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석 '만파식적'

clint 2015. 11. 13. 17:58

 

 

 

<만파식적>일종의 가로피리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이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하여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하였는데,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합심하여 용을 시켜 동해(東海) 중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가 되는지라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현장에 거동(擧動)하였다. 이 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사라졌다. 왕은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이 피리를 국보로 삼았는데, 효소왕(孝昭王) 때 분실하였다가 우연한 기적으로 다시 찾게 된 후 이름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고쳤다고 한다. 대금(大)의 기원을 이 만파식적에 두는 사람도 있으나, 이미 이전에 삼죽(三竹)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무덤에서나마 아버지 곁에 묻히셨으면 한다”는 그의 소망은 주인공인 종수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묏자리 옆에 빈 관(棺)을 하나 더 놓는 도입부에 녹아 있다. 북쪽 아버지의 유골이라도 모셔다 어머니 곁에 누이겠다는 종수의 다짐과 함께 이야기는 어느새 삼국시대와 현재, 남과 북 등 시간과 공간, 그리고 설화와 현실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오 씨의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만파식적’ 역시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만파식적(萬波息笛)’은 불기만 하면 나라가 평안해진다는 마술 피리다. 둘로 갈라져 있다가 하나로 합쳐지면 소리를 내는 만파식적을,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현실에 빗댔다.
북한을 방문한 종수는 이복 형제자매들을 만나게 된다. 북측 형제들 눈에 비친 남조선 사회의 모습을 통해 이 연극은 빈부격차, 공동화되어 가는 농촌,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 등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슬쩍 짚어 낸다. 종수는 형제들에게서 “남조선이 더 살기 좋은 사회라는 것을 증명한 뒤 아버지를 모셔가라”는 요구를 받는다.
오 씨는 지하철역에 놓여 있는 무료 대여 우산을 아무도 돌려주지 않는 설정을 통해 이기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과 도덕이 사라진 현실을 희화적으로 꼬집는다. 단순한 상황을 통해 우리 사회에 일침을 놓는 부분에서 연출가의 관록 있는 시선이 빛난다.

 

 

 

<작품해설>

오태석 작<만파식적>은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설화를 씨줄로, 납북된 아버지 찾기라는 그의 개인사를 날줄로 하여 짜낸 매우 흥미로운 연극이다.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모티프를 가져와서 남과 북의 분단현실을 은유하고 통일의 염원을 형상화한 상상력과 역사의식은 놀라웠지만, 극 전체적으로는 혼란스럽고 마무리가 지어지지 않은 미완성의 작품이란 인상이 강하게 왔다. 오태석은 공연을 하는 동안 계속 수정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가기 때문에 열흘 후에 다시 관람했는데, 역시 기대대로 짜임새가 좀 더 여물어지고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태석의 대부분의 연극은 생략과 비약으로 이루어진 줄거리와 이미지, 질펀하게 강조된 놀이의 착종으로 혼란스러워 보인다. 논리적이고 개연성을 가진 꽉 짜인 구성이 아니라 엇박으로 나가거나 딴 짓들이 마구 섞이는 줄거리를 아이들의 놀이처럼 풀어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태석이 한국연극에서 소중한 작가이며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바로 무대에서 진짜 한국적 인 생활습관과 정서의 몸짓과 말을 구현하는 한국인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극에는 번역 투의 대사 같은 규격화되고 문어체적인 말이 구사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연극을 하는 궁극적 목표는 우리말 찾기” 라고까지 말한다. 이처럼 그는 연극을 통해 잃어져가거나 잊혀져가는 우리말과 설화, 역사, 놀이정신 같은 한국인의 근원적인 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이다. 딴전 피우며
에둘러 말하는 어법이라든지, 판소리나 사설시조 등에서 영향 받은 4-4 조 혹은 4-3조의 대사 구사와 토속적인 사투리는 바로 이런 그의 연극정신에서 나온 빛나는 보석들이다.

