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창근 '13월의 길목'

clint 2015. 11. 13. 17:33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12월의 어느 저녁,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카페 ‘13월의 길목’은 소박한 파티 준비로 북적인다. 조명이 켜지면 관객은 이 카페의 한구석에 앉은 손님이 된다. 무대를 꿈꾸는 연극배우인 카페 주인 선재, 동사무소 직원이자 작가 지망생인 가실, 인도 여행을 갈망하는 백수 난주가 지키고 있는 카페에 스페인 문학 번역가 인화와 대학생 수현, 사진작가 영수와 주부 정희, 지방 방송국 기자 동호가 하나둘씩 들어선다.
연극 ‘13월의 길목’에는 주인공, 사건, 클라이맥스가 없다. 현실에 발붙이지 못한 사람들과 그들이 나누는 일상대화가 있을 뿐이다. 평온해 보이는 껍질은 평범한 질문을 받고 조금씩 부스러진다. 숨겨둔 상처와 이루지 못한 꿈이 서서히 드러난다. 동거 중인 영수와 정희는 “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라는 물음에 순간 멈칫한다. 서로를 사랑하리라는 허술한 믿음은 그들이 선보이는 어설픈 탱고 같다. 늘 밖으로 도는 영수를 기다리는 정희는 변화 없는 생활에 지쳐만 간다. PD가 되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동호는 길바닥에 짓이겨진 동물의 사체에서 자신을 본다. 선재는 옛 연인 동호를 피하고 싶고, 난주는 동호를 슬픈 눈으로 본다. 인화를 바라보는 수현의 시선이 가실은 불편하다. 이런흐름은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는 결말로 반전이 이루워진다.. 마치 영화 디 아더스를 보는것 같은...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이들은 마찰 없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어느 관계도 확실하지 않다. 엇갈린 시선, 지나간 사랑과 바라보기만 하는 사랑, 입에서만 맴도는 희망…. 메마른 겨울 같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작가 노트
내년이면 극작가로 데뷔한 지 꼭 십년이 된다. 그런데 그동안 쓴 작품을 헤아려보니 첫 희곡く봄날은 간다〉를 시작으로 く서산에 해 지면은 달 떠온단다〉.<13월의 길목〉 그리고 아직 무대 위에 올리지 못한 く입맞춤〉과 세 명의 작가가 공동집필한 く엄마, 여행 갈래요>를 모두 합쳐도 다섯 편이다. 천성 적인 게으름 탓이겠지만 과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3월의 길목>은 사연이 많은 작품이다. 처음 이 희곡을 구상하게 된 것은 2003년 연말 아는 배우 형의 주선으로 대학로에 있는 어느 소극장에서 열렸던 파티 자리에 참석하면서였다. 거기서 만난사람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모델이 되었다. 2005년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평소에 안면이 있던 배우들과의 작업과정을 거쳤지만 희곡은 끝끝내 미완으로 남겨졌다. 그로부터 4의 시간이 흘러서야 부족하나마 겨우 작품을 마무리 짓게 됐다. 온전한 한 편의 희곡으로 거듭나기까지 6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어찌 보면 그 기간은 뼈아픈 인내의 나날들이었을 것이다. 이번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면서 연출가와도 '현대인의 마음'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한 관계, 상처받기를 겁내고 마찰을 두려워하면서도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기를 간절하게 갈망하는 이중적인 심리가 자본주의 문명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에 스며있다. 각자가 외롭고 쓸쓸한 섬처럼 고립돼 있기에 그들은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더욱 더 열렬히 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희곡의 전체 무대인 '카페'는 길 잃은 춥고 쓸쓸한 영혼들의 아늑하고 작은 집이다. '집'이라는 공간은 그곳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온갖 목소리들과 냄새로 버무려진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보금자리이다. 인간의 생애는 그 집에서 태어나 자라고 꿈을 꾸고 사랑을 하며 어디론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결국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면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누군가 머물렀다 간 자취나 흔적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집이 존재하는 한 거기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이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숨을 쉬고 있는 한 채의 집을 생각했다. 몇 편 쓰지도 않았는데 희곡 쓰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게다가 일반적인 희곡과는 조금 다른, 뚜렷한 사건이나 갈등도 없고 구성까지 단순하고 성긴 작품이 무대 위에 제대로 형상화될 수 있을지는 늘 의문이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희곡이 그렇게 쓰여 지는 건 꽉 짜인 틀을 싫어하고 화려하고 요란한 치장이 어색하기만한 내 체질하고도 연관이 있을 터이다.
그래서 일까.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체홉을 좋아했다. 체홉의 글을 좋아했다기보다는 그 글에 스며있는 소박한 인간됨에 맘이 끌렸을 것이다. 일본의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했던 것도. 고집스럽게 '작가, 의 길을 걷고 있는 동시대의 동갑내기 예술가 가와세 나오미와 마츠모토 유코의 작업에 관심이 가는 것도 마찬가지 연유에서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그들과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끈으로 묶여있는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인생은 시대와 국적, 나이와 성을 초월하여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만나가는 여정이란 말도 있듯이 언젠가는 그들과 한배를 타고 인간의 몸을 빌려 이 막막한 우주에 홀로 버려진 두 발 달린 짐승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눌 때가 올 것이다.
그렇게 어느 한순간 시나브로 다가오는 사람과 풍경이 있다. 풍경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생의 일부가 된다. 생의 일부 혹은 생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우연한 스침. 어쩌면 연극이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삶은 그러한 풍경의 개화가 아닐까. 어줍지 않은 생각이지만 난 이를 '풍경의 연극' 으로 명명해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활짝, 활짝 꽃망울을 터트리는 관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에 풍경 아닌 삼라만상은 존재하지 않을 터.
희곡<13워의 길목〉 역시 그러한 의미에서 세상의 구석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풍경 한 점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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