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남녀의 잔혹한 기억의 이중주
어느 한가로운 여름 날 저녁, 레베카는 데블린에게 자신의 정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데블린에게 불륜을 고백하는 레베카는 너무 태연하고
당당하다. 데블린은 레베카의 정부에게 질투를 넘어선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그 속에서 뜻밖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애쉬즈 투 애쉬즈'에서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건 아주 느리다. 먹을 머금은 붓이 화선지 닿아 번지듯이 아주 천천히… 그렇게 침묵과 사이의 시간들이 두려울 정도로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린 동안에, 둘 사이에서 수많은 대화와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눈치 챈다. 동시에 심장은 천천히 하지만 점점 빠르게 뛴다. 레베카가 가진 기억의 조각을 찾아내기 위해 생각들이 바빠져 숨이 차다.
하지만 그마저도 역시 이 작품의 일부일 뿐이다. 수많은 'clue'가 분명히 산재되어 있다. 그것들은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고 싶다한다면 연출도 배우도 아닌 관객의 역할로 남겨지는 그야말로 Pinteresque한 작품이다. 공연이 시작되고 레베카, 데블린 혹은 데블린, 레베카 둘 사이의 불륜에 관한 얘기로 생각하고 있을 때가 순진(?)했을 때다. '재는 재로'는 가장 최근(1996)에 쓰여 진 작품이다.

극장에 들어서자 견고하게 구축된 박동우의 무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공연 내내 고정된 무대는 두 주인공 데블린과 레베카의 거실로 설 정되어 있는데, 무대를 가로지르듯이 직선을 그리고 있는 목재의 재 질이 공간을 압도하는 듯한 경직되고 밀폐된 분위기를 불어 넣는다. 무대 왼쪽에는 바가 들어서 있고, 중앙에는 레베카가 앉는 의자 그리고 스탠드가방을 밝히고 있다. 무대 뒤쪽의 안을 들여다보듯이 커다랗게 직사각형으로 나 있는 창문은 공연이 전개될수록 취조실을 연상시키면서 공간의 폐쇄성을 한층 강화시킨다. 일순간 공간이 어둠에 잠기더니 아득하게 들리는 기차소리와 사람들의 아우성을 뚫고 선명한 피아노 선율이 부대의 어둠을 깨뜨리며 공연은 시작된다. 피아노의 선율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연 시작과 말미에서 레베카의 심경을 드라마틱하게 환유하며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공간과 음악을 통해 이 공연이 매우 도회적이고 지적일 것이라는 인상을 품게 된 것은 바로 무대와 음악이 관객의 정서에 전하는 시청각적 이미지 때문이다.
모호한 암시와 생략으로 유명한 핀터의 서사는 연출가와 배우의 해석의 폭과 깊이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연출과 배우에게 하나의 도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모호함과 생이 반복되는 서사의 파편을 모아 성격을 구축하고 맥락을 포착하기 위해 연출과 배우에게는 표현 능력보다는 작품의 해석 능력이 선결 선행되어야 한다. 뛰어난 연기력으로 그간 명성을 쌓아 온 한명구와 김호정이 분한 데블린과 레베카 역이 서사의 폭과 깊이를 온전하게 살리지 못한다는 느낌은 리얼리즘 연극이나 연출가 중심의 양식적 연기에 취해있는 한국연극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 풍토에서 비롯되 는 듯하다. 안정감 있는 호연에도 불구하고 한명구의 데블린 역은 인물의 복합적인 면모를 단순화시킨 혐의가 짙다. 데블린은 아내의 과거 연인에 대해 질투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내적인 갈등을 겪으며 아내에게 화해를 제의하나. 아내가 거절하자 이에 분개하며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아내를 다그치는 데블린의 말과 행동에는 단순한 질투심과 폭력성보다는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포장하고 있는 이성주의적 권위와 제도가 감추고 있는 합리주의의 배타성이 엿보여야 한다. 아내의 불륜을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데블린의 태도가 공연이 전개되면서 레베카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는 나치 전체주의의 폭력성과 중첩되게 되는 근거이다. 이성에 내장되어 있는 폭력성이 더욱 잔인하게 여겨지는 일상 속에 일반화되어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레베카를 취조하듯이 몰아붙이는 데블린의 행위가 과거로부터 지속되어 온 폭력의 역사에 포함되고, 새디스트이며 나치 비밀경찰이던 레베카의 과거 연인의 행위와 닮아가면서 작품이 지닌 정치적 의도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를 제기하기 위해 배우의 눈빛과 호흡에는 감지될 만큼 충분한 긴장과 에너지가 감돌아야 할 것 같다. 공연 내내 무대 한가운데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레베카역 김호정이었다. 바이올렛 색의 하늘하늘한 드레스와 빨간구두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기억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고 곧 깨져버릴 것 같은 레베카의 성격을 약호화한다. 그러나 공연 초반 김 호정의 모습은 어여쁜 배우의 모습을 드러내며 극중 성격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남편의 추궁 속에 새디즘과 매조키즘으로 얼룩진 과거의 연인과의 관계를 레베카가 천진무구한 미소를 띄우며 남편에게 말할 것 같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관객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배우의 표정만 좇고 만다. 김호정의 집중력 있는 연기가 살아나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 침입하면서부터이다. 목소리가 흔들리며 의식이 아득해지듯 싶더니 혼돈에 사로잡힌 그녀의 얼굴은 긴장되기 시작한다. 아기를 보퉁이처럼 숨겨 감시를 피하려다 실패했던 순간의 기억이 비약하며 레베카는 아기의 안부를 묻는 이웃의 질문에 의식이 혼미해지는 순간에 이른다. 데블린과 레베카의 갈등은 파국에 이를 즈음 더 이상 두 남녀의 개인적 갈등으로 단순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두 인물의 대화에서 얼치듯이 파편적으로 끼어드는 '펜'과 '하느님'에 대한 뜬금없는 이야기들이 축적되어 관객의 의식을 불편하게 도발하면서 어느 듯 나치 체제의 폭력성이나, 레베카와 데블린 사이의 가정 폭력과 동일시되어 우리의 삶으로 스며드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폭과 깊이를 훑어내기에, 연출이며 배우였던 작가가 서사 속에 감춰놓은 그 무진장의 가능성은 여전히 미개발 상태로 남아있는 듯하다. (최영주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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