 

 

 

오태석의 극에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연극개념은 극 자체를 사실적 재현의 세계가 아닌, 굿 혹은 산대와 같은 놀이로 보는 점이다. 그는 연극을 한판의 굿으로, 놀이로 파악한다.
그 때문에 그의 극은 유희적인 장면들이 서사적 내러티브를 압도하며 놀이를 강조한 장면 에서 가장 오태석 다운 활기와 신명이 뿜어져 나온다. 오태석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산대놀이의 정신과 구조가 그의 극의 형식원리이자 미학이 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을 보며 말하는 소위 '논두렁'연기, 시 공간의 자유로운 이동, 생략과 비약의 극 구조와 놀이성의
강조, 서사적 내러티브에 집중하기보다는 딴 길로 빠지거나 엉뚱한 딴 짓과 틈새가 많은 점, 전통 극이나 굿의 구조, 설화 등의 차용 등이 바로 그러한 연극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연극은 화려한 무대언어와 풍요로운 이미지를 내세우는 대신 사유의 깊이를 상실한 요즈음의 연극 경향에 대해 묵직한 울림을 던져준다. 한국인과 한국적인 것의 근원 혹은 원형에 대한 탐색을 보이면서 예리한 현실인식과 묵직한 역사인식으로 뒷받침된 사유의 깊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극에는 분단된 현실, 6.25가 남긴 상처, 이기적이고 비정한 세태 풍자, 역사와 현대를 꿰뚫는 역사의식 같은 묵직한 주제가 형상화되어 있다.
오태석이 역사와 시대를 말하는 방식은 여느 작가들과 다르다. 그 는 집중성과 개연성을 갖는 내러티브를 통해 정공법으로 펼쳐놓는 대신 자유분방한 이미지와 유희적 무대 만들기로 마치 탈판이나 굿 같은 질펀한 놀이판을 벌이는 데 치중한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과 역사 속의 인물을 만나게 한다. 같은 시공간에서 만날 수 없는 인물들을 한 무대에서 만나게 하여 과거와 잘못된 역사의 해원 굿을 펼쳐내고자 한다.

 

 

 

