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집을 나와 아는 마리 언니네 집을 온 발랑틴느는 마리의 아들 세르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사실은 발랑틴느가 집을 나온 이유가 남편 장루의 바람기때문이 아닌, 발랑틴느에게 문제가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세르주는 그녀의 위선에 실망하고 비난하고, 그러면서 도 이모 격인 발랑틴느와의 사랑을 그리워 하는데.. 결국 발랑틴느는 장루와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젊은 조카와의 사랑은 끝난다. 마리도 재판에서 이기고 또 이일을 주선한 공증인과 결혼하기로 한다 제목이 더럽혀진 옷이라는것이 좀 그렇다. " 발렌틴느의 연보라빛 옷" 이 더욱 좋지 않은가?
본명은 프랑수와즈 콰레(Françoise Quoirez).
1935. 6. 21 프랑스 카자르크~2004. 9. 24 옹플레르.
프랑스의 소설가·극작가.
19살에 발표한 첫번째 소설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1954)은 아버지의 재혼을 막으려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기간중에는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개인교습을 받다가 소르본 대학에 입학했지만 1953년 중퇴했다. 대학 재학중에 쓴 소설 [슬픔이여 안녕]은 3주만에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 1958년 오토 플레밍거(Otto Preminger) 감독, 데보라 카(Deborah Kerr) 주연으로 영화화 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58년 출판업자 가이 슈웰러(Guy Schoeller)와 결혼했지만 이혼한 후 27세에 미국인 모델 봅 웨스토프(Bob Westhof)와 재혼했지만 아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962년 다시 이혼했다.
사강 소설의 젊은 여주인공들은 연상의 상대에, 중년의 여주인공은 연하의 젊은 연인들의 관계를 묘사했으며,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헝크러지고 도덕과는 상관없는 관계를 맺는 모습을 많이 다루었다. 1999년에는 코카인 복용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이에 대해 "나는 내 몸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2002년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연루된 탈세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주요작품으로 소설
[어떤 미소 Un Certain Sourire](1956),
소설 [달이 가고 해가 가면 Dans un mois, dans un an](1957),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1959),
희곡 [스웨덴의 성 Un Chateau en Suede](1960),
소설 [신기한 구름 Les Merveilleux Nuages],
소설 [때때로 바이올린을... Les Violons parfois...](1961),
희곡 [발랑띤느의 접시꽃 빛깔의 옷 La robe mauve de Valentine](1963),
소설 [열애 La chamade](1965),
소설 [찬물 속의 한줌 햇살 Un peu de soleil dans l'eau froide](1969),
소설 [영혼의 상처 Des bleus a l'ame](1972),
[Un Profil perdu](1974),
[De Guerre lasse](1985),
[Un Sang d'aquarelle](1987),
[Un Chagrin de passage](1994)가 있다.
1984년 자서전 [Avec mon meilleur souvenir]을 발표했다.
사강은 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의 부유한 실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소르본대를 중퇴했다. 19세 때인 1954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며 그해 이 작품으로 프랑스 문학비평가상을 받았다. [슬픔이여 안녕]은 어머니를 여읜 17세 소녀가 젊고 매력적인 아버지의 재혼에 반대하며 겪는 미묘한 감정을 간결한 문체로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22개 언어로 번역돼 200만권이 넘게 팔렸다.
사강은 이후 소설 [어떤 미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뜨거운 연애] 등을 썼고, [스웨덴의 성], [바이올린을 때때로], [발란틴의 연보랏빛 옷] 등의 희곡을 발표했다. 국내에도 소설 [슬픔이여 안녕], [지나가는 슬픔], 테마 에세이집 [환희와 고뇌의 순간] 등이 번역돼 많은 팬들을 확보했다. 사강은 자유분방한 생활과 스피드와 담배를 즐겼다. 1995년 2월에는 코카인 복용 혐의로 체포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강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으며, 이 말은 지금도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명언으로 여겨지고 있다.
2002년에는 자신의 열렬한 독자인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에게 사업가를 소개해 준 뒤 받은 61만 유로를 포함해 모두 83만 유로(약 9억5000만원)에 대한 소득세를 탈세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천재 작가에서 탈세범으로 전락한 사강은 탈세 재판이 시작된 후 전 재산을 압류당하고 빈털터리로 노년을 보냈다. 유족으로는 재혼한 남편과 그 사이에 낳은 아들 1명이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사강 별세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고인은 여성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프랑스는 가장 훌륭하고 감수성 강한 작가 중 한 사람을 잃었다”고 조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