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석 '산수유'

clint 2016. 5. 7. 12:15

 

 

 

 

공연일정1980.12.2-1980.12.8//중앙국립극장 국립극단 제98회 공연 연출//이해랑


그 산은 숱한 슬픔을 품고 있다. 한이 맺혀 바위가 되고, 한이 맺혀 개울이 되고, 한이 맺혀 꽃을 피우고, 한이 맺혀 풀포기는 바람에 시달리고, 한이 맺혀 령너머 구름은 흐른다. 지리산, 그것은 고난을 겪은 역사의 얼굴이요, 역사의 피빛이요, 그 역사의 통곡이요, 그 역사의 외침이다. 그 역사가 지금 작가 오태석에 의하여 소리가 되어 우리의 페부를 찌르고, 빛이 되어 우리의 눈을 뜨게 한다. 오태석의 이 작품은 지리산 기슭에 웅크리고 앉은 배티마을을 휘감고 좀체 물러서지 않던 긴 죽음을 쓰다듬고 달래주는 진혼곡이다. 그리고 만장이다. 그 죽음을 기억케 하는 만장이요, 그 죽음의 비극을 경고하는 만장이다. 그 만장은 너와 나, 우리 모두 앞에 몸서리쳐지는 악몽처럼 너불거리고 있다. 오태석은 이 암흑을 응시하고 있다. 오태석은 이 암흑과 대결하고 있다. 오태석은 이 일을 통해 역사에 의한 치유와, 역사에 의한 심판과, 역사에 의한 화해, 그리고 역사에 의한 궁극적 초월과 승리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리산은 마의 산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운명의 산이 되기도 하며, 사랑과 의지의 산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의 무대설명은 이 뜻을 암시하고 있다. 지리산은 험준계곡도 아니고 기암절벽의 장관을 이루지도 않는다. 언덕인가 산인가 싶은 그런 여인의 가슴과 같은 산이다. 이 산의 특성은 작품전개에 커다란 작용을 한다. 때문에 무대장치, 어느 언덕 어느 지점에 연기자가 서도 그 체중을 감당할 수 있는, 말하자면 거대한 구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실제 관객은, 고속도로 공사장의 깎아내린 공사 현장을 마주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서 좋다. 전체로, 인간이 살아가는 영역이 무대 전면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그뒤에 거대한 산, 인간들의 조그만 상처를 감싸고 덮어주는 듯한 산의 포근하고 비길데 없이 깊은의지가 항상 무대를 치받고 있어야 한다.

 

 

 

 

 

 

 