그의 연극에는 이전 작품들의 주제나 표현미학이 오버랩 되는 경우 가 많다.
<만파식적>에는 이전 작품들, 예컨대<여우와 사랑을>(1996)이나<코소보 그리고 유랑>(1999),<잃어버린 강>(2000)의 주제나 표현미학이 겹쳐져 있다. 이를테면, 연변 조선족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세태를 그린다든지 코소보 전쟁을 통해 객관 적인 거리감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블랙 유머적 과장으로 그리는 방식은<만파식적>에도 되풀이된다. 북한 이복 아우들이 남한 사회의 상실이라고 제시하는 장면은 북한체제의 왜곡된 선전에 의해 굴절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왜곡이 어떤 면에선 날카로운 진실을 담지하고 있어서 희극적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와서 10년 내로 씨 뿌리는 농민은 인간문화재가 된다는 둥의 과장이 그러하다.
<만파식적>에는 다양한 텍스트들이 교직되어 있다.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설화, 그리고 꼭두각시놀음과 북청사자놀음,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와 토문강에 세워진 백두산정계비 이다.<잃어버린 강>에서도 중심 내용으로 그려졌던 토문강과 민족의 근원으로서의 백두산 천지가 주요한 의미 공간을 이루고 있다. 역사 속에서, 기억 속에서 잊혀 진 잃어버린 강 '토문강'에는 1712년에 청나라와의 국경을 정한 비문인 백두산정계비가 서있었다고 하며,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는, 바로 그 내용을 밝히고 있는 책이다.
따라서<만파식적>에는 이 세 가지 텍스트와 관련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먼저 현실층 위에서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납북된 아버지를 모셔 오려는 종수가 있고, 설화 층위에서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 공정에 분개하여 만파식적을 찾으러 나온 신문왕, 그리고 전통 극 충위에서 신문왕을 모시는 홍동지, 종수와 동행하게 된 북청사자 패들이 등장한다. 이 세 유형의 인물들을 한 무대 에 등장시킨 것만으로도 오태석의 의도와 연극개념이 드러난다.
오태석은 이 세 가지 층위의 인물들을 한 무대에서 만나게 하는데, 설화와 현실을 자연스럽게 접목하기 위해 꿈을 활용한다. 북으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과 모험을 종수가 꾸는 꿈으로 설정했지만, 굳이 꿈이 아니어도 무방하다. 이 극의 컨셉이 어차피 시공간을 압축하거나 자유롭게 넘나드는 산대놀이의 구조를 차용하고 있는 이상, 전통 극이나 설화 속의 인물들을 만나고 뗏목을 타고 두만강을 넘어가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들이 어색하지 않다. 한 판의 굿처럼 놀아지는 연극 속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판타지로 다가오는 것이다. 마치 신기한 환상과 모험으로 가득 찬 동화나 판타지에 빠져들어 그 기호들의 놀이를 즐기고 여백을 채워 해석하는 일에 기꺼이 동참 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만파식적>의 의도와 연극개념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주 분명하다. 이제 문제는 구체적인 내러티브와 무대언어 안에서 작가의 의도가 어떻게 실현되었으며, 그 실현은 적절한가, 또 그의 시각과 표현미학에 공감하는가의 문제를 따져보는 일이다.
오태석 극의 한 특성으로 '부권 부재의 연극' 혹은 '부재하는 아버지'가 지적되어진바있다. 그런데 작가는<만파식적>에서 바로 자신의 개인사, 즉 어린 시절에 헤어진 납북된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를 중심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아버지 찾기는 잃어버린 역사 찾기, 통일과 실지(失地) 회복의 염원을 담은 이야기로 의미의 외연이 확장된다.
무대는 상하의 두 무대로 크게 양분되는데, 주로 위 무대에서는 환상적 장면이, 아래 무대에서는 현실 장면이 펼쳐진다. 극은 종수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빈 석관을 묻고 거기에 아버지를 모셔오지 못하면 자기라도 대신 묻히겠다는 말을 했다가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어떻게 된 아버지를 모셔와 빈 관에 안치하여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려야 하는 것은 종수의 목숨이 걸린 문제가 된다. 이러한 겉틀은 마치 바리데기가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험난한 여행을 떠나는 것에 비견되는 굿의 구조와 동일하다.
여기에 또 한 줄기의 내러티브가 교직된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왜곡에 의기의식을 느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대왕을 만나 만파식적을 받고자 아버지를 찾는 여정이다. 대왕암에 잠들었던 문무대왕은 만파식적을 만들기 위해 김유신을 만나러 두만강, 백두산 천지, 토문강으로 떠난다. 이 세 가지 공간은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서의 두만강, 그리고 민족의 근원인 백두산 천지, 잃어버린 국토와 국경이라는 점에서 주제적 의미를 표상하는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대왕암을 떠난 문무대왕의 여정은 종수의 여정과 겹쳐지면서 극의 주제적인 사유를 강화한다. 