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강성희 '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

clint 2015. 11. 13. 17:00

 

 

 

 

 

 

한 건축가의 꿈과 이상, 그리고 사랑을 그린 고 강성희의 작품으로 1979년 극단 산하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이상적인 건축가이며 시인에 화가까지의 다양한 재능을 가진 김진우는 친구 광희의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건축설계에 몰두하는데.. 그의 설계는 예술성, 독창성등으로는 인정받으나 상업적으로는 다소 문제가 있고
그런 연유로 친구와도 의견다툼이 있으나 타협이 안되는 그런 타입이다. 과거 애인이었던 경희 와의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도 그런 그의 타협할둘 모르고 몰두하고 집착하는 성격때문일지 모른다. 그런 경희와의 사이가 멀어질때 심신의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 진우는 한 클럽에서 선녀를 만나게 되고 다시 일과 사랑에 빠지게 되나... 결국 선녀의 일탈과 그런 자신을 이해 못하는 갈등으로 선녀와도 헤어진다. 그의 설계가 경희의 추천으로 경희 부친의 주택 시공으로 이어지며 결국 경희와의 재회가 이루어지고 그의 건축은 인적받게 된다.

 

 

 

 

강성희는 44세가 되던 1965년, 유치진이<자장가>를<현대문학>에 추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대개 20대 초반에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실을 감안해볼 때 강성희의 문단 데뷔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다. 더구나 늦은 나이에 작품활동을 시작했다는 어려움을 딛고 30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작가적 열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녀가 연극에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이화여전 졸업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던 1974년, 강성희는 졸업 연극 작품으로 기획되었던 제임스 베리의 작품<QUALITY Street>에서 배우로 출연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나마 희곡을 써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마침내 늦깎이 작가가 된 것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 1948년 경기사범학교 영어 교사가 된다. 거기에서 미술 교사로 있던 유경채 화백을 만나 1949년 10월 결혼식을 올린다. 6·25전쟁 때에도 대구, 진해, 부산 등지로 피난을 다니기는 했지만 교사라는 자리가 있어 그런대로 생활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도 아버지의 후원에 힘입어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았으며, 결혼을 해서는 예술가 남편을 만나 서로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면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발표한 장막희곡<염원>은 이러한 가족 사랑과 자기 성취라는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억제하면서 살아가는 자전적인 작품으로 남편이자 화가인 Y(유경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강성희의 작품들은 크게 일상적 삶을 다룬 것과 실제 인물을 다룬 작품으로 대별된다.
작품활동
1965년<자장가>
1967년<소원성취>
1969년<뭔가 단단히 잘못 됐거든>
1970년, 1976년, 1978년, 1980년<뭔가 단단히 잘못 됐거든>(대학생 공연)
1970년<설원의 정>, 김수용 감독, 대야영화사제작, 홋가이도 현지로케
1973년<공해가족>
1974년<변주>
1975년<두 얼굴>/<백합향>/<역광>/<디포옴의 시간>/<역광>, 극단 여인극단, 세계 여성의 해 기념공연
1976년<사주팔자>/<잘못 푼 미적분>
1977년<하룻동안의 체류>/<후일담>
1979년<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
1980년<쟁투>/<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 극단 산하
1981년<내가 없는 방>
1982년<엘리 엘리 이 손을>
1983년<철쇄>
1985년<흰꽃 마을>
1986년<엘리 엘리 이 손을>, 드라마센터
1988년<할렘의 어느 밤>
1989년<렌>
1991년<부러진 날개>/<날아가는 새>/<폐허>/<렌>, 극단 전망
1992년<흰꽃 마을>, 극단 춘추, 문예회관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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