베풀어진 신시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시 이야기는 우리 이웃과 자손으로 하여 소멸하지 않고 거듭 태어난 순환해가는 이겨레의 삶을 이야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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