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허진원 '덫'

clint 2015. 11. 13. 17:29

 

 

 

 

2012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유명한 디지털카메라 판매점, 판매직원의 퇴근시간이 다 된 시간 한 고객이 제품을 들고 들이닥친다. 어제 구입한 제품의 포장지와 제품의 색이 다르다며 교환을 요청하는 고객, 하루에 9시간을 서서 일하는 여자 판매원의 얼굴에는 짜증과 피곤함으로 역력하다. 교환 가능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지점장까지 합세하여 긴 사투를 벌인 끝에 고객은 새 제품으로 교환받는 것을 성공한다. 그러나 자신은 판매원의 실수로 제품을 잘못 전달 받았을 뿐인데 고객의 입장에서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하는건지 의구심이 들면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심사평

올해 공모한 작품들은 작년과 수준이 비슷하였으며, 스토리텔링 위주의 작품이 많았다.
'희곡의 글쓰기'에 대해서 작가 지망생들은 진지하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사유해야 할 것이다. 희곡은 삶의 현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인간 내면에 대한 집요한 해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삶의 본질에 대한 사유나 거기서 파생되는 개별성과 보편성이 결여되고 스토리텔링이 위주인 희곡은 내용과 형식이 상투적이고 도식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이 최근 세계적인 흐름을 급급하게 따라가는 모양새여서 읽는 즐거움도, 작가에 대한 흥미로움도 가지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오른 후보작은 한정수의 '카페 카스트로폴리스', 박수진의 '강변터미널- 바람의 노래에 춤추는 나무', 김재동의 '밀어서 잠금해제', 허진원의 '덫'이었다. 한정수의 '카페 카스트로폴리스'는 인터넷 카페 회원을 둘러싼 권력 다툼을 그린 작품으로 권력의 양상과 그것을 쟁취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그려냈으나 그 구조와 인물들이 상투적으로 그려졌다. 박수진의 '강변터미널'은 노숙자를 중심으로 하나의 패턴이 변주를 일으키는 내러티브 구조를 직조했으나 인물들의 세계가 공감을 구하지 못하고 소녀적인 감상적 묘사에 머물렀고, 김재동의 '밀어서 잠금해제'는 소재의 참신함이 보였으나 얘기를 끌고 가는 것이 억지스러웠다.
허진원의 '덫'은 희곡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수작이었다. 특히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집요한 추적이 장점이었다. 마지막 결말 부분이 미진하지만 연출가에게는 흥미롭게 해석 구현할 수 있는 상상의 장이 될 듯하다. 허진원씨의 수상을 축하하며 공모에서 떨어진 작가 지망생들의 분발을 기원한다.
● 심사위원 이윤택(극작가ㆍ연출가) 박정희(연출가ㆍ 극단 풍경 대표)

 

 

 

 

당선소감 - 허진원

세상 모든 게 불만투성이었던 그 녀석에게 악수 청하고파"
아무래도 이거 같습니다. 희곡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 이유 말입니다. 극장에서 관람한 것도 아닙니다. 출간되기 일년 여 전 일이었으니 당시 전 책으로도 접할 수 없었던 작품입니다. 대학시절 시청각 자료실에 이 작품이 있길래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그 뒤 자료실에서 살았습니다. 작품에 쏙 빠졌습니다. 강의까지 땡땡이치고 자료실에서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가며 필사를 하곤 했습니다. 진짜 끝내 줬습니다. 수십 번 보면서도 낄낄거리다가 결국 남몰래 숨죽여 눈물을 훔치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때 그 자리 그 어두운 시청각 자료실에서 세상 모든 게 불만투성이었던 냉소적인 그 때의 나, 그 녀석에게 다가가 이제 그만 악수를 청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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