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르트르의 첫 장편소설이자 실존주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벽'은, 사형을 당하기 전 인간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또한 사르트르는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벽들을 선보인다. 불안정한 시대 상황, 사회의 부조리, 인간의 공포심 등이 세상과 인간의, 인간과 인간의, 그리고 인간 내면의 벽으로 형상화되었다. 죽음에 몰린 이비에타는 의욕을 잃고 장교들의 협박에조차 굴하지 않는다. 그들과의 신경전에서도 끝내 살아남는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장교들이 그에게 준 15분 동안, 주인공 파블로 이비에타는 많은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가족들, 같이 있다가 먼저 죽게 된 톰과 주앙 그러나 그는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진지한 생각들은 접어두고, 어떻게 장교들을 놀려줄까 고심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결과로, 라몽 그리의 행방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말'로 둘러댐으로써 마음속으로 묘한 쾌감이나 승리감을 느낀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에는 극적 반전이 일어난다. 그의 말이 진실이 되어 그리가 총살당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비에타는 극적으로 다시 살게 되고, 잘 숨어 지내던 그리는 갑작스럽게 죽임을 당하다니. 이비에타는 이미 그리에 대한 우정이 사라졌으나, 그렇다고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장난으로 시작한 말이 의도와는 다르게 그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정말 '운명의 장난'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이비에타는 이 상황에서 '승리자' 또는 '생존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후로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비에타는 정말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또한 희생양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작품의 마지막에 살아남았고, 거짓말을 통해 스스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의도가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그는 장교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한 셈이고, 동료 그리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었다. 전쟁 상황에서 진정한 승리자란 있을 수 없다. 개인이나, 혹은 국가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피해는 입게 된다. 그렇다면 의도치 않게 자신과 동료의 목숨을 맞바꿔 살아남은 이비에타는 과연 행복하게 살았을까. 난 그 또한 곧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삶의 의욕을 잃었고, 더 이상 사용 가치가 없어진 그를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당시의 우울한 시대상황과 공포의 극한에 다다른 인간의 심리묘사,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여운과 충격을 준다. '독서는 이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이다'라는 말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실존주의 철학의 대명사이자 참여 문학의 기수인 사르트르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20세기 지성사를 풍미해왔다.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라는 들뢰즈의 말이나, 오늘날 철학의 모든 핵심 주제가 사르트르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지적이나, 현대 문학의 주요 화두가 타자·몸·자서전·페미니즘·탈식민주의라고 한다면 그 근저에 사르트르가 자리한다. 이 사실은 시대를 앞선 ‘견자(見者)’로서의 사르트르를 확인하게 해준다.
흔히 사르트르의 대표작으로는 『구토』와 『말』 그리고 『존재와 무』가 꼽힌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말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철학가가 아닌 문학가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특히 『구토』의 작가로 남기를 바란다는 발언은 종전에 그가 『말』에서 『구토』를 부정한 것과는 달리 상상력과 실존에 의거한 허구 작품이 자신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그의 말대로 『구토』가 대표작이라면, 『구토』와 동일한 주제인 실존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신문의 3면 기사나 분위기, 상황에 대한 소설적인 형상화 작업에 보다 치중한 『벽』의 위상 또한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앙드레 지드의 놀라움과 많은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벽』은 출간되자마자 1940년 민중소설상을 수상했고, 포켓북 시리즈에서 판매 부수가 많은 책 중의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도 여러 차례 각색 방영되는 등 사르트르의 대중적 명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소설집 『벽』은 이미 『NRF』지와 『므쥐르』지에 발표한 「벽」(1937), 「방」(1938), 「내밀」(1938)에 두 편의 미발표작 「에로스트라트」와 「어느 지도자의 유년 시절」을 추가하여 1939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단편집은 출간 당시부터 항상 동일한 순서로 동일한 작품만을 수록하고 있어 단편들 간에 어떤 긴밀한 주제적 유사성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1939년에 출간된 『벽』의 서문에서 사르트르는 이 작품의 주제가 실존을 도피하려는 일련의 시도들로서 결국에는 벽에 부딪혀 허사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도 실존을 정면에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여기 이런 실존 앞에서의 다섯 개의 비극적인 혹은 희극적인 패배, 다섯 개의 삶이 있다. 곧 총살을 당할 파블로는 실존의 저편으로 자신의 생각을 내던지고 죽음을 생각하지만 실패한다. 에브는 광기의 비현실적이고 닫힌 세계 속에서 피에르와 결합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것은 가식의 세계이며 광인은 거짓말쟁이다. 에로스트라트는 인간 조건에 대한 눈부신 거부인 범죄로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범죄는 이미 이루어졌고 존재하지만 에로스트라트는 그 사실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안으로부터 피가 흘러나오는 거대한 오물 상자이다. 륄뤼는 자신을 속인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시선 사이에 가벼운 안개를 스며들게 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안개는 즉시 투명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 그저 속인다고 믿을 뿐이다. 뤼시앵 플뢰리에는 자신이 존재한다고 느낄 찰나에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원치 않으며 도피한다. 그는 자신의 권리에 대한 명상 속으로 피신한다. 왜냐하면 권리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실패한다. 이 모든 도피는 벽에 막힌다. 실존으로부터 도피하는 것, 그것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실존이란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충만이다._사르트르의 ‘서문’(1939년 판 『벽』)

『벽』은 자아 속에 공존하는 수많은 이질적인 목소리들을 무대에 올려놓고 그 행태를 상이한 시간과 상황 속에서 관찰하고 또 그 효과를 묘사하면서 스스로를 갱신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사르트르 자전적 글쓰기의 뛰어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에 대한(「벽」과 「에로스트라트」), 가족에 대한(「방」과 「어느 지도자의 유년 시절」), 성에 대한(「방」과 「내밀」) 젊은 시절의 방황과 고뇌는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사변적인 철학가로 알려진 사르트르에게 일상적인 삶의 소설가, 욕망의 소설가, 또는 자서전 작가로서의 새로운 빛을 부여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르트의 말대로 작품의 생명력을 결정짓는 것은 어떤 현란한 사상이나 철학이 아닌, 이런 개별적인 육체에서 우러나온 세부적인 것, 이데올로기에 가장 덜 오염된 삶의 일상적인 양상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벽』은 『구토』와 더불어 사르트르를 철학가가 아닌 문학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치열한 자기 삶의 글쓰기로 오래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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