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영진 '무희'

clint 2016. 5. 9. 12:00

 

 

 

여인극장 제28회 공연, 1975년 10.6~20, 예술극장)


1막
인민배우 이숙은 평양 당 직속기관인 무용연구소의 소장이다. 이숙은 남편의 동생 진형이 중앙당에서 연구소를 방문한다는 말을 전하자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연구소로 보면 엄청난 행운임에도 불구하고 이숙이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제자인 하순을 보러 오기 때문이다. 하순은 어렵게 이숙으로부터 무용을 배워 플라하 민청대회에 참가하여 수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숙은 딸 진옥이 자신의 뒤를 이을 제목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숙은 진옥보다 하순이 잘되는 것이 싫은 것이었다. 이숙은 음악무용국장으로 있는 남편의 동생 진구를 통해 하순이 문화성에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의 제 2인자 우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순이 민청대회에 참가한 것도 또 일등을 하게 된 것도 모두 우일이 그녀를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하순을 시기한 이숙의 방해공작이 통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문화성의 문화상이 예정 대로 연구소를 찾아 온다. 문화상은 연구소에서 하순이 수상한 무용이 즉흥무이고, 검열을 거치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된다. 문화상은 하순이 우일과 관계가 있는 것임을 짐작한다. 또 문화상은 하순의 춤만으로 당에서 귀환 축하공연을
가지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떠난다. 하순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축하공연에 내놓을 춤에 도취 된다. 이 때 그녀에게 춤을 배우겠다는 연실이 나타난다. 하순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기꺼이 연실을 제자로 받아 들인다. 하순은 공연춤 '수신(水神)과 처녀'를 생각해 낸다.
2막
하순의 안무를 돕는 진형은 하순을 사랑한다. 그래서 하순이 우일 동지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걱정한다. 우일은 하순의 춤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순의 젊은 육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진형은 하순에게 말한다. 하순은 우일이 좋은 사람이라며 진형의 말을 부인한다. 진형은 우일이 자신의 형수인 이숙과 관계가 있으며, 우일이 이숙을 대신할 젊은 여자가 필요해서 하순에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하순에게 말한다. 하지만 하순은 배우로서의 최고의 꿈인 공훈배우가 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음을 진형에게 말한다. 이숙은 하순의 공연이 자신의 딸 진옥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하순에게 진옥을 수신역으로 써 달라고 부탁한다. 하순은 안된다고 거절하다 끝내 수락한다. 한편 하순과 공연 연습을 함께 하던 연실은 누군가에게 쫑기며 불안해 한다.
3막
몇 달 후 공연은 성공적으로 많은 박수 갈채를 받으며 끝이 난다. 이숙은 하순의 공연을 이해할 수 없는 졸작이라고 비난한다. 이숙은 박수를 받는 하순을 보고 자신이 받쳐 왔던 당에 대한 충성을 후회하고 당을 불신한다.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있고, 마지막 무대 인사가 끝나려는 순간 날카로운 호각소리와 어지러운 군화 소리가 들려 온다. 하순과 연실이 연행된다. 급히 들어온 진구는 가족들에게 당의 2인자인 우일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과 우일에 의해서 반동분자로 몰렸던 박달훈의 딸이 바로 연실이었다고 말한다. 우일을 시기하던 자들은 연실과 우일이 내통했다는 것을 빌미로 우일을 자살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우일이 동지인 박달훈을 자신의 권력을 위해 버렸던 것처럼 우일 자신도 그렇게 버림을 당한 것이다. 진구는 위험을 대비해서 가족들에게 빨리 피하라고 말하나 이숙과 진옥은 움직이지 않는다. 위험이 닥쳐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당에서 차까지 보내는 호의를 보인다.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다. 진옥은 다시 막이 오르면 어머니
이숙을 위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막이 내린다.

 

 

 

오영진 (1916~1974)
1916년 평남 평양출생. 호는 우천. 1938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경 발성영화제작소에서 영화연구관련 일을 했으며, 1942년 귀국하여 숭인상업학교에 재직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에 평양에서 조만식, 부친 오윤선 등과 함께 조선민주당을 창당하여 활동했으며, 1952년 문총 중앙심의위원회 부위원장, 중앙문화사 사장과 월간 문학예술 주간을 역임하였다. 한국영화문화협회 이사, 예술원 4분과 위원장, ITI 한국본부 부위원장의 활동도 하였다. 1959년 제1차 국제연극대회에 유치진, 박석인과 함께 한국대표로 참석을 했으며 1964년부터 1967년까지 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42년 국민문학에 시나리오<배뱅이굿>과<맹진사댁 경사>를 발표하여 연극계에 데뷔하였으며, 1959년 문교부시나리오상과 제3회 부일시나리오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오영진 희곡집>과 수기<하나의 증언>이 있다.
* 대표작품
<향연><살아있는 이중생 각하><해녀 뭍에 오르다><허생전><무희><맹진사댁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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