또 김유신과 문무왕이 만나지 못해 만파식적이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전개로 이러한 주제는 더욱 강화된다. 그런데, 종수와 신문왕의 여정이라는 두 가지 동떨어진 내러티브가 허황함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의 겹침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중국의 동북 공정과 역사왜곡이라는 시의적인 소재를 가져 온데다가 두 인물에게 굿의 내러티브와 표현미학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신문왕이나 저승사자를 여자 배우가 맡게 함으로써 무당의 이미지를 부여했고, 신문왕은 상여 같은 수레를 타고 등장하며 양 옆에는 홍동지 인형을 앉혀서 민중의 힘을 부각시켰다. 신문왕이나 저승사자, 그리고 신문왕을 호위하는 향도군은 얼굴을 가리는 원통형 바구니 모양의 용수를 쓰고 있는데, 이처럼 얼굴을 가림으로써 명부의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극에서 연극적으로 재미있게 놀아지고 공감을 주는 장면은 종수의 아버지 찾기에 관련된 장면들이다. 관객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각성을 일깨우려는 강박에 의해 만들어진 문무대왕 장면들은 육화되지 못한 생경한 장면들로 겉도는 데 반해, 종수의 아버지 찾기 에 관련된 장면들은 오태석 특유의 말맛과 한국적인 몸짓을 부여받으며 놀라운 생동감과 과장된 놀이 성, 블랙 유머로 극대화된 연극성을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세 명의 아버지 중 진짜아버지를 찾는 장면들이라든지, 아흔두 살의 아버지와의 대화가 간호사의 통역을 통해 이루어진다든지, 이복동생들의 시각을 통해 우리 사회가 왜곡과 희화를 통해 제시되는 장면들, 지하철역의 우산 돌려주기 장면들이 그렇다. 특히 지하철역의 우산 돌려주기 장면은 이 극에서 가장 생동감과 놀이성이 극대화된 빼어난 장면으로, 양심의 회복이 우리 사회를 구원하는 바로미터라고 강조되는 점에서 우화적인 성격까지 함축한다. 삶의 디테일보다는 독립된 장면들의 연극적 놀이와 양식화에 치중하는 이 극에서, 이 장면은 물론 전체 극의 균형성이란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연극적으로 재미있게 놀아진, 오태석 특유의 과장과 유머가 넘치는 명장면이다.
그러나 문제는 신문왕의 내러티브와 종수의 내러티브가 연결되는 지점이 극 줄거리 안에서 허약하다는 점이다. 가장 생경하게 두 내러티브가 부딪히며 극적 당위성과 설득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장면이 토문강 장면이었다. 중국 국경 수비대와 향도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다는 것은 앞에서 준비된 설정이 있기 때문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나, 노쇠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이곳에 와 사자탈을 쓰고 싸우다가 중국군에게 찔려 죽는 장면은 오태석이 남용하는 지나친 생략과 비약의 예로서, 관객의 공감을 가로막는 에피소드라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토문강 장면을 마지막으로, 후반부에서는 신문왕 내러티브가 영영 실종하고 만다는 것도 문제다. 이 실종된 내러티브는 극의 마지막에, 좀 억지스럽게 끼어들어 마무리를 시도한다. 종수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향도군이 종수 부친을 데려다 주고, 관에 누워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자탈을 쓰고 춤을 출 때 두 대나무가 합해지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56년 만에, 그것도 죽은 다음에야 만나 함께 사자탈춤을 추는 장면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모든 죽음은 모든 이별을 가능케 하고, 그 만남의 판타지 는 환상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니 만큼 슬프고 황홀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판타지의 장면에서 두 개의 대나무가 만나 합해지고, 비로소 피리소리가 배경음악으로 울려 나온다.
오태석은 이 극의 환상적 장면들에서 '피리' 소리 대신 의도적으로 바이올린 연주를 보여주었다. 피리 소리가 울려나오지 못했던 것은 종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문무대왕 과 김유신이 만나지 못했고, 국권을 포기하겠다는 정신대 할머니들 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였다.
<만파식적>은 분단으로 평생을 헤어져 살았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과 민족의 근원 회복이라는 두 줄기 서사를 형상화한다. 그러나 극 전체적으로 볼 때, '만파식적' 에피소드와 현실의 에피소드를 이어주는 고리는 중반부에 이르러 끊어져 버리고, 종수의 아버지 찾기 이야기는 우산 빌려주기 에피소드에 이르러 신나는 놀이 성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구성에 대해, 이 극의 의도가 분명한 목표를 향해 선조적으로 전개되는 서구적 형식의 극이 아니라 탈춤이나 판소리의 즉흥성과 분방한 구조, 재미있는 장면은 극대화시켜 길게 늘이는 '열린 연극'의 구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 극의 컨셉이 연극적으로 놀아지는 각 장면의 생동감과 놀이성의 강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보여 지는 심각한 서사적 불균형을 파악한 상태에서, 이 극의 주제적 사유에 깊이 공감해 들어가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