이 작품은 스토리가 최대한도로 압축되어 잇다. 이토록 압축되어 있는 스토리를 빈틈없이 떠받쳐 주고 있는 것이 견고하게 구성되어 있는 플롯이다. 압축된 스토리와 견고한 플롯을 기반으로하여 오태석은 개별적 인물에 대한 성격창조에 역점을 두지 않고, 이들 개별적 인물의 총체인 인간의 소리- 이 소리의 시적 전달에 교묘한 기술을 구사하고 있다. 그 인간의 소리의 전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지극히 탁월하게 안출되고 있는 토속적 언어의 활용이다. 이 언어의 활용에 의하여 이 극은 한의 정서를 성공적으로 표출하고 있고, 이 때문에 존재감각의 불안과 공포가 밀도깊은 감동으로 고양되고 있다. 인간의 소리- 그것은 공비토벌로 해서 사변 내내 하루도 총소리가 그치지 아니했던 지리산의 드라마이다. 그 드라마의 초점은 배티마을 구씨집안의 비극적 얘기가 된다. 구씨의 손 상수가 극 초반에 제시되어, 상수의 아버지를 패죽인 근배, 이 때문에 애를 위해 살아남아 달라는 구씨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자살한 상수 엄마, 양신부를 타살한 장씨 등의 피맺힌 한이 인간의 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 한은 두려움과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어찌할 수 없는 이들이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타율적으로 강요된 살상행위였기 때문에 비극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이들 인간의 소리는 한마디로 곡성으로 메아리친다. 근배는 외친다. '말할 거 없네야. 나여, 바로 나, 정근배가 선동을 한 것이여, 내 외삼춘 처죽이라고 선동을 한 장본인이라우. 엄니, 나라우, 내가 삼춘을 죽였어라우, 죽이자고 소리쳤어라우.'(오열한다.) 근배는 다시 땅을 치면서 꺼이 꺼이 소리내어 운다. 그리고 말한다. '삼춘, 삼춘, 어디가셨소, 나 근배라우, 팽이 깍아 준다면서 손마디 자르더니 삼춘 어디 갔소. 삼춘 나 근배라우.' 근배의 소리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소리가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 소리는 죽음의 소리요, 후회의 소리이기에 그 소리는 역사에 의한 재생의 소리를 부르고 있다. 그 재생의 상징이 상수의 기사회생이다. 오태석은 이미 그의 작품 에서도 같은 주제를 추구하고 있지만, 어떠한 죽음이 인간을 덮칠지라도 인간에게는 그 죽음과 대결하고, 그 죽음을 파괴하며 솟구치는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그는 믿고 있다. 이 작품에서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안겨준 재생의 마지막 부분은 그 생명력의 확인이며, 이같은 확인때문에 우리는 오태석과 더불어 역사에 의한 궁극적 초월과 승리를 확신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의 치유요, 심판이요, 화해이다. 재생의 그 부분을 보자. 아버지도 죽고, 엄마도 죽고, 상수마저 저승길 어구에서 헤매고 있는 죽어서 함께 자리하는 이 처절한 가족들의 재회앞에서 무녀는 읊조린다. 
무녀: 아가, 어서 나오너라 마당씻이허여, 어쨌거나 애 어멈 신행길 오셨을게 맞어야 하는 법이여, 해야 애가 어멈 온줄로 안다. (무녀의 딸인듯한 11.12세쯤 돼보이는 소녀가 장구를 매고 나온다. 마당으로 내려선 소녀 마치, 이 마당을 휩싸고 있는 어두운 바람을 재우기라도 하듯 지성스레 박(拍)을 몰고 간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서 마치 안방에 누워있는 아기가 그 허약한 몸으로 길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시간 속에서 가까스로 생명을 지탱해내고 있듯이,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온 허약하고 외로운 영혼들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장고와 꽹가리가 솟고 앉으면서 이어진다. 산위에서 화톳불을 지핀듯이 세네군데서 연기가 타오른다. 떠오르는 햇살에 만자이 붉다. 구씨를 비롯하여 모두, 마치 한 무리의
토우가 되기라도 한듯이 미동도 않는다.) 인간의 소리, 그것은 사륵 사륵러구 들깨 쏟아지는 소리는 근배 삼춘이 죽어서 쓰러지는 소리요, 인간이 무너지는 소리이기도 하다. 산의 소리, 그것은 자근 자근 놋쇠 부딪치는 소리요, 지리산을 휩쓰는 바람소리요, 탄피종이 울리는 소리요, 그래서 암울함을 더해주는 소리요, 산등성이를 헤메는 귀신들의 발소리요, 인간의 우매함을 야유하는 신의 소리요, 인간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포근한 자연의 소리요, 이같은 비극이 다시는 지리산 이 마을에 없어야 되겠다는 역사의 경고소리이기도 하다. 그 소리는 지리산만큼 넓고 깊다. 그래서 그 소리는 인간의 소리를 따뜻하게 품고 있다.


오태석은 6.25의 비극적 역사에 소리와 빛을 주었다. 인간의 소리와 산의 소리를 통해 6.25를 연극화하고, 역사화했다. 심화된 리얼리즘에 의한 역사와의 대결은 오태석 극문학의 건강성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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