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의 바위처럼 위용있게 돌출된 가슴뼈, 외봉 낙타처럼 생긴 등, 5척에도 못 미치는 키…'
전설로 남은 `꼽추화가' 손상기(1949~1988)는 생전 잡기장에서 자신을 낙타에 견준 바 있다. 남도의 고향 여수에서 전주로, 서울 화단으로 이어진 이 외로운 낙타의 발걸음 곳곳에 표적없는 장애인의 분노와 고독, 사랑이 있었고, 울화를 붓질로 다독거려준 그림들이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 그의 고달픈 여정은 80년대 암갈색 명작들을 쏟아냈지만 그 끝을 기다린 것은 심부전증과 39살의 죽음이었다.
박래부<한국일보>문화부장이 쓴<손상기 평전>(중앙엠앤비)은 `39까지 칠한 사랑과 절망의 빛깔'이란 부제처럼 애수가득한 요절화가의 인생분투기다. 미술기자 출신의 지은이는 손상기와는 만난 적이 없다. 손상기의 고향 여수와 청년기를 보낸 전주, 그리고 서울 화랑가 곳곳의 자취를 돌아보고, 유족과 그의 여인, 화상들을 인터뷰하고, 묻혔던 작업일지와 일기, 시편들을 섭렵해 포근하게 책을 썼다.
파리의 밑바닥을 그렸던 꼽추화가 로트렉처럼 손상기는 충동과 사색을 오가며 장애의 천형과 붓으로 싸웠다. 그림, 글에 대한 끼와 손톱이 빠질 정도의 수련으로 지방 미대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온 그는 곤궁하지만 날카로운 감수성 지닌 화실주인으로써 80년대를 맞는다. 아현동 굴레방 다리 부근의 서울화실은 유명한 연작<공작도시>와<취녀>가 탄생한 태반이다. 지하철 공사 기계음에 흔들리는 골목길과 부근 맥주집여자들의 나신에서 그는 창작혼이 숨쉴 곳을 찾았다. 칼로 계속 색깔을 벗기고 긁고 그려낸 음울한 캔버스에 절규하는 거리, 바닥생활의 슬픔을 뱉는 나부의 혼이 살아났다. 민중미술에 끌려 시대와 현실의 호흡 속으로 시점을 옮긴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기구한 인생 무슨 말로 말하지요…'라고 읊조렸던 답답함은 궁핍과 신체장애와의 지난한 싸움을 통해 모더니즘과 현실을 아우르는 개성으로 만개한다. 지은이는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묻어나는 진득한 감정과 선뜩한 호소를 어떤 사조로도 쉽게 포박할 수 없는 체험과 정서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책은 70·80년대 옹색했던 화랑과 작가들의 일화를 통해 당시 화단의 처연한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고 첫 부인 준과 둘째 부인 연우가 재혼하고 준과 낳은 첫딸은 미혼모가 된 극적인 후일담도 전하고 있다. 다만 산자들의 애잔한 추억담이 전편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탓에 따뜻한 문체로 포장한 글들에서 망자의 삶에 거세게 육박하는 서술의 치열함은 별반 눈에 띄지않는다. 전속화랑과 유족들의 부탁으로 씌어진 책은 그런 점에서 분석의 날을 세운 평전보다는 낭만적인 일대기로 읽힌다.
‘한국의 툴루즈 로트레크’라 불렸던 손상기(1949~1988)는 실제로 불행한 삶을 살았던 천재 작가였다. 세 살 때 앓은 구루병으로 평생 척추 장애에 시달렸고, 39살에 요절했다. 손상기는 그 가난과 외로움을 그림과 글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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