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성임 '관습적 가정'

clint 2015. 11. 13. 17:26

 

 

 

 

 

이 작품은 형식상 희극이며, 내용상 페미니즘 비극이다. 몇 가지 소극적 특성을 비롯한 비논리적 표현법에서 희극이며, 기존의 가부장적 권위와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페미니즘 극이다.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선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가정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할머니, 어머니, 딸과 며느리, 즉 여성에 대한 억압인 것이다. 우리가 중년쯤 되고 보면 어머니에 대해서 유난히 애틋해지는 건 그 억압된 삶이 불쌍해서가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론 나 또한 여성으로서 그 삶을 불쌍해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극복해야 할 대상이므로 어머니와 그 삶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정 내의 여성 억압은 가족 전체의 행복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윤색, 포장됨으로써 각 가정 안에서 은폐, 묵인, 무시되고 있다. 간혹 불편한 기억이 떠오를 때면 엄마와 누이의 희생을 사랑에 못이긴 자발적 행위였다고 자위하며, 곧바로 그것을 숭고한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세례를 베푼다. 주로 그녀들의 장례식장에서 술주정으로 말이다. 이때 그녀들에겐 단지 거절할 권리가 없었거나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일 뿐이라는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여성 사이에도 그 처한 입장-가족 안에서의 위치-에 따라 또 다른 억압과 피억압의 구조를 형성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억압 상황이 마지막 장에서 어머니에게서 과년한 딸에게로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함으로써 개인을 떠나 여성 억압의 구조적 근원을 밝히고 있으며 동시에 여성의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한편 남성들의 권위의식에 대해선 굳이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특별히 한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젊은 아들(작품 속 ‘남편’)이 그 사람인데, 합리적인 학교 교육의 혜택을 입은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 그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사고와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점점 그 아버지들을 닮아 간다. 그래서 22살의 그와 30살의 그는 엄연히 다를 뿐만 아니라 그 30살이 아들은 유독 가정과 가족 구성원의 개념과 역할에 대해선 60살의 아버지와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그는 학교 교육이 끝나면서 즉시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재사회화되는데, 그러한 관습과 통념에 의한 재사회화는 30살의 아들을 그 아내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만다.
우리가 잘 아는 가족이란 말은 언제나 리본처럼 예쁜 ‘사랑’으로 포장되어 우리에게 꿈과 환상을 주지만, 그 이면엔 이처럼 복잡하고 고집스런 억압의 골격이 버티고 있으며, 따라서 여성에게 가정과 가족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뻔뻔스런 폭력 집단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그러한 골격을 배경으로 건축되었으며 한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여성’ 혹은 ‘남성’이란 구별로 폄하하거나 과장하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비이성적인가를 희극의 형식으로 비판한 것이다. 즉, 관습과 통념, 심지어 전통의 이름으로 세습되어 행해지는 모든 여성 억압의 근원에 대한 고발이며, 다소 극단적인, 그러나 결코 낯설지 않은 가정의 모습은 결혼과 관련한 현재의 문제들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함께 함축하고 있다.


장성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과 졸업, 인하대학교 사학과 졸업
2001 한맥문학 신인상
「감시자」,「황사」,「관습적 가정」등 발표
2002년 「사모곡」공연
2005년 「바다의 노래」공연(문예진흥기금 수혜작)
2005년 「한국역사극연구-1910년부터 1989년까지」석사논문
2005년 「1930년대 역사극의 경향과 특성」,『불교예술』제6호
2006년 강원대학교에서 극작법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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