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차근호 '루시드 드림'

clint 2015. 11. 13. 17:40

 

 

 

 

 

루시드 드림(Lucid Dream) : 자각몽(自覺夢). 꿈을 꾸면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현상.
상류층의 이혼, 간통, 음주운전, 재벌 2세들의 성폭행 같은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 최현석. 그에게 일주일 전 사망한 선배 김선규의 미망인이 책 한 권을 들고 찾아온다. 지금은 기억도 떠올리기 힘든 대학 선배 인 김선규에게 선물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 이 책은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 그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최현석은 그 책에서 마치 김선규가 남긴 것 같은 암호를 발견한다. ‘죄와 벌’의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름이 책의 종반으로 가면서 모두 이동원이라는 인물로 바뀌어져 있었던 것. 이동원은 선배인 김선규가 변호를 맡았던 인물로 모두 열 세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무엇인가 삶의 자극이 필요했던 최현석은 그에게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느낀다. 재판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최현석은 이동원의 변호를 자처하며 첫 만남을 갖게 되는데…잘 나가는 변호사 최현석. 무엇인가 삶의 자극이 필요했던 최현석은 열세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이동원에게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느끼고, 그의 변호를 자처한다. 그 과정에서 이동원은 최 변호사의 아픈 기억과 상처를 들춰낸다. 이동원은 살인의 동기를 묻는 최 변호사에게 "나는 내 운명에 살인이 허락되는지 알고 싶었다"는 이상한 말을 한다. 살인범 이동원과의 면담이 계속되면서 최 변호사는 이동원의 유도에 따라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폭력성과 파괴본능을 드러낸다. 그는 흡사 자각몽을 꾸는 듯 하다. 꿈과 현실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과거 상처와 비밀을 알고 있고, 상상 속에서만 죽이고 싶어했던 술집 마담을 실제로 살해하고 만다. 최 변호사 속에 연쇄살인범 이동원이 들어앉아 있었던 것이다.

 

 

 

"꿈인가, 현실인가...?" 관객 입장에서는 충분히 헷갈릴 수 있다. 연극의 각 장면이 최 변호사가 꾸는 꿈인지, 그가 겪는 현실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김광보 연출의 말 처럼 "퍼즐 같은 연극"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극이 진행되면서 헷갈림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그리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마음 저 깊은 곳에 선(善)과 악마적인 본성과 파괴본능 같은 것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 헷갈림이란 관객들의 극 집중력을 높이고 메시지의 전달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꿈인가, 현실인가 혼란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면 작품 전체를 이해하기 힘들다"라는 것이 김광보 연출의 관극 팁입니다.

 

 

 

극의 전편에는 중요한 동기 하나가 주어진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갈등 끝에 창녀 소냐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는 얘기가 극의 흐름에 스며든다.
무대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담아낼 수 있도록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무대 오른쪽은 최 변호사와 연쇄살인범 이동원이 만나는, 즉 현재 시점에서 사건이 이뤄지는 '접견실'입니다. 가운데는 최 변호사의 머릿속으로 설정된 '생각의 방'이다. 생각과 상상이 여기서 이뤄진다. 왼쪽은 기억과 현실이 혼재하고, 최 변호사가 마음 속의 욕구와 폭력성ㆍ파괴본능을 실천에 옮기는 '침실'이다. 선배 변호사의 미망인을 강간하고, 술집 마담을 죽이는 공간이다.

 

 

 

…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스스로가 악에서부터 안전한 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은 우리의 바램일 뿐이다. 모든 인간들이 자신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악과 폭력성, 파괴본성을 발휘한다면 이 세상은 하루아침에 파멸하고 말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자신의 안에 내재되어있는 악의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 (중략) … 나는 이런 의문을 갖는다. 만약 우리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우리가 나 자신과 이 세상에 갖고 있는 무한한 자신감과 신뢰가 그저 꿈이 만들어내는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면, 우리가 깨닫게 될 나 자신과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루시드 드림’은 바로 우리 자신과 존재에 대한 냉정한 질문이며 탐구인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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