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무대에는 강원도의 첩첩산중과 폐광 관광단지의 카지노가 공존한다. 여기서 꽃들과 얘기를 주고받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라는 동화적 환상, 3000년 묵어 인간으로 환생하는 지네와 지렁이라는 설화적 세계, 그리고 공해에 찌든 한국인들이 외국으로 대거 이민하며 일본인들에게 조직적으로 장기를 판다는 음울한 미래의 현실, 또한 몇년 전 양양에서 작전실패로 서로 총을 쏘아 자살한 11명의 북한 침투조와 얼마 전 일본 어뢰에 피격된 우리 잠수함 등의 시사적 사건들이 시간과 공간,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만화경처럼 전개된다. 작품의 기본구조는 산속과 지하 카지노라는 상반된 무대공간이 보여주듯, 자연과 문명이라는 이분법이다. 여기에 추하고 더럽게 느껴지면서도 가장 오염되지 않은 생태계의 상징이며 가끔은 신비한 도력과 연관되기도 하는 지네와 지렁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주술의 힘으로 인간 세상에 떨어지는데 그곳이 하필이면 아비규환의 장기판매자 대기수용 캠프다. 우리 현실의 단면이기도 한 이 수용소의 참혹하고 괴기한 악몽들은 정의파로 설정된 지네와 지렁이의 비분강개와 종결부의 다소 뜬금없는 오리 떼로의 변신(오리는 공해에 가장 강한 동물이라는 설명이다)에 의해 대충 수습되고 이들은 산속으로 다시 ‘유턴’한다. 그런데 이런 기본구조에 끼어드는 간첩자살조, 잠수함 피격 등의 현실적 사건들과 일본인으로 귀화해 장기판매상이 된 사진사, 그의 앞잡이가 된 무장공비, 난데없는 친일파 인사 최남선의 출현들을 소화해내기란 쉽지 않다.
90년대 초 ‘심청이는 인당수에 왜 두 번 몸을 던졌나’ 이후 오태석에게는 점점 현실비판적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환경문제 외에 생명의 중요성, 이민 문제, 남북 분단의 문제, 과거 친일문제, 대 일본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견해를 노골적으로 피력한다(개중에는 긴 안목에서 일본까지도 포용해야 한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한 사진 작가가 숲 속에서 3,000년만에 여인으로 환생한 지네와 지렁이를 만난다. 관객은 이 지점에서 한 순진한 총각이 이 여인과 하룻밤 정을 통하고 어찌어찌 하여 시련에 부딪치다가 끝내 행복하게 잘 산다는 설화 속의 삼각관계쯤을 기대하지만, 이 기대는 뜬금 없이 등장한 일군의 북한 무장공비들의 황당한 사건으로 산산이 깨져 버린다. 국군에게 쫓긴 공비들은 조장의 지시에 의해 권총으로 자신들의 머리를 쏘아 자살하지만 마지막 남은 통신병은 사진 작가의 제지로 죽음을 면한다. 참으로 '엽기적'인 사건의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공비 1명의 죽음을 제지한 사진 작가는 그와 함께 국군의 추격을 피해 무대를 떠난다. 그리고는 지네와 함께 '꿈'으로 설정된 지하세계의 밀폐된 공간에서 '히라따'와 '종업원'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 지하 공간은 2010년 강원도 폐광촌에 형성된 카지노 시설의 지하 22층 -1,700미터의 대기실이다. 남간도(南間島)라는 이름의 카지노와 호텔의 지하인 이곳은 곧 일제시대의 북간도의 패로디인 셈이다.
이윽고 카지노에서 노름돈을 다 잃어 버린 지렁이가 노름빚을 갚기 위해 지하 대기실로 떨어진다. 이 공간에서 지네와 지렁이만 서로를 알아볼 뿐, 사진 작가와 통신병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히라따'와 '종업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장기(臟器)를 일본인 사장에게 팔아 넘겨야 하는 수술 대기자들의 수용 시설인 이곳은, 즉 자신들의 운명을 일본인에게 맡긴 북간도의 조선인의 현실을 패러디한 1910년의 100년 후인 한국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010년 인구현황표에 의하면 이 날 1,105가구 3,752명이 이민을 떠났다. 황해 바다 전체가 썩었고 강물과 지하수는 모두 중금속으로 오염되어 사람들은 먹을 물이 없어 이민을 떠난다. 등장인물들은 십 년 안으로 대한민국의 인구가 2천만으로 줄어들 것을 걱정하면서 1억 2천만의 일본과 12억의 중국 사이에 끼어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는 등, 통일에 대비하여 공산주의를 알아야 한다는 등, 일본의 우익 세력이 눈 까 뒤집고 날뛰고 있다는 등 우국적인 대사를 마구 내뱉는다. 이 부분에서 관객들은 작가의 문명비판적인 예언적 메시지에 공감하면서 잠시 우울한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육당 최남선의 인형을 등장시키고는 채무자들로 하여금 최남선이 애국자냐 매국노냐 선택하라고 하여 결국 애국자의 팔을 들게 해 주는 부분에 와서는 과연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의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의심에 대한 답변은 곧바로 이어지는 히라따의 발언에 의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자신은 조선인으로 살아남으려고 창씨개명하였고, 자신의 아버지는 징용으로 끌려 와서 나가사끼 제철소에서 일하느라고 독립운동 못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죄수냐, 친일파냐 하고 히라따는 강변한다. 더 나아가 그는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육당, 춘원 모두 애국자로 모시고 미당까지 애국자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순간 육당을 매국노라고 규정했던 채무자들에 의해 히라따는 린치를 당하여 작가의 메시지를 일순 중화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화가 난 히라따에 의해 대기실에 죽음의 독가스가 틀어지자 지네와 지렁이는 대기자들을 살리기 위해 주문을 외워 독성을 제거할 수 있는 오리로 변신하도록 한다. 결국 오리로 변신에 성공한 대기자들은 이번에 먹이로 보이는 지네와 지렁이를 쪼아 먹으려 하고 이를 피해 지네와 지렁이는 사진 작가(히라따)와 통신병(종업원)을 이끌고 지하세계를 빠져나온다. 곧 장면은 U턴하여 살아 남은 통신병과 사진 작가를 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국군들이 철수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2001년 말에 오태석은<지네와 지렁이>를 발표하고 3개월이 넘도록 공연했다. 극단이 붙인 부제는 '실화상 애니메이션. 이른바 오대석의 야생주의의 서곡이다. 극중 시간은 2010년. 1910년 일제 식민지가 된 후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시점이다. 작가는 근대사의 최대 아픔이었던 그 사건으로부터 꼭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한 번쯤 비판적으로 점검해 보자고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오태석이 그려 보였던 식민지 백주년의 미래상은 그로테스크했다. 공해 때문에 마실만한 물이 없어진 이 땅에서 사람들은 수입한 식수를 눈곱만큼씩 배급받아 겨우겨우 연명한다. 정치권이고 일반 시민이고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일본의 급전을 빌려다 쓴 탓에 나라는 다시 거지 반식민지가 되어 있다. 희망이 사라진 땅을 너도나도 떠나려는 이민 행렬이 그치지 않는다. 무대 뒤쪽에는 '오늘까지의 이민 숫자 통계표가 깜빡거리는데. '최근 들어' 1일 최대 출국기록이 매일매일 깨지고 있는 참이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은 지하 1,700m 갱도 내 수용소. 빚 갚을 대책이 없어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장기를 떼어내 팔아보려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그나마 대기 시간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꾀죄죄한 내복 차림으로 대기 중인 사람들 사이로 인조인간 비슷한 인물들이 보인다. 이미 장기 하나 둘 정도를 판 사람들이 보급형 싸구려 인공 장기를 달고 하나 남은 '오리지널' 장기를 마저 팔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오태석은 왜 이렇게 암담한 미래상을 그려 보였을까. 그는 “어느 설문 조사에서 대학생들 70% 이상이 한국을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나라'라 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며 “무엇보다도 우리 젊은이들에게 떳떳한 나라를 남겨줘야겠다는 생각이 작품에 깔려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역설의 미학의 결정판이다. '더없이 암울한 미래'에 대한 예지몽 적 경고를 강력하게 발화하면서도, 초지일관 유머와 폭소를 끊어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연극은 일관된 드라마를 보여주기보다 '마구잡이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에피소드'들로 단락을 짓고 롤러코스터처럼 전진한다. 식당 메뉴 같이 하찮은 내용을 장중한 기도문 억양으로 읽어 웃음을 유발하고, 패러디, 변기머리, 고무줄로 연결된 팔까지 다양한 이미지와 이야기 덩어리들이 무대 위를 정신없이 가로 지른다.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몇몇 등장인물들은 공연의 속도감을 배가시킨다. 배우들 뒤로 배치한, 만화의 한 컷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말풍선은 만화적 상상력의 연극적 구현이다.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관객은 어느 장단에 가락을 맞춰야 할지를 알기 어렵다.
오태석은 “일관성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들을 툭툭 던지면서도 신명가득하게 노는 모양새 그리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이건 일종의 현대판 산대놀이”라 했다. 각각의 장면이 따로 노는 듯하다가 이내 느슨하게 하나로 합쳐지고, 정교한 극적 일관성 대신 충만한 놀이 성을 앞세우는 것이 산대놀이의 특징이라면, 오태석은 이미<백구야 껑충 나지 마라>(1991)에서 그 놀이 성을 실험한 적이 있다.<백구야 껑충 나지 마라>가 이야기의 틀을 오리지널로부터 빌려다 놓고 놀이판을 마당이 아닌 실내로 옮겨본 실험이라면,
<지네와 지렁이>는 놀이의 원리만을 차용하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와 공연 관습을 가지고 마음껏 비상해 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오태석은 이 작품을 두고 "심난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런 암울한 상황도 우린 신명으로 풀 줄 아는 민족 아니오?”라고 했다.
“고통스런 세상 살아가면서 배우하고 객석하고 한바탕 손짓 발짓하며 놀아